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전기요금 인상 이야기가 나오면서 전기요금 현실화를 통한 수요관리가 이뤄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산업계의 저항이 거세 쉽지 않을 전망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우태희 2차관은 “너무 싼 전력으로 전력시장이 왜곡돼 있다. 서서히 올리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인상 방침을 밝힌 것이다.

반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4월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산업용요금을 인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고 산업부 일각에서도 이런 논리에 찬성하고 있다.

 

주택용만 비싼 불합리한 요금제

우리나라 전력요금 체계는 주택용 요금에만 누진

세를 적용하는 등 매우 불합리 하다는 비판을 받

고 있다.

이처럼 상반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전력가격체계 자체의 문제점 때문이다. 전기요금은 크게 산업용과 일반영업용, 주택용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주택용요금에만 누진세가 적용된다.

예를 들어 50W를 사용해 4400원의 전기요금을 내던 가정에서 10배 늘어난 550W를 사용한다면 전기요금은 10배가 증가한 4만4000원이 아닌 14만4000원의 요금을 내야 한다. 무려 41배의 요금폭탄을 맞게 되는 것이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전기 절약을 유도하고 에너지복지를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전기사용량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높은 누진율로 인해 저소득층의 가족이 많은 가구가 고소득 1인 가구에 비해 더 비싼 요금을 내는 경우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생계비 미만인 5인 이상 빈곤가구의 전기요금 단가는 165.7원/kWh으로, 최저생계비 5배 이상 1인 고소득 가구의 단가인 111.1원/kWh에 비해 높은 가격으로 전기를 사용했다.

외국의 경우 누진율은 미국과 일본 등에서 1.1~1.5배 수준에 불과하고 누진율이 가장 높은 대만 역시 하계 2.7배 수준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누진율은 11.7배로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다.

많이 쓸수록 이득인 산업용요금

반면 산업용요금은 많이 쓰면 쓸수록 기업에 이익이다. 산업용 경부하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은 이익이 되는 반면, 적게 쓰는 기업은 전기요금을 추가로 부담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2년 경부하전력 다사용 상위 5개 기업의 전체 전력사용량 중 경부하시간대 사용량 비중은 56%로, 산업용 전체 경부하시간대 사용량 비중인 49.2%보다 높으며 그에 따른 전기요금 평균절감액은 기업당 363억원에 달한다.

게다가 경부하시간대 평균 전력구입단가는 81.8/kWh인 반면, 평균구매단가는 61.8원/kWh에 불과해 한전은 경부하 전력판매 손실액 2조2000억원을 최대부하 전력판매 수익으로 보전하고 있다.

결국 가정에서 쓰는 상대적으로 비싼 전기요금과 최대부하 시간대 전력을 사용해 경부하요금보다 비싼 요금을 내는 기업들이 대기업 전기요금을 보조해주고 있는 셈이다.

민간화력발전만 이익 보는 구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 대부분은 한전에서만 전력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민간 기업들도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다만 전력공급망을 한전이 독점하고 있을 뿐이다.

한전은 전력거래소를 통해 원자력발전소를 포함한 공영발전소에서 1차적으로 전력을 낮은 가격으로 구입하고 나머지를 민간발전소에서 몇 배 높은 가격에 사들인다.

공기업이 생산하는 석탄, 수력, 원자력 등은 원가 이하의 낮은 가격으로 사들이고, 민간기업이 생산하는 전력은 한전이 판매하는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구입하기 때문에 한전만 2중으로 손해를 보는 구조다.

현재의 전력요금 체계에서 이익을 보는 것은 경부하요금을 사용하는 대기업과 피크시간 전력을 판매하는

민간화력발전소 뿐이다.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에 따르면 민간발전회사의 순이익은 꾸준히 증가해 포스코에너지가 2001년 280억원에서 2012년 1818억원으로 늘었으며 2012년 민간발전회사들은 SK E&S의 5479억원을 포함해 모두 9000억원이 넘는 이익을 챙겼다. 게다가 정부는 앞으로 민간화력발전소를 계속 늘릴 계획이다.

여기에 지나치게 낮은 농사용 전기요금도 한전의 적자에 한몫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농사용 전력요금은 제자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원가회수율은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2012년 기준 1000kcal의 열을 생산하는데 면세용 등유는 134.6의 비용이 필요한 반면, 농사용 전력은 50원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에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 또한 농사용 전기요금으로 인한 혜택 45.3%가 0.6%에 불과한 소수 대규모 사용자에게만 집중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재생에너지 투자 여력 상실

이처럼 한전이 비싼 값에 전력을 구입해서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모순된 가격정책이 계속되면서 재생에너지와 낡은 배전망에 투자할 여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전경련은 한전이 10조원대 영업이익을 냈기 때문에 전력요금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현대차에 땅을 팔아 생긴 일시적인 흑자일 뿐이다.

이 같은 문제에 정부가 내놓은 해답은 원전과 민간화력발전소를 늘려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것이지만 수요관리가 우선되지 않은 공급정책은 전기낭비를 부추길 뿐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더불어 전기요금이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던 호주는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발전소를 더 짓는 대신 전기요금을 OECD 상위권 수준으로 인상했다. 그 결과 2009~2013년 사이 전력수요가 15% 감소했고 태양광발전 등 분산형 재생에너지 비중이 13%로 대폭 늘었다.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은 수요 관리의 핵심인 전력요금 가격 인상을 빼고 공급만 늘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지만 물가인상 압력 때문에 쉽지 않다. 전기요금은 다른 공공요금에 비해 물가파급효과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교통요금의 소비자물가 가중치 27.3, 파급효과는 0.34에 비해 전력·수도·가스요금의 소비자물가 가중치는 42.9, 파급효과는 0.74로 매우 높다. 이 때문에 기획재정부로서는 공공요금 인상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 인상이 창조경제”

게다가 우리나라는 전력산업 진흥과 전력수요 관리를 같은 부처에서 맡고 있다. 당연히 수요관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고 산업계와 한편이 돼 경쟁력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늘 득세하다.

갖가지 문제점에도 불구 장기적으로는 전력구조 개편과 함께 전기요금 인상을 통한 수요관리와 함께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고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지금 당장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다음 정부로 미룰 것이냐의 차이인데, 현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을 차기 정부로 미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환경운동연합은 논평을 통해 “전기요금 인상안을 구체적으로 발표하면 패시브하우스 건축, 건물 리노베이션 시장이 활성화되고 일자리도 늘면서 전기소비도 줄일 수 있다”며 “전기요금 인상분을 재생에너지 투자에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면 새로운 시장이 생기고 일자리가 늘어나며 원전과 석탄 비중을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창조경제”라고 지적했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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