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100억원대의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한국조명재활용협회 김 모 회장과 부인 조 모씨 등이 경찰에 검거됐다. 본지가 단독 보도한(2014년 7월31일, ‘썩은 내 풀풀 조명재활용 시장’) 협회 비리가 마침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경찰 수사로 김씨가 처벌을 받는다 해도 현재의 불합리한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조명재활용 업계에 대한 김씨 일가의 영향력은 여전할 것이라는 현실론도 나온다.

경기도 수원서부경찰서는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특가법상 횡령과 배임)로 폐형광등처리 업체 A사 대표 김모(61)씨와 회사 직원, 가족 등 모두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최근 밝혔다.

또 김씨로부터 돈을 받고 경쟁업체 비리를 캐려 한 혐의(업무방해 등)로 심부름센터 B사 대표 서모(34)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가 회삿돈 100억원을 빼돌리는 과정에는 아내, 동생, 아들, 처조카 등 일가족이 동원됐다.



직원 급여 부풀려 개인통장으로


경찰 수사 결과 밝혀진 폐형광등 재활용 실태는 한 마디로 ‘가족끼리’의 결정판이었다. 협회장인 김씨와 명목상 회사 대표 아내 조모씨 그리고 아들, 동생, 처조카 등은 협회와 회사를 장악하고 재활용에 써야 할 돈을 빼돌려 유용했다.

김씨는 경기도 화성 등 3곳에 공장을 둔 아내 조씨 명의의 폐형광등 재활용 처리업체 직원들의 월급을 부풀려 지급한 뒤 개인통장으로 돌려받거나, 허위 거래전표를 작성해 자신이 운영하는 업체에 자금을 융통하는 등의 수법으로 2008년 1월부터 최근까지 회삿돈 96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같은 기간 한국조명재활용협회장으로 있던 김씨는 A사가 만든 폐형광등 수거 박스를 자신이 운영하는 폐비닐업체(동생 명의)가 비싸게 구입하고, 그 박스를 협회가 더 비싸게 구입하는 등 모두 8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도 받고 있다. 김씨는 횡령한 돈으로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대출이자를 상환하는 데 쓴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협회가 독점해온 조명 재활용 시장을 지키기 위해 경쟁업체 죽이기에 나서는 등 온갖 지저분한 일도 마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신생업체의 수은 처리가 미숙하다’라는 등의 허위 사실을 협회장 명의로 수차례 공문으로 발송해 지자체 조사를 촉구하거나 언론과 환경단체에 자료를 배포했다.

실제로 일부 언론은 이들 자료를 바탕으로 경쟁업체를 음해하는 기사를 실으면서 큰 타격을 입혔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A사의 자금이 언론사와 지역 환경단체로 들어간 정황이 포착됐다는 말도 나온다.

결국 경쟁업체인 O사가 부도나면서 회사 주식 대부분은 A캐피탈로 넘어갔다. 문제는 이 주식이 다시 김씨의 부인이 대표로 있는 A사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렇게 경쟁업체의 주식 대부분을 소유하게 된 A사는 O사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O사 전 관계자는 “회사의 빚이 있었지만 그만큼의 미수금이 있어 이를 받으면 충분히 회생 가능한 규모”라며 “그럼에도 A사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현재까지 공장 문은 닫힌 상태”라고 밝혔다.

경쟁업체가 사라진 마당에 구태여 살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O사 관계자는 “최대주주인 A사의 불참으로 O사의 회생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주주총회마저 무산됐기 때문에 A사를 사기죄로 고소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 일가 영향력 여전할 것”

이처럼 조명 재활용 시장이 온갖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되면서 환경부는 지난 5월 협회장인 김씨에 대해 이례적으로 해임을 요구했다.

김씨가 회삿돈을 빼돌리는 것도 모자라 경쟁업체를 음해하고 서울과 수도권 지자체에 폐형광등을 공장까지 직접 가져올 것을 요구하는 등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환경부 감사에 따르면 김씨가 지속적으로 돈을 빼돌리면서 협회 재정은 파탄 상태에 이르러 2014년에만 무려 28억원의 적자가 발생했고 재활용 실적이 모자라 수십억원의 과징금까지 물게 됐다.

그럼에도 협회는 형식적인 이사회를 열어 김씨의 회장직을 유지시켜줌은 물론 환경부 지적에 대해서도 형식적인 개선사항을 통보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아울러 협회 측은 “협회 잘못이 아니라 환경부가 재활용 의무실적을 무리하게 설정했기 때문”이라며 물타기에 나섰다.

관련 업계는 협회 측의 이러한 언론 플레이가 경찰 수사가 본격화 된 이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온가족이 나서 100억원대 돈을 횡령해 부동산 구입 등에 사용한 혐의를 받으면서도 ‘단순횡령’으로 몰아가 가벼운 처벌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씨 등은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으며 재판을 거쳐 벌금이나 집행유예 등의 가벼운 처벌로 끝나면 김씨 일가가 다시 협회와 회사를 장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라이벌 업체마저 집어삼켜

경찰 수사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협회 관계자는 “이번 사안에 대해 할 말이 없다”라면서도 “(언론의 보도가) 명예훼손에 해당되는 부분이 있다면 법정에서 다룰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환경부는 경찰수사와 별개로 시정명령 불이행을 토대로 조명재활용협회 인가를 취소할 계획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협회 인가가 취소되면 (조명)생산자들은 새로운 재활용 공제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협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수억원의 과징금을 물게 된 생산자들이 공제조합 설립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라고 밝혔다.

 

결국 조명재활용협회 인가 취소 이후 김씨가 새로운 공제조합을 설립한다 해도 형사처벌 대상자는 정관상 임원 자격이 없기 때문에 허가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회의론도 나온다. 처벌 이후에도 김씨의 영향력이 계속 유지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김씨가 라이벌 업체까지 집어삼킨 만큼 시장 정상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재활용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처벌을 받는다 해도 김씨 일가의 영향력은 여전할 것”이라며 “투명하고 공정한 재활용 구조 마련을 위해 환경부가 처음부터 판을 다시 짠다는 생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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