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센터=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한국은 지난 2009년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2020년까지 BAU(business as usual, 배출전망치) 대비 30%의 온실가스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국제사회에 제시했다. 아울러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온실가스 목표관리제, 배출권거래제 등을 시행하고 전기자동차 보조금 등 정부지원을 강화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산업계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수십조원의 비용 발생으로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전망을 내놓는가 하면, 경기가 안 좋다고 엄살을 부릴 때는 언제고 미래에는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며 배출전망치를 높여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BAU 대비 30% 감축 목표는 경제적 상황 및 정치적 배려를 통해 설정한 목표다. 다시 말해 지구 온난화로 인한 파멸을 막을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을 가로막지 않고 산업계 부담을 최소화하는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한 목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치·경제적 상황을 배제하고 오로지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재앙을 막기 위해 줄여야 할 온실가스의 양은 얼마나 될까? 세계 각국이 제시한 목표가 ‘지구 온도 2℃ 이내 상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에 충분할까?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등 환경단체들은 국가 감축목표 제시를 앞두고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놨다. <사진=김경태 기자>



탄소예산 2/3는 이미 사용했다


최근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이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내놓으면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2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Post-2020 국가 감축목표에 대한 시민사회의 제안’ 발표회에서 기후정책연구소 이진우 부소장은 “실현 가능성 등을 배제한 순수 과학적 측면에서 분석한 결과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최소 34%에서 최대 61%까지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감축목표 연구결과를 발표한 에너지

기후정책연구소 이진우 부소장

시민단체들이 말하는 과학적 측면의 분석이란 바로 탄소예산(Carbon Budget)을 말한다. 언뜻 보기에는 ‘탄소를 줄이기 위한 예산’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뜻이 아니라 ‘지구의 파멸을 불러오지 않고도 세계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의 남은 양’ 정도가 올바른 개념이다.

정확하게는 산업화 이전 시기인 1800년대에 대비 지구 온도 상승을 2℃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누적배출량이 2900GtCO₂(기가CO₂톤) 이하로 유지돼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배출 가능한 2900GtCO₂ 가운데 인류가 1900GtCO₂을 이미 사용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100년 동안 196개 국가가 남은 1000GtCO₂을 적절하게 나눠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 온도는 2℃ 넘게 상승하고 각종 환경재앙으로 파멸을 맞을지 모른다.

남은 1000GtCO₂의 이산화탄소만으로 인류가 생활하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량을 대폭 줄여야 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지구의 파멸을 막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70%까지 줄여야 하고 2080~2100년에는 인위적인 탄소 배출이 거의 없는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

한국 지구온난화 기여도 1.7%

이진우 부소장이 발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한국은 지금까지의 누적배출량과 감축기술을 고려한 지구온난화 기여도가 1.7%다. 참고로 미국은 28%, 중국은 14%이며 일본 6.1%, 독일 4.9%, 러시아 4.6% 순이다. 

미국, 영국 등 산업화를 일찍 시작한 국가들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자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재정·기술적 지원을 통해 해외에서도 추가적으로 온실가스를 더 감축해야 한다. 일본은 자국 내에서 줄여야 할 온실가스보다 해외에서 줄여야 할 온실가스 양이 더 많을 정도다.

전통적인 선진국에 비해 후발주자인 한국은 자국 내 온실가스만 줄이면 되지만 쉽지는 않다. 한국은 2020년에는 2005년과 비슷한 수준인 5억700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해야 한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BAU 대비 30% 감축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배출량(5억4300만톤)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에 대해 환경정의 박용신 운영위원장은 “주요 국가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 책임 비율은 1.7%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감축목표조차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과도한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2030년경에는 현재 14톤인 1인당 배출량을 1/3 수준인 4.2톤으로 줄여야 하고 국가 전체적으로는 최대 61%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 정부가 2020년까지 고작 4%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음에도 산업계가 맹렬하게 반발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목표다.

한계가 분명한 ‘자발적 기여’

COP21의 쟁점과 전망을 발표한

에너지시민연대 이유진 정책위원

이처럼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세계는 매년 기후변화당협약(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 당사국총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특히 2011년 열린 17차 총회(COP17)에서 채택된 ‘더반 플랫폼’에 따라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체제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논의를 올 연말에 있을 COP21(파리 총회)까지 끝내야 한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늦어도 10월 말까지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자발적 기여방안(INDC)을 제출해야 한다. 

에너지시민연대 이유진 정책위원은 “온실가스 감축을 자발성에 기초할 경우 각국의 기여방안을 더한 총합이 파국을 피하기 위한 ‘2℃ 이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라며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느슨한 목표치가 나오더라도 강제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교토체제와 같이 감축량을 할당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발적 기여’라는 느슨한 체계가 만들어진 것은 결국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갈등 때문이다.

개도국들은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고 선진국들은 한국을 포함한 선발개도국들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를 문제 삼으면서 맞선 결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각국이 알아서 줄이는 방식이 돼 버린 것이다.

경제정책과의 융합 필요

 

각국의 자발적 기여방안(INDC)이 ‘지구온도 상승 2℃’라는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만약 올 연말에 있을 파리총회에서 협정서 도출마저 실패할 경우 UNFCCC 체제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문제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IPCC 이회성 부의장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유정민 교수 역시 “INDC가 갖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자발적인 공약이라는 것이 2℃ 억제라는 비전에 대한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의 합의에 그칠 가능성이 있으며 구속력 있는 이행서가 아니라 국제적 합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파국을 막기 위한 각국의 합의가 쉽지 않은 이유가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시장을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IPCC 이회성 부의장은 “과학과 정책을 연결시키는 것은 결국 시장”이라며 “투자자를 설득해야 시장이 움직인다. 기후정책과 경제발전정책의 융합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후변화 과학은 지구온도 2℃ 상승이 필요하다고 분석했지만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은 오히려 증가했다. 특히 화석에너지 공급능력이 잠재적 수요를 초과하기 때문에 인위적 개입이 없다면 100년, 200년 후에도 화석에너지가 실생활에 사용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책임과 능력’ 원칙 재확인

시민사회가 제안한 온실가스 감축 시뮬레이션의 가장 큰 문제는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연구진 역시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다. 각국이 현실에 맞는 감축계획을 받아들이는 현재의 방식이 아니라,지구 파멸을 막기 위해 필요한 감축량을 먼저 산출한 후 이를 나누는 탑다운(Top-Down)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유정민 교수는 “GDR 시뮬레이션 평가는 책임과 능력이라는 원칙에 근거한 규범적인 시나리오를 만들어 국가 INDC 작성에 중요한 준거로서 큰 의미가 있다”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BAU 기준 방식에서 탈피해 보다 명확한 감축 목표를 제시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은 현재 총리실을 중심으로 UN에 제출할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INDC를 만들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산업계와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들의 견해를 모으고 있지만 산업계가 맹렬하게 반발해 조기 제출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때는 ‘녹색성장’을 외치며 선진-개도국 간 가교역할을 자임했던 한국 정부가 어떠한 내용의 INDC 안을 제출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mindaddy@hkbs.co.kr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