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기후변화협정에 대한 국제법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의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학술회의가 개최됐다. <사진=박미경 기자> |
[국립외교원=환경일보] 박미경 기자 = 지난해 12월, 2020년 이후 새 기후변화 체제 수립을 위한 최종 합의문인 ‘파리기후변화협정(Paris Agreement)’이 195개 당사국의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핵심 요소만 담아놓은 큰 틀에서 이젠 세부 내용을 확정 지을 후속협상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국제법의 심층적 분석을 통한 한국의 대응 방안 모색이 시급하다.
국제법학계는 ‘이행 강제’가 아닌 ‘자발적 성격’을 띠는 파리협정 이행방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다수 전문가들은 파리협정이 강제성은 없지만 종합적 측면에서 강한 구속력을 가진다는 것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파리협정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비국가행위자 참여를 확대해 잠재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행강제→촉진으로 참여 유도
▲고려대 정서용 교수 |
파리협정은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신기후체제로 2021년 1월부터 적용된다.
교토의정서는 1997년 일본 교토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돼 2005년부터 발효됐으며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지웠다.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평균 5% 감축 의무를 부여하고 불이행 시 제재조치를 마련하는 등 강제적 성격을 가졌는데, 미국이 애초부터 의정서 참여를 거부하고 일본, 캐나다, 러시아, 뉴질랜드 등 잇따라 탈퇴를 결정하면서 실패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교토의정서 한계를 보완한 파리협정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195개 국가에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부과한다. 국제사회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보다 낮은 1.5℃ 이하로 제한하고 국가별 기여방안(Nationally Determined Contrubutions, 이하 NDC)은 스스로 정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매 5년마다 상향된 목표(진전 원칙)를 제출해 이행 여부를 검증하기로 합의했다.
“이행준수 체제 오히려 강력해져“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조아영 변호사 |
특히 주목할 점은 교토의정서에서 파리협정으로 넘어가면서 국제법적 흐름이 달라졌다. 기존 규제중심의 하향식 접근법(Top-down)에서 국가별 기여방안을 중심으로 하는 상향식 접근법(bottom-up)을 택한 것이다.
고려대학교 정서용 교수는 “하향식은 전통적인 국제법 접근방식으로 강력한 이행의무를 부과하지만, 상향식은 국가가 자발적으로 나서 목표를 설정하고 UN에 제출해 그 이행 여부를 검증하는 형태”라고 소개했다. 교토의정서 이행강제적 성격이 파리협정으로 넘어오면서 이행촉진적 성격으로 ‘이행준수 체제’가 변화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NDC 이행을 강제할 수 없기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 교수는 “이런 변화가 이행준수 체제 약화로만 볼 수 없다”며 “5년마다 상향된 NDC를 제출하고 이행하는 과정을 봤을 때 강력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조아영 변호사도 “강제적 처벌만이 실효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며 “교토의정서는 의무 불이행 시 제재 조치를 마련했지만 결과적으로 당사국의 참여 의지를 저해시켰다”고 지적했다. 많은 국가를 참여시켜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조 변호사는 “파리협정 역시 제재를 넣을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대립했지만 강제적 이행 준수는 포기하고 투명성을 높이는 MRV(각국의 감축 현황을 측정·보고·인증하는 감시체제)가 강조됐다”고 덧붙였다.
▲교토의정서 이행강제적 성격이 파리협정으로 넘어오면서 이행촉진적 성격으로 ‘이행준수 체제’가 변화했다. |
투명성 높여 협정 실효성 보완
한편, 이행을 이끌기 위해서는 비국가행위자 역할이 커질 전망이다. 파리협정의 구체적 운영에 있어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법주체 이외의 비국가행위자의 활약이 예상된다.
비국가행위자(Non-State Actors, NSAs)란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 다국적기업, 개인, 지자체 등 다양한 행위자를 말한다.
▲왼쪽부터 국회입법조사처 정민정 입법조사관, 국제환경규제기업지원센터 김대희 교육팀장, 외교부 박꽃님 사무관 |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국제환경규제기업지원센터 김대희 교육팀장은 “파리협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감축과 적응 등은 국가뿐만 아니라 그 이행과 준수에 기여하도록 시민과 기업 참여를 독려한다”며 “비국가행위자의 많은 기여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국회입법조사처 정민정 입법조사관은 “합의문 자체에 비국가행위자에 대한 자세한 규정을 안 했다는 것은 후속 협상에서 논의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비국가행위자 없이 기존 조직만으로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외교부 기후변화외교과 박꽃님 사무관은 “정부와 비국가행위자가 함께 파트너십을 구축해 잠재력을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파리협정에서는 NDC 이행 상황에 대한 점검이 보다 강화된다. 2023년부터 5년 단위로 파리협정 이행 전반에 대한 종합 점검을 실시하는데, 책임은 묻지 않지만 투명한 정보 공개로 감축의무 이행상황을 감시하고 불이행 시 촉구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했다. 여기에 비국가행위자의 역할이 확대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편,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대한 서명은 오는 4월22일 UN 사무총장 주재 고위급 서명식 이후 1년간 개방되며 55개 국가 및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55% 이상 배출 국가가 비준한 뒤 30일 후 협정 발효된다. 큰 그림을 그렸으니 이제는 각국이 제출한 NDC 달성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세우고 정책을 정비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