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환경부가 생활화학제품에 함유된 살생물질의 사용실태 전수조사와 안전성 검증에 나선다고 밝힌 가운데 정보공개의 범위를 기업의 자율성에 맡겨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환경부는 올해는 우선 생활 속에 밀접하게 사용되면서도 위해우려가 높은 제품을 우선 조사할 계획이다. 특히 상반기 중에는 15종의 위해우려제품을 제조·수입하는 8000여개 기업에게 제품 내 함유된 살생물질 종류 등을 제출받을 계획이다.

제출된 살생물질을 목록화하고 여러 제품에 사용되거나 위해 우려가 높은 물질은 시급성에 따라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하반기부터라도 단계적으로 위해성 평가를 추진한다.

이와 병행해 위해성 문제가 제기된 스프레이형 방향제, 탈취제 등의 위해우려제품에 대해서 주요 제조·수입기업과 안전관리 협약을 체결해 하반기 중 유·위해성 자료를 제출받아 위해성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다.

문제는 기업들의 자발성에 기댈 경우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영업상의 기밀’을 이유로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던 기업들이 강제성 없는 정보공개에 순순히 응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내년부터 조사범위 확대

 

환경부는 올해 15종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면 내년부터는 위해우려제품으로 관리되지 않는 생활화학제품, 살생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공산품과 전기용품, 사업장에서 이용되는 살생물제품으로 조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대형매장, 온라인 마켓 등에서 판매되고 있는 생활화학제품 중에서 위해우려제품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살생물질 함유가 의심되는 품목 역시 조사하고 해당제조·수입업체에 사용된 살생물질 정보를 요구할 계획이다.

특히 에어컨·공기청정기 항균필터 등 화평법 이외의 법률로 관리되고 있지만 살생물질을 함유하고 있을 것으로 우려되는 공산품 등에 살생물질을 쓰고 있는지 조사한다.

살생물질 전수조사는 내년 말까지 완료할 예정인데, 조사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위해성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위해성 평가를 병행하여 위해우려제품에 포함하거나 안전관리기준을 설정한다는 계획이다.

누더기 화평법 보완이 먼저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조사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안전관리기준을 마련하려면 제품에 대한 모든 정보, 특히 위해도를 정확히 평가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만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지난 2011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제품에 대한 조사를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아울러 이번에 조사하는 15종 외에는 환경부 소관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불거지면서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이 만들어져 15종의 생활화학제품 관리권한이 산자부에서 환경부로 넘어왔지만 15종 외에도 위험한 제품이 얼마나 있는지 짐작도 못하는 상황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불거지면서 15종이 산자부에서 넘어온 것처럼 문제가 생겨야 15종 외 다른 제품들도 추가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사후처리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밝혔다.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 조치를 취하는 것보다 핵심조항이 빠져 누더기 상태가 된 화평법을 본래 취지에 맞게 되돌리는 것이 낫다는 지적도 있다.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고를 막겠다는 취지로 화평법을 만들었지만 연간 1톤 미만의 화학물질은 화평법 등록 대상에서 제외했고 가습기살균제처럼 본래 허가 받은 용도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경우 신고의무 역시 삭제했다.

특히 유해화학무질 지정 권한도 원안에서는 환경부에 있었지만 논의과정에서 후퇴해 산자부 등 관계부처와의 협의가 필요하도록 바꿔 ‘산업진흥 부서와 규제 부서를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조차 무너졌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환경부가 생활화학제품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화평법으로는 화학제품 사고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환경부가 인정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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