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내년 1월21일부터 빈병보증금이 현행 소주 40원, 맥주 50원에서 100원과 130원으로 각각 60원, 80원 인상된다. 환경부는 빈병 회수를 유도해 재사용률을 높이면 제조업체에게도 큰 이익이 돌아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주류업계는 ‘실효성 없이 소비자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지난 1994년 이후 21년간 소주 판매가격은 약 2배(1994년 556원→ 2015년 1069원) 올랐지만 보증금은 동결됐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빈병을 반환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이에 환경부는 경제적 유인책을 통해 빈병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보증금 및 취급수수료를 인상하기로 했다.


실제로 지난해 출고된 소주와 맥주 49.4억병 가운데 17.8억병이 업소가 아닌 일반 가정에서 소비됐지만 소비자가 직접 반환한 것은 4.3억병(24.2%)에 불과하며 소비자가 포기한 보증금은 무려 570억원에 달한다.



 

환경부는 빈병 무인회수기 등을 설치해 반환률을 높일 계획이다. <사진제공=환경부>



찾아가지 않은 보증금 570억원

 

환경부는 빈병 보증금 인상을 계기로 그간 환급받지 않은 보증금 570억원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효과와 함께 주류업계의 편익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빈병 회수 및 취급수수료 인상에 따라 주류제조사 부담액은 125억원이 증가하는 대신 재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신병 투입 감소(약 5억병)로 인한 편익이 451억원 발생한다는 것이다.

반면 주류업계는 빈병보증금 인상안이 발표된 지난 9월 초부터 강하게 반발했다. 실효성 없이 소비자 부담만 가중시키는 탁상행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즉시 철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2일에도 한국주류산업협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 부담만 늘고 빈병 사재기로 사회 혼란이 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주류산업협회 권기룡 회장은 “환경부가 입법예고안을 통해 현재의 빈병 재사용 비율 85%가 95%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보증금과 취급수수료가 인상된다고 재사용 비율이 높아진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빈병을 소매점에 반환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배출을 통해 내놓는 생활패턴이 정착됐기 때문에 과거의 비닐봉투, 종이봉투, 1회용컵 보증금처럼 반환실적이 저조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소비자들이 술병에 난 흠집 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재사용률을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환경부의 입법예고안이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모든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규제임에도 실태파악이나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특히 빈병보증금 인상이 상위법령에서 규정한 조건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임입법의 한계를 일탈해 위법 소지도 있다는 비판도 있다.

정리하자면 빈병보증금 인상이 주류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 부담만 증가하고 재사용률 증가에는 기여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규제이고 특히 빈병보증금 인상이 국산 주류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주류산업협회는 빈병보증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사진제공=한국주류산업협회>



빈병 재사용 ‘한국 8회, 독일 40회’

 

주류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환경부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환경부 홍정기 자원순환국장은 “보증금은 빈병을 반환할 때 전액 환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가격 인상 요인이 아니다”라며 “빈병 회수율과 재사용률이 증가하면 장기적으로 소비자와 도매상, 주류업계 모두 이익이 된다”고 밝혔다.

주류협회는 재사용률을 높일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해외사례를 보면 보증금이 올랐을 때 재사용률도 함께 올랐다. 아울러 한국의 회수율이 95%로 높은 편이지만 재사용횟수 8회, 재사용율 85%로, 독일의 40회 이상 95%에 비하면 매우 낮다. 가까운 일본 역시 각각 28회, 94%를 기록해 한국보다 높다.

빈병보증금이 너무 낮다보니 직접 반환하기는 대신 고물상 등에서 수거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비자가 직접 반환했을 때 파손된 비율이 2%에 불과한 반면 고물상 등에서 수거할 경우 17%가 운반과정에서 파손된다.

아울러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현재 빈병을 반납하는 소비자가 고작 12%에 불과한 반면, 보증금 인상 시 88%가 반납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한편 소비자들은 빈병보증금 인상을 통해 자원을 절약하자는 개정안에 동감하면서도 주류업계가 이번 기회를 이용해 술값을 올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맥주와 소주는 물가 상승 요인이 되기 때문에 당국의 통제를 받고 있는데, 이번 빈병보증금 인상을 핑계로 슬그머니 술값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금의 빈병보증금 인상 반대는 나중에 핑계를 대기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해석도 있다.

주류업계, 이 기회에 술값 인상?

 

환경부의 빈병보증금 인상이 긍정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좀 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내년 개정안 시행 이전에 출고된 빈병에 대해서는 현행처럼 30원, 50원만 지급하는데도 사재기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환경부의 홍보 부족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

아울러 개정안 시행 이후 출고되는 병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도 고민이다. 하루에 수십만병이 쏟아지는데 사람이 일일이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환경부 역시 제도 시행 이후 1~2달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라벨링 등의 방법을 주류업계와 논의 중이다.

홍정기 자원정책국장은 “공청회 등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충분히 거쳐 법이 개정된 만큼 다소의 부작용과 혼란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재활용률을 높이고 자원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빈병보증금 인상이 시행 전부터 업계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시행을 불과 2달여 앞둔 만큼 환경부가 부작용을 줄일 수 있도록 사전장치를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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