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국가 온실가스를 줄이는 핵심 사업으로 꼽히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가 내년 1월1일부터 과연 제대로 시행될지 불투명하다.

산업계가 기업 부담을 이유로 2020년 이후로 시행 연기를 주장하는 가운데 지식경제부 장관 시절부터 배출권거래제 도입에 반대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제도 시행이 연기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언론 역시 각자 입장에서 입맛에 맞는 기사와 사설 등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종합지 일부와 경제신문들은 산업계 논리에 편승해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다른 언론들과 환경·시민단체들은 일정대로 시행하는 것은 물론, 과도한 기업 봐주기로 제도가 무력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환경부가 제출한 배출권 할당안을 보면 감축률 10% 낮춰주기, 수출업종과 에너지업종 100% 무상할당 등

기업 편의를 봐주기 위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산업계는 그마저도 못하겠다고 몽니를 부린다.



상황이 이러한 가운데 주무부처인 환경부만 난감한 입장에 처해 있다. 과거 산업계와 일부 언론에서 제도 시행 연기를 주장할 때도 ‘2015년 1월1일 시행에 변경은 없다’라고 못을 박았던 환경부는 ‘산업계 의견을 토대로 정부 내부에서 논의 중이다’라고 말을 바꾸고 있다.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연만 환경부차관은 “정부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제도 시행 연기를 결정한 바가 없다”면서도 “다만 경제계 의견을 어떻게 수렴할 것인지 내부 논의 중이다. 내년부터 시행하든 연기하든 조만간 결정이 내려져야 준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물론 정홍원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까지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새어나오면서 윤성규 환경부장관 역시 국무회의에서 좀 더 강경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환경부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이대로라면 제도 시행이 연기되거나 시행되더라도 과도한 기업 봐주기로 반쪽짜리 제도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법 바꿔야 연기 가능

그러나 정부가 배출권거래제 시행 연기를 결정해도 문제다. 국회에서 법으로 정한 사안을 행정부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결국 법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7.30 재보선을 앞둔 여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과연 정부 뜻대로 될지 의문이다.

게다가 입법부인 국회가 정한 법률규정을 행정부가 고의적으로 위반한 위법 사례로 남는 것도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제도 시행 최소 6개월 전에는 할당량이 정해져야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배출권 할당위원회 회의를 3차례나 연기한 결과 수립 기한이 1개월이나 지난 현재까지도 확정하지 못했다.

산업계가 내세우는 논리는 과도한 기업 부담이다.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은 배출권 거래제 시행 전면 재검토를 요청하면서 “초과 배출량이 2억7500만 톤에 이르기 때문에 이를 배출권 가격으로 환산하면 6조원이나 된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2010년 EU 배출권 평균 가격인 톤당 2만1000원을 대입했을 때 나오는 값으로, EU 배출권 가격은 공급과잉으로 계속 떨어져 현재는 6000원 대에 불과하다. 2013년에는 4000원대까지 떨어졌다.

내년에 시행되는 제도의 전망치를 산정하면서 가격은 2010년 비싸던 시절의 값을 가져다 쓰는 고의적인 통계조작이다.

게다가 산업계가 주장하는 기업 부담액은 모든 기업이 감축과 배출권 확보에 실패해 톤당 10만원의 과징금을 모두 낸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악의적이고 비상식적인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어디까지 봐줘야 하나?

정부는 산업계 의견을 받아들여 배출권 거래가격 최고치를 기존 톤당 10만원에서 1만원으로 하향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존의 환경부 할당계획에도 배출권거래제 대상 업체에 대한 특혜를 충분히 주고 있다. 감축률을 10% 낮췄으며 수출주력업종과 에너지집약업종은 배출권 100% 무상할당을 유지할 계획이다.

배출권거래제 대상 기업이 주로 대기업임을 감안하면 이들에 대한 부담을 완화해주면 중소기업, 교통, 가정 등의 부문에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이 쏠리게 된다. 대기업 편의 봐주느라 중소기업 목 조르는 모양새다.

산업계가 2010년 실제 배출량을 기준으로 2020년 예상 배출량을 추산한 결과 정부 예측치보다 10% 이상 높게 나왔다는 주장하는 것도 억지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정부가 범부처 공동작업반을 통해 검증한 결과 2009년 배출 전망이 현실과 일치한다는 결과를 내놨고 지난 1월 국무회의를 통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로드맵을 확정한 바 있다. 정부가 검증한 사실을 놓고 산업계 억지에 밀려 스스로 ‘신뢰성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GCF 기금 마련도 차질

국제 사회 비판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녹색기후기금(GCF)을 유치한 나라다. 지난해 12월 박근혜 대통령은 인천 송도에서 열린 GCF 사무국 출범식에서 “목표 이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최근 독일은 10억달러를 내기로 했는데 한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인 모양새를 취하면서 기금 마련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아울러 올해 9월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인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와 12월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제2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0)에서도 한국의 입지가 대폭 축소될 위험이 높다.

산업계의 배출권거래제 시행 연기에 대해 환경운동연합을 논평을 통해 “2015~2017년 최대 27조 5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경제단체들의 주장은 공상에 가까운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며 “정부는 산업계 눈치 보기를 중단하고 즉각 할당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43개 환경·시민단체들은 25일 기획재정부에 보낸 공재질의서를 통해 ▷배출권 할당위원회 회의 연기 사유 및 향후 개최 계획 ▷ 기획재정부가 협의한다는 “제도의 취지를 살리되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의 의미 등에 대해 따져 물었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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