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서효림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문제가 부상하면서 극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혹한의 극지에서 펼쳐지는 극지 연구는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기 위한 도전으로 가치가 있다.
작년 우리나라는 남극조약 가입 30년을 맞았다. 남극조약은 남극 영유권을 둘러싼 각국 분쟁을 막기 위해 1961년 발효됐으며 우리나라는 1986년 33번째 서명국으로 가입했다. 조약가입 30주년과 함께 극지연구소 강성호 박사의 극지 연구 인생도 30년을 맞이했다. 극지 연구의 도전과 개척의 역사를 써내려간 선구자이지만 “지질학적 규모에서 30년은 찰나일 뿐”이라고 말하는 강 박사. 그를 만나 극지의 잠재력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운명은 우연처럼 다가왔는데



우리나라 극지 연구는 1970년부터 시작됐다. 1978년 수산청이 남극해 크릴을 시험 조업한 것이 남극 해양 탐사 역사의 시작이다. 남극 해양생물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한 정부가 1985년 남극 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CCAMLR)에 가입했고 그해 한국해양소년단연맹의 남극해 관측탐험이 있었다. 미래 불모지 개척지로 남극의 중요성을 인지한 정부는 남극에 상주기지를 짓기로 해 1987년 3월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해양연구소에 극지연구실을 신설했다. 그 이듬해 남극 세종과학기지가 준공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됐다.

1986년 미국에서 해양학 공부를 시작한 강성호 박사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극지 연구에 발을 들이게 된다. 지도교수의 남극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로 한 대학생이 못 가게 된 때, 교수의 부름을 받은 그는 선뜻 따라나섰고 이로 인해 ‘운명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남극 가는 길이 어땠는지 묻는 말에 강 박사는 “롤러코스터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급상승과 급하강을 일주일간 버텨 남극 바다를 건너고 나면 체중 5㎏쯤 빠지는 것은 예삿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극지의 매력에 빠진 그는 1987년 이후 매년 남극에 갔고 1999년부터는 대한민국 최초로 태평양 북극 결빙해에도 진출하게 됐다.

배 빌려 시작한 남극연구, 아라온호로 독립

초창기 남극해 연구는 열 명 내외의 현장 연구진이 외국의 배를 빌려 여러 개의 과제를 모아 보름 남짓한 시간 안에 연구하는 식으로 힘겹게 꾸려졌다. 특히 그가 남극에 간 것은 세종과학기지가 건설되기도 전이었다. 타국 배에 의지하면서 수동적인 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극지 해양연구는 ‘아라온’호의 도입으로 새로운 전환을 맞았다.

2009년 도입된 아라온호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극지 해양연구 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많은 해양 연구 주제가 국제 공동 연구의 일환으로 수행됐고 그간 세종과학기지를 기반으로 했던 상당수의 연근해 연구가 이와 연계해 결빙해역으로 확대됐다. 기지 주변 해역에서의 연구 활동뿐 아니라 서태평양으로부터 세종과학기지에 이르는 경유지가 연구지역으로 활용됐으며 북극해 연구도 본격적으로 수행했다.



다양한 연구 분야 망라해 새로운 가치 창출

극지연구소의 연구기지는 남극 세종·장보고과학기지, 북극다산과학기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다. 이들 기지를 기반으로 남극세종과학기지는 매년 약 18명으로 구성된 월동연구대가 1년간 상주하며, 여름철인 11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는 150여명의 하계연구대가 파견되어 다양한 극지 연구를 수행한다. 북극다산과학기지는 북극 과학연구의 전초 기지로 북극해를 이용한 새로운 항로 개척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아라온호는 ▷극지 환경변화 모니터링 ▷대기환경 및 오존층 연구 ▷고해양 및 고기후 연구 ▷해양생물자원 개발연구 ▷지질환경 및 자원특성 연구를 수행하고 남극장보고과학기지는 지구 기후변화 과정의 이해와 예측을 위한 관측소를 운영한다. 또, 남극 고기후, 고환경을 복원하고 지질연대학 연구의 기점이 된다.

지구환경 변화에 따른 예측 연구

그가 속한 극지해양과학연구부는 극지해역 및 그 주변해역의 해양물리·화학·지질학적 환경 특성을 규명하는 해양기초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해수순환 및 해양 물질순환특성 연구, 해양-대기 상호작용에 의한 해양기후 변화 이해, 환경변화에 따른 해양생태계 기능 및 구조 연구, 수중음향을 이용한 해양생물자원 분포와 이용연구, 극지해양원격탐사 활용연구, 해빙 구조 및 분포 특성연구, 해양순환 및 생태계 모델 등 융복합적인 연구 시스템를 구성하고 있다.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와 세종기지 및 장보고기지를 중심으로 해양환경특성을 연구하며, 북극해와 남극해 뿐 아니라 중저위도권에 이르는 해역을 대상으로 전지구 환경변화에 따른 극지역 해양환경의 기능 및 구조변화를 예측하고 연구한다.

