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동물원은 동물을 ‘보호’하는 곳일까? 아니면 가두고 ‘착취’하는 곳일까? 얼마 전 ‘동물쇼’를 선보이기 위해 개를 조련한다며 전기충격기로 지지고 때리는 행위가 세상에 알려져 파장이 일었다. 그러나 이 같은 동물학대를 방지하기 위한 ‘동물원법’은 2년 가까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국내에서 민영 동물원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운영 주체는 개인부터 작은 기업까지 다양하지만 관련 법조항이 없어 아무나 동물원을 만들고 아무렇게나 운영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부도 위기에 몰린 강원도의 한 민영 동물원에서 먹이를 주지 못해 아사 직전에 몰린 동물들의 사례가 언론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경기도에 있는 모 동물원에서는 바다코끼리를 때리는 장면이 보도되면서 충격을 안겨줬다.

현대의 동물원은 야생동물의 존속에 이바지하는 ‘보전’, 동물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 관람객에게 생태지식과 생명존중 정신을 가르치는 ‘교육’, 관람객이 동물원에서 휴식과 오락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위락’을 제공해야 하지만 이를 충족하는 동물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동물원은 좁은 우리에 동물을 가둬놓고 조련을 빙자한 ‘학대’로 동물에게 ‘쇼’를 시켜 구경거리로 만드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과 동물은 다르다. 그러나 좁은 우리에 가둬놓고 때려가며 ‘쇼’를 시킨다면 동물 역시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사진제공=카라>



극한 스트레스에 이상행동 보여


본래의 생태적 특성을 무시한 채 좁은 우리에 갇힌 동물들은 ‘이상행동’을 보인다. 코끼리가 반복적으로 앞뒤로 흔들거나, 사자가 좁은 우리를 일정하게 왔다 갔다 하는 행동 등은 동물원의 부적합한 환경에서 기인한 ‘정형행동’이다. 사람으로 치면 일종의 정신병에 해당한다.

게다가 동물의 본래 행태와 동떨어진 ‘쇼’를 선보이기 위해서는 가혹한 훈련과정이 따르며 이 과정에서 동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기까지 한다.

주요 국가에서는 대부분 동물원법이나 동물원 면허법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 일정 기준을 갖춰야 국가에서 동물원 운영권을 허가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지난 2013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이 ‘동물원법’을 발의한 상태다. 장 의원의 발의안에는 동물 본연의 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육환경을 조성하고 수의학적 처치가 필요한 동물에게는 처치를 의무화하는 등 동물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동물쇼’처럼 관람을 목적으로 한 훈련 금지 조항도 포함됐다.

그러나 2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동물원법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다른 사안에 밀려 본회의 통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재규어는 삼림, 습지, 초원 등 다양한 환경의 서식지에서 하루 85㎢가 넘는 영역을 이동하며 사냥한다.

더구나 큰고양잇과에서는 유일하게 강에서 수영하며 해양생물을 사냥하는 습성이 있는 동물이다.

그런 동물을 숨을 곳 없는 좁은 우리에 가둬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한국의 동물원이다.  

<사진제공=동물자유연대>



자격 미달 동물원 퇴출해야

 

지난 28일 국회에서는 ‘동물원법 제정안’을 놓고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열린 공청회에는 사육사 및 관람객의 안전을 위한 동물원법의 방향성, 해외 동물원 동향과 국내동물원 운영현황, 동물복지 증진을 위한 동물원법 제정안의 과제 등 동물원법에 대한 대해 토론이 이뤄졌다.

진술인으로 참석한 서울대학교 이항 교수는 “동물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해 적정 사육환경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는 것은 필수”라며 “동물 허가제를 반드시 실시해서 자격미달인 동물원, 수족관이 양산되는 것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시 진술인으로 참석한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많은 동물원의 동물들이 생태와 맞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의 스트레스로 ‘정형행동’ 즉, 정신적 질병(사람에게는 자폐증에 해당)을 앓고 있다”며 “많은 동물원이 ‘생태설명회’라는 이름으로 동물에게 인위적 행동(바다사자 윗몸일으키기, 원숭이 자전거 타기 등) ‘동물쇼’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장하나 의원은 “동물공연의 이면에는 학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정부는 동물원 임의등록제를 추진할 것이 아니라 허가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수미 의원 역시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는 동물원의 동물복지를 위한 규정이나 자정능력이 없다. 동물원에 관한 규정을 법으로 정해야 한다”며 “종·개체 숫자별 사육면적에 대한 기준을 법으로 규정한 해외사례를 참고해 최소한의 사육기준을 법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루 수백킬로를 이동하는 돌고래가 좁은 우리에 갇혀 재주를 부리는 쇼가 과연 아이들에게

교육적일까?

 

 


국민 95% ‘동물원 허가제’ 찬성

 

성균관대학교 한은경 교수가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실시한 ‘동물보호 및 동물원법 제정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동물원 허가제에 대해 95.1%가 찬성했으며 관람 목적의 인위적 훈련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58.9%로 나타나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법을 앞서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정애 의원은 “성균관대학교 한은경 교수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동물쇼 및 훈련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며 “동물공연에는 학대가 수반될 수밖에 없으므로 동물 공연과 관련해서는 적절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물원법 제정에는 시민단체와 진보정당도 적극 나서고 있다. 사단법인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와 녹색당, 동물권을 옹호하는 변호사들은 동물원법 제정을 위해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3개 단체는 ‘동물원법’ 제정 의견서를 환경부에 전달한 데 이어 캠페인을 전개할 예정이다. 3개 단체 의견서는 ▷모든 유형의 야생동물 수용시설 의무 등록 ▷종 보전 등 현대동물원의 기능을 수행하는 동물원에 대한 예산 지원 및 기부금품 모집 허가 ▷‘동물쇼’의 원천 차단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일부 국회의원들과 시민단체가 ‘동물원법’ 제정에 나서고 있지만 통과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동물원법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찬성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주무부처인 환경부 역시 관련 법령 제정에 소극적이어서 아직 논의 단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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