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가습기살균제로 가장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옥시레킷베키저(옥시)가 5년 만에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다. 그러나 지금껏 대형로펌을 앞세워 소송으로 일관하다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면서 뒤늦게야 떠밀려 사과했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의심 받고 있다.

그런데 옥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피해자를 낸 것으로 알려진 애경은 도의적인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온 뒤에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애경이 이렇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질병관리본부의 1차 조사에서 안정성에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애경 제품에 사용된 화학물질은 CMIT/MIT이다. 지난 2012년 질병관리본부는 PHMG와 PGH에 대해서는 폐 손상과의 인과관계를 발견했지만 CMIT/MIT 성분이 포함된 제품을 사용된 사람들에게는 폐섬유화를 발견하지 못했다.

같은 9월 위해성심사 결과 급성경구, 경피흡입, 수생태 독성이 확인되면서 CMIT/MITM 성분이 유독물로 지정됐지만 여전히 폐섬유화와는 관련이 적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CMIT/MIT 물질을 사용한 애경가습기메이트나 이마트 PB 제품 피해자들이 나타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자료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CMIT/MIT 유독물 지정


지난 2015년 사망한 성인남성이 애경 가습기메이트를 10년간 사용하다 폐이식을 권유받고 대기하던 중 사망했으며 정부조사에서 ‘가능성 높음’ 2단계 판정을 받았다.

경기도의 영아 역시 애경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했음에도 정부 조사에서는 ‘가능성 거의 없음’ 4단계 판정을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성인여성은 애경이 납품한 이마트 PB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고 7년간이나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휠체어에 의지해 투병 중이지만 정부조사에서는 ‘가능성 낮음’ 3단계 판정을 받았다.

아울러 경기도에서는 일가족이 애경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하다 아이 2명과 부모 모두 천식이 발생했지만 정부 조사에서 모두 ‘가능성 거의 없음’ 4단계 판정을 받으면서 변호사도 없이 힘겹게 소송을 진행 중이다.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와 SK캐미컬이 생산해 애경이 이마트에 납품한 PB제품 두 가지 제품의 사용피해자는 1·2차 피해자 167명(사망 37명)이며 3차 신고자를 합하면 380명(사망 54명)에 달한다. 특히 애경 제품만 사용한 피해자들 외에 다른 제품을 혼합 사용한 피해자 숫자를 더하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잇따른 사망자 발생, 재검토 필요

가습기살균제 사고 초기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CMIT/MIT 성분의 독성이 낮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망하거나 심각한 건강피해를 입은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정부의 1차 조사부터 참여하고 있는 위해성평가 전문가 김용화 박사는 “초기에는 CMIT/MIT 제품 사용자들에게 1~2단계 등급판정이 거의 없었고 동물실험에서도 폐섬유화가 나타나지 않아 위해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평가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CMIT/MIT 단독 사용자들 중에서 1~2단계 판정이 여럿 나오고 사망 사례도 있어 평가 결과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1차 조사위원회 책임자인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 역시 “CMIT/MIT 사용자의 천식과 비염 호소율이 높은데, 이들은 대부분 관련성이 낮거나 없다는 3~4등급 판정을 받았다. 현재의 판정기준이 폐 손상만을 중심으로 보기 때문인데, 가습기살균제 노출이 천식이나 비염을 일으킬 수 있는지 면밀히 조사해 판정기준에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피해가가족모임은 검찰 기소대상에 제외된 애경 전현직 임직원 19명을 처벌해 달라며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검찰과 언론의 관심이 모두 옥시를 향해 있지만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가 옥시만은 아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는 “환경부가 문제점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는데 하루 빨리 판정기준을 보완해 잘못된 판정을 바로잡고 검찰수사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애경은 검찰수사대상에서 제외됐으며 정부의 구상금 요구 역시 거부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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