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정부가 기본계획 행정예고를 통해 사실상 최초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로드맵을 발표한 가운데 ‘원전폐기물 대책 없이 원자력발전소만 늘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2년에 걸쳐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영구처분시설 부지를 선정하고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을 각각 2035년, 2053년부터 가동하는 내용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가장 민감한 부지선정에 대해서는 자문기구인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권고한 4년보다 3배 늘린 12년으로 잡았다. 가장 골치 아픈 문제인만큼 당장 기준을 제시하기 보다 ‘폭탄 돌리기’를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월성원전에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을 짓지 않겠다’는 당초 약속을 깨고 ‘사용후핵연료 시설이

아니다’라는 억지논리를 내세워 임시저장고 증설을 시도하고 있다.<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고준위방사능폐기물과 관련해 시급한 당면 과제는 2019년부터 포화상태에 이르는 임시저장고다. 현재 추산으로 2019년 월성, 2024년 영광, 2037년 울진, 2038년 신월성 원전의 임시저장고가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중저준위 폐기물에 비해 수십억배 방사능오염도가 높은 고준위방폐물 처리시설을 유치하겠다고 나서는 지자체가 과연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원전이나 연구소·병원 등에서 쓴 작업복이나 장갑과 같은 방사능 오염도가 낮은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리하는 경주 방폐장 유치를 설득시키기 위해 500억원이던 지원금을 3000억원으로 올렸으며 8조원의 지역경제 파급효과까지 약속했다.

아울러 2005년 중저준위 방폐장 주민투표 당시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을 경주에 짓지 않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고준위 방폐물 저장시설은 원자력발전소 관계시설이라 괜찮다’는 논리로 임시저장고를 증설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2024년 임시저장고 포화가 예상되는 영광의 경우 지역주민들이 정부의 공론화 프로그램을 거부하고 임시저장고를 비롯한 추가 핵시설 건설을 반대하고 있으며 울진과 고리 역시 마찬가지다.

녹색당은 성명을 내고 “정부가 진행기간을 길게 잡은 것은 사회적 합의가 힘들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원전정책에서 전혀 전향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며 “여전히 노후 원전 수명 연장을 고집하고 신규 원전의 대규모 증설을 계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사능폐기물 처리대책은 손 놓고 원전 증설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중형 중간처리시설에 대해서도 ‘원전마피아를 위한 세금 도둑질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재활용하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높고 경제성도 낮은 사용후핵연료를 위한 중간저장시설은 핵무기 원료를 얻기 위한 재처리 가능성을 남겨 놓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향후 고준위방사능폐기물 관리정책 <자료제공=산업통상자원부>



이처럼 정부 계획에 대해 일제히 비판하는 것은 고준위방폐물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것을 수십년 전부터 예측하고서도 대책 마련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방폐물저장시설에 대한 대책도 없이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과 신규 원전 증설은 멈추지 않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녹색당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기본계획에는 작게는 임시저장고 포화에 대한 대책을 담고 크게는 정부 에너지정책의 전환을 토대로 재수립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지적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을 외면하고 40년 후의 공허한 계획만을 외치고 있다.

 

한편 산업부 채희봉 에너지자원실장은 브리핑을 통해 “이번 기본계획은 미래세대를 위해 고준위방폐물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식과 절차를 담은 사실상 최초의 로드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국민이 안전성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필요한 핵심관리기술은 적기에 차질 없이 확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부지선정 기간을 12년으로 잡은 이유에 대해 채 실장은 “부지 확보에 있어 주민수용성, 소통, 안전성 확보를 위한 부지조사가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수용성 제고와 안전성 검토 시간을 기본적으로 길게 잡았다고 보면 된다. 반면 중간시설 건설은 전문가 의견을 들어본 결과 건설기간을 조금 줄일 수 있다는 검토를 받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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