[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수년째 국정감사에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항공기상장비 라이다 도입 논란의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상청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민간업체 K사가 승소했지만 기상청이 불복해 항소하면서 법적인 해결이 쉽지 않은 상태다.

또한 법적 소송과 함께 장비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기상산업진흥원과 제조사인 프랑스의 레오스피어가 재검증 작업을 벌였지만 기상산업진흥원이 돌연 재검증 중단을 선언하자 프랑스 업체 측은 국제소송 준비에 들어갔다.

검수 합격했지만 대금지급 거부

공항의 순간돌풍을 탐지하는 장비인 라이다는 도입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특정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진흥원 담당팀장이 내부정보를 입찰업체에 유출한 사실이 적발돼 해직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K사가 입찰자격을 따냈다.

가격입찰에서 승리한 K사는 김포와 제주공항에 라이다를 설치했고 계약 당사자인 한국기상산업진흥원은 해당 장비의 성능이 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항공기상청이 장비 인수를 거부하고 물품대금 지급을 거부하면서 성능 미달 여부를 놓고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수년째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난해 취임한 고윤화 기상청장이 장비 성능에 대한 재검증을 제안했다. 기상청과 레오스피어가 각각 2명의 외부 전문가를 추천해 장비의 성능이 규격서와 일치하는지를 판단하자는 것이다.

결국 올해 1월 기상청·항공기상청·기상산업진흥원과 제조사인 레오스피어가 재검증에 합의해 외부 전문가 2인을 각각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전문가 추천 과정에서 기상청이 추천한 전문가 2인이 중립적이지 못한 인사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재검증 역시 난항을 겪었다.


기상청이 추천한 전문가 중 1명은 입찰 당시 경쟁상대였던 미국의 L사 부사장 출신이었고 다른 한 명은 L사의 국내 수입업체인 W사의 사장과 동문이었기 때문이다.

기상청 측은 “국내에는 라이다 전문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지만 당시 라이다를 직접 제작한 경험이 있는 대학교수를 비롯한 다른 전문가들을 제외하고 입찰에서 탈락한 특정업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인사를 추천한 이유가 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졌다.

라이다 도입을 둘러싼 기상청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장비를 인수하면서 ‘적합’ 판정을 내렸지만 이후

성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물품 인수를 거부했다. 소송에서 패하면서 성능 재검증에 나섰지만 불리한

결과가 나오자 이번에는 재검증도 못 하겠다며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기상청의 진짜 속내는 뭘까?



기상청 추천 전문가도 인정

우여곡절 끝에 재검증에 들어갔지만 기상청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재검증을 통해 검증단은 1차 보고서에서 ‘규격서 조건은 개별적으로는 달성할 수 있지만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어떠한 라이다 장비도 이러한 조건을 모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기상청이 주장한 규격이 비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재검증을 위해 전용한 예산 5천여만원은 허공에 뜬 돈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불리한 검증결과가 나오자 진흥원 측은 돌연 재검증 중단을 선언하고 책임을 레오스피어에 돌렸다. 기상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재검증을 위한 프로토콜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레오스피어는 기상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들을 제시했고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재검증 중단을 통보했다”라고 밝혔다.

장비 공급사인 프랑스 레오스피어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기상산업진흥원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레오스피어는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재검증 프로토콜 규격에 대한 의견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로 진흥원이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것이 놀라우며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재검증이 중단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레오스피어 측은 “당신들(기상산업진흥원, 기상청)은 최종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 재검증 절차를 종료할 어떠한 법적 권리도 없다”라며 “진흥원의 재검증 중단 결정은, 2013년 5월 검수에서 내린 합격 판정을 이번 재검증을 통해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전문가들이 내놓은 보고서의 ‘기상청이 제시한 규격은 현존하는 어떠한 라이다 장비도 모두 달성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다. 기상청이 추천한 전문가 2인이 포함된 검증단이 내놓은 1차 보고서가 불리한 내용을 담고 있자 재검증 자체를 중단시킨 것이다.

법원 ‘진흥원 비합리적, 불공정‘

 

기상장비 라이다에 대해 계약 당사자인 기상산업진흥원은 2013년 ‘적합’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항공기상청이 ‘성능 미달’을 이유로 인수를 거부하자 이제 와서는 ‘당시 검수가 잘못된 것’이라며 발뺌하고 있으며 이는 기상청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성능 미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재검증마저 거부하는 등 떼쓰기로 일관하고 있다.

기상청이 계약 파기 수순에 돌입함에 따라 이제는 레오스피어와의 국제소송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레오스피어는 국내 법무대리인을 선임하고 소송 준비에 들어갔다.

소송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같은 사건으로 진행되고 있는 국내 소송을 참고한다면 기상청이 승소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국내 공급업체인 K사가 기상청을 상대로 한 물품대금지급 소송에서 법원은 K사의 손을 들어주면서 “기상산업진흥원의 검사검수 보류 통보는 항공기상청의 이의 제기에 의한 것으로, 항공기상청의 요구는 입찰제안 요청서에 없는 새로운 조건을 일방적으로 추가한 것”이라며 “검사검수 보류 통보는 자의적, 비합리적, 불공정하다. 항공기상청의 자체 점검도 입찰제안 요청서 규정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그러자 기상청 측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이 과정에서 억대 수임료의 변호사를 고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예산전용 논란까지 불거졌다.

최근 열린 국정감사에서 고윤화 청장은 “장비 규격은 미달되지만 절차가 적합하기 때문에 1심에서 패소한 것”이라며 “2심에서는 많은 준비를 했기 때문에 반드시 승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먼저 제안한 재검증조차 갑작스럽게 중단하고 레오스피어와의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버린 기상청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국내 소송에 이어 국제 소송마저 패한다면 한국의 정부기관이 해외 중소기업을 핍박하다 된통 당했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궁지에 몰린 기상청의 고집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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