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이번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이 관리·감독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은 산업부 책임이 가장 크다는 비판이 거세다.

가습기살균제 허가를 내준 산업부는 지금까지 “당시 안전검사를 할 법적 근거 없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해 왔다.

법원 역시 정부를 상대로 한 피해유족들의 소송에서 ‘자율안전확인 및 신고의무를 제조업자에게 강제할 근거가 없다’며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국회 산업통상위원회 우원식 의원은 “2007년 가습기 살균제가 ‘세정제’로 KC마크를 획득했을 당시 ‘자율안전확인신고서’를 입수해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과 비교한 결과 산업부가 충분히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안전성 조사를 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제품에 표시된 주의사항에는 “마셨을 경우 다량의 물을 마신 후 의사에게 문의 하십시오”와 같이 위험성을

경고하는 문구가 있었지만 산업부는 자율검사에 맡겼다. <자료제공=우원식의원실>



제품 자체가 살균처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살균제’였기 때문에 의약외품으로 분류해 안전성 조사가 필요했지만 자율안전확인대상인 ‘세정제’로 분류해 KC마크를 부여했고 이에 대한 모니터링도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자율안전확인대상은 제조업체가 산업부 인증을 받은 전문기관에 안전성 조사를 의뢰해 이를 신고하는 형식으로, 세부적인 내용을 산업부 산하 인증기관인 기술표준원에 제공하지 않는다. 이번 가습기살균제 사태와 같은 사례가 발생하면 오히려 기술표준원이 해당 전문기관에 세부 자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신고서와 제품설명서 등을 살펴보면 가습기를 세척하는 용도가 아닌 ‘가습기에 넣어서 분무하는’ 제품이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음에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허가를 내줬다.

우원식 의원은 “제품안전 분야에서도 ‘안전의 과도한 외주화’로 인한 참사다. 소비자들은 KC마크 등 정부공인 제품안전 인증을 보며 안심하고 구매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다른 제품의 설명서에도 위험성을 경고하는 문구가 있다. <자료제공=우원식의원실>



아울러 안전검사를 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던 산업부 주장과 달리 당시 품공법 제28조에 의해 자율안전확인대상이라도 어린이 등의 생명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제품은 안전성조사를 할 근거가 있었다. 실제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부분은 산모와 영·유아, 어린이 등 건강취약계층이었다.

우원식 의원이 2007년 KC마크 인증을 획득한 제품의 자율안전확인대상 신고서와 부속서류인 제품사용 설명서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해당 제품들은 인체에 유해하다는 경고문구가 포함됐기 때문에 충분한 조사대상이 될 수 있었다.

해당 가습기 살균제 대부분 ‘어린이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할 것’, ‘피부에 닿거나 눈에 들어가거나 마셨을 경우 즉시 의사에게 문의할 것’, ‘피부가 민감하면 장갑을 착용해 사용할 것’ 등 마치 락스와 같은 화학물질과 유사한 경고문구를 주의사항으로 넣었다.

심지어 한 제품의 안전검사 합격증서에는 ‘유해물질함유 화학제품’이라고 버젓이 명시돼 있었지만 자율안전확인대상이기 때문에 산업부의 직접 관리 대상에서 제외돼 검사대행기관을 거쳐 유통됐다.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시험성적서에는 흡입 시 어떠한 위해성을 미칠 수 있는지를 검사한 항목이

없다. <자료제공=우원식의원실>



또한 산업부는 ‘자율안전확인대상이라도 어린이 등의 생명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제품은 안전성조사를 할 수 있다’는 조항에 근거해 시중에서 유통되는 가발용 접착제, 우산·양산, 비옷·슬리퍼·장화 등의 안전성을 직권으로 조사한 사실이 있었다. 피부 접촉 생활용품들은 검사했지만 정작 위험성이 훨씬 큰 흡입용도의 가습기살균제 안전성 조사는 무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우원식 의원은 “이번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명백히 대한민국 정부의 실책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며 그 중심에 산업부의 무능과 안전불감증이 있었다”며 “피해자들이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청구에 대해 ‘국가의 과실이 아니다’며 발뺌할 것이 아니라 손해배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우 의원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제품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안전성 조사가 이어졌어야 함에도, 항목과 품목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대다수의 제품들이 자율안전확인대상으로 안전검사대행기관만 거치고 손쉽게 출시됐다. 결국 제품안전 분야에서도 ‘안전의 과도한 외주화’로 인한 참사가 발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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