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1급 발암물질인 석면광산 주변지역을 정화하기는커녕 건설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한데 이어 이번에는 지정폐기물매립장까지 추가하려는 움직임에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폐석면광산을 둘러싼 법 체계의 맹점 탓에 원만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 주최로 열린 ‘석면폐광 토론회’에서는 분야별 전문가들이 모여 폐석면광산이 주민들에게 미치는 악영향과 이를 막지 못하는 현행 법률의 모순점 등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지역주민들은 국회를 직접 방문해 토론회를 직접 참관했으며 정부의 무책임한 처사에 격앙된 목소리를 높였다.

석면광산이나 석면공장에서 일을 한 것도 아니면서 수십년을 석면 때문에 고통 받은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또 다시 고통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을까? <사진=김경태 기자>



도로, 논밭에서도 석면 검출


충남 청양군 비봉면 강정리에 있는 비봉광산은 일제 강점기부터 석면을 채굴하기 위해 개발된 곳이다. 해방 이후에도 석면을 채굴했으며 2009년 석면사용이 전면 금지된 후에도 석면이 함유된 사문석을 채굴했다.

문제는 이곳에 폐기물매립장을 건설하게 되면 석면으로 오염된 토양을 정화할 필요가 없다는 점과 함께 이미 광산 주변 지역에 광범위하게 석면이 퍼져 지역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 2011년 비봉광산과 주변 토양이 석면에 오염됐고 토양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사면적 724ha 가운데 석면농도가 0.25% 이상 검출된 면적이 443.4ha로 26.9%를 차지했고 석면농도가 1% 이상 검출돼 당장 토양정화가 필요한 면적은 15.3%로 0.3%를 차지해 전체 조사면적 가운데 27.2%가 석면으로 오염됐다.

아울러 석면검출농도가 0.25~1% 수준이어서 정화대상에서 제외된 토지 역시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개발 과정에서 언제든지 잠자고 있던 석면이 활성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폐광된 석면광산은 대부분 노천광산으로 마을 주변에 있기 때문에 토양 및 지하수가 오염되고 다시 인간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또한 최근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학교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교실이 청양군 비봉면 석면광산 주변 2.3㎞에 대해 조사한 결과 마을 도로 4곳과 마당 2곳에 쌓인 골재와 논에 복토한 1곳을 포함해 7곳 모두에서 석면이 검출됐다. 채취한 시료 33개 중 26개에서 석면골재가 확인됐다.

이번 조사결과는 광산 내부뿐만 아니라 주변 마을까지 석면이 함유된 골재가 곳곳에 포설됐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비봉광산은 2011년부터 채굴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소 3년 이상 마을 주민들이 석면골재 위를 밟고 다니거나 차량이 오가면서 석면이 다른 곳으로도 비산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인현 지질학박사

환경보건센터 운영위원인 이인현 지질학박사는 “폐광 후에도 채굴적이 방치돼 노출된 석면이 바람에 날려서 지속적으로 피해를 주기 때문에 채굴적은 완전히 복토해 대기 중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렇게 주변지역으로 광범위하게 퍼진 석면은 주민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 해당 지역에는 석면폐질환으로 항암치료를 받는 주민들도 있다.

토론회를 경청한 한 지역주민은 “옆집에 여든이 넘은 노인이 항암치료로 고통 받다가 결국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라며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돌아가셨지만 고작 3500만원밖에 못 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석면질환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을 받고 있는 청양군 주민들에게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장에 이은 지정폐기물 매립장 건설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석면광산 또는 석면공장에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단순히 그 지역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석면질환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매립지 건설 반대는 단순한 님비현상이 아니다.

비용부담은 지자체 떠넘겨

그런데도 이러한 일이 가능한 이유는 현행 석면안전관리법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석면폐광을 사업부지로 활용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민변 노승진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위원회 노승진 변호사는 “석면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만든 법률이 오히려 개발의 면죄부가 되고 있다”라며 “석면안전관리법 입법자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는 폐석면광산에 대한 관리 주체가 혼선을 빚고 각기 다른 법률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면안전관리법상에 따르면 ▷환경부장관이 자연발생석면 관리지역을 지정하고 ▷석면안전 관리계획은 시·도지사가 수립하며 ▷석면안전관리계획 시행은 개발사업자가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석면안전관리계획 시행에 필요한 부담을 광역단체가 책임지도록 했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관리지역으로 지정해도 지자체가 예산이 없어 시행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게다가 석면안전관리법은 비교적 규모가 큰 사업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반대로 규모가 일정 이하의 사업은 석면으로 오염된 지역이라도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

아울러 석면폐광은 폐광산에 해당하기 때문에 광산피해방지법과 석면안전관리법을 동시에 적용받는다. 또한 오염된 토양에 대한 관리는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라야 한다. 여기에 매립장 건설을 위한 폐기물관리법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토양환경보전법과 광산피해방지법은 원인자에게 토양과 광산에 대한 정화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필요한 비용 부담을 피하기 위해 석면광산에 폐기물처리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법체계의 모순을 교묘하게 이용해 정화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환경부는 수년째 협의만 계속

2012년 당시 환경부는 폐석면광산 조사결과를 관계부처와 지자체에 통보하고 연차별 정화사업 및 광해방지사업 등의 추진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조사결과를 해당 지자체에 통보해 주민안전조치를 취하는 한편 폐광산에 준한 정화대책이 수립·추진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2년이 훨씬 지난 지금 폐석면광산 주변 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석면으로 고통 받고 있다. 토양정화는커녕 석면으로 오염된 지역에 폐기물매립장을 만들겠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생계도 팽개치고 군청 앞으로, 거리로 나가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석면의 공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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