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대책 실효성을 두고 정부, 국회,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모여 논의하는 장이 마련됐다. <사진=박미경 기자>



[국회=환경일보] 박미경 기자 = 지난 11월29일 정부 합동으로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대책을 확정·발표했다. 내년 6월까지 생활화학제품 전수조사 후 위해제품은 즉각 퇴출하고 부처별로 나뉜 관리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에 대한 시민사회의 체감온도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기존 정책 대비 진일보했으나 근본적 전환을 위한 조치로써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 봐주기로 성분공개 의무화, 징벌적 배상제도 도입 등 알맹이는 빠졌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또한 가습기살균제와 가장 유사한 형태의 제품인 ‘스프레이제품’에 대한 허가제도, 어린이용품 관리체계,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는 신뢰 구축 필요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왼쪽부터 환경부 류필무 과장,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실장

최근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대책의 실효성 및 한계를 논의하는 토론회 자리에서 환경부 생활환경TF 류필무 과장은 정부의 안전관리 대책 추진 배경과 방향을 설명했다.

 

정부는 시장에 유통 중인 생활화학제품을 내년 6월까지 일제히 조사해 위해성을 평가한다. 조사결과 위해도가 높은 제품은 즉각 퇴출 조치하고, 제품목록·위해여부 등을 공개(생활환경안전정보시스템)할 예정이다.

 

또한 ▷인체·식품에 직접 적용되는 제품(의약외품, 화장품, 위생용품 등)은 식약처 ▷살생물제와 물질의 유출 가능성이 높은 제품은 환경부 ▷유출 가능성이 낮은 제품은 산업부가 관리하도록 원칙을 수립했다. 살생물제는 별도의 법령을 제정(가칭 살생물제 관리법)해 관리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위반 사업자 처벌·소비자보호장치 부재
이러한 정부의 화학물질관리 대책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생활화학물질 및 제품 관리의 전면적인 개선대책을 구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소비자 안전이 아닌 기업의 관점에 머물려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위반 사업자 처벌에 대한 명확한 내용이 빠져있고 소비자보호장치도 여전히 부재하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10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최악의 환경참사를 겪은 정부의 대책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한가한 소리만 나열해 놨다. 7개 부처가 피해자들을 한 번이라도 만났다면 이런 정책은 도저히 나올 수 없다”며 “시장조사 및 퇴출 강화, 관리체계 개편, 제품관리 이행기반 구축 등 정부에서 제시하는 내용에 비해 기업 대책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최 소장은 “기업의 역할 강화라면서 제시된 내용은 기업의 자발적인 전 성분 공개다. 징벌접 손해배상 도입, 중대재해처벌 도입, 제조물 책임법 강화 등 기업 규제 내용은 뺀 채 기업의 선의에 의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 네오앤비즈연구소 이종현 소장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김신범 실장 역시 “기업이 할 일을 정부가 대신하고 있는 꼴”이라며 “기업에게 등록 정보를 충실히 제출케 해 정부의 심사부담을 경감하고 기업이 제품 안전성을 우선 확인해 사용정보를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산업부, 육성과 안전관리 한 곳에서?
생활화학제품 가운데 유해 함유물질이 낮은 제품은 산업부에서 관리토록 조정한 것에 대해서 비판이 제기됐다. 김신범 실장은 “아무리 유해성이 낮은 제품이라 하더라도 산업부가 관리하는 것이 맞냐”며 “어린이용품을 산업부가 관리하는 것에 대해 국민 불안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현재 환경부와 국가기술표준원에서 어린이용품에 대해 각각 위해성평가와 제품관리를 나눠서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 제품 중 화학물질의 위해성평가와 안전관리가 힘든 영역이 어린이용품과 같은 노출 경로가 복잡한 곳인데 국가기술표준원이 맡아 관리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네오앤비즈연구소 환경안전연구소 이종현 소장은 “이번 대책은 문제가 된 생활화학가정용품만 환경부로 이관시킨 것이 전부”라며 “산업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제조업체를 지원하고 육성해야 될 책임이 있는 부서에게 동시에 제품의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과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장하나 대외협력위원장

가습기살균제와 가장 유사한 형태의 제품으로 사용자들에게 호흡 독성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스프레이제품’ 허가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최예용 소장은 “신규 스프레이제품은 호흡 독성 안전자료 제출을 의무화해 심사해야 하고 기존 판매제품은 빠른 시일 내(1~2년) 안전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헤어스프레이 사용으로 건강 피해를 입은 한 소비자는 “홈쇼핑에서 구입한 헤어스프레이를 사용한 후 여성질환 발병, 알레르기, 비염 등 건강에 급격한 변화를 경험했다”며 “식약처에도 여러번 문의했지만 폐쇄적인 답변뿐 맨땅에 헤딩한다는 생각으로 피해입증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좌장을 맡은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장하나 대외협력위원장은 “이번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봤을 때 피해자와 기업·대형로펌과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 그 이상의 힘의 불균형이다. 기계적 중립을 외쳤던 정부는 기업에게 성분공개를 요구하지 않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증하라는 것이 정부가 중립을 지키는 방식”이라며 “정부가 누구 편을 들었는지 노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지난 12월12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가습기피해자와가족모임은 국회 정문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재구성하고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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