지구를 위한 카나리아 ‘북극’

남극의 해양연구는 1978년 시작됐지만, 상대적으로 북극에 대한 연구는 늦었다. 북극 해양까지 연구하기에는 인력과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99년 중국 쇄빙연구선 설룡(雪龍)호의 1차 북극해 탐사 국제공동연구에 참여한 강성호 박사는 우리가 북극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극 지역은 에어컨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인간들의 과도한 화석에너지 사용이 에어컨을 고장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나리아’는 유독가스에 사람보다 더 민감하다. 따라서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은 카나리아를 이용하여 작업 중 위험을 미리 파악하기도 한다.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북극 지역은 지구를 위한 카나리아라 할 수 있다. 북극의 급격한 변화는 지구가 넘어서는 안 되는 임계점을 지나고 있음을 경고한다. 강 박사는 처음 북극해를 방문했던 1997년에 비해 지금은 ‘정말 다른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생물 역할에도 관심

산업혁명 이래로 가속화된 인간 활동으로 화석 연료 사용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에 최종 산물인 이산화탄소는 대기로 집적되어 기하급수적으로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를 증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 지구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했다.
해양학을 전공한 강 박사는 특히 바다 밑에 존재하는 생물체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남극에 존재하는 플랑크톤은 아직도 미답지역이다. 식물플랑크톤은 얼음 아래 존재하기 때문에 얼마나 만들어지고 얼마나 흡수되는지 계산하기 쉽지 않지만 환경이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극지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생물에 대한 연구는 매우 의미있는 잠재 가치가 있다.




급변하는 지구환경은 새로운 기회

그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북극해 해빙이 급격하게 사라짐에 따라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겨울 한파, 여름 가뭄과 폭염, 태풍 등 기상변화가 더 빈번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반대로 과거 얼음으로 덮여있던 시베리아, 그린란드, 캐나다 북쪽 동토지역은 살기 좋은 지역으로 변화하고 있다. 위기는 다른 측면에서 또 하나의 기회가 된다.

지구온난화로 급격한 환경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북극은 한편으로 새로운 개발의 기회가 주어진 지역이다. 북극해 주변 지역은 개발되지 않은 지하자원의 보고이다. 전 세계 미개발 석유와 가스의 4분의 1이 북극해 주변 해역에 매장돼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인적 인프라를 담보로 개척할 수 있는 불모지인 극지는 미래의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곳임과 동시에 시험대의 역할을 한다. 극지에서 작동하는 전자기기·생물은 어떠한 환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인증과 같다.

극지 개발 상생의 비법은 소통과 협력

극지에 잘 적응한 생물은 자외선에 강하고 얼지 않는 식품, 제대혈의 보존 등 의약 분야와 식품 시장에서 상품성이 있다. 극지의 순수한 이미지를 활용한 화장품은 이미 개발돼 실용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강성호 박사는 설명했다. 시장개척에 가장 큰 걸림돌은 활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다. 극지연구소에서는 단순한 채취가 아닌 시료의 확보를 통한 배양연구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한다.

보호조약이 있는 남극에 비해 북극은 새로운 개발의 기회로 오일러시를 이루고 있다. 북극항로는 태평양과 대서양의 물류이동 거리를 단축하는 매력적인 뱃길이다. 북극해를 둘러싸고 있는 5개 북극권 국가(미국, 러시아,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확장하고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북극권은 우리나라의 영토와 영해가 아니므로 우리가 개발을 주도할 수는 없다.

강박사는 “북극의 개발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환경변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과학적 연구를 함께 하는 등 외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적 외교의 측면에서 신뢰를 구축한 후 우리나라의 독보적 기술력을 북극에서 실현한다면 이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좋은 기회가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우리 대응은 더 빨라져야

북극의 환경은 이미 급변하고 있다. 남극과 달리 북극은 개발의 압력이 심하므로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 연구수행이 중요하다. 환경문제와 자원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극지에 대해 국가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 연구부장은 강조했다.
그는 극지 연구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소통’과 ‘융합’을 꼽았다. 각자가 잘하고 있는 것을 연결해 공통된 완전한 것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극지 자연환경에 대한 연구와 제품의 개발과 상용화는 따로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다. 모든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끊임없이 소통하고 이를 빅데이터로 융합해 새로운 변화에 대응해야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고 또 선제 준비를 할 수 있다. 그는 그런 점에서 북극해 연구는 전 지구 환경변화에 대한 미래의 조기 경보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런티어’ 연구분야라고 설명했다.

얼음 깊이 알려면 얼음을 깨라

극지에서 보낸 30년 동안 그는 ‘첫’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많은 경험을 했다. 처음으로 북극해 탐사 연구에 참여했으며 처음으로 남극의 자연환경 조사 연구를 수행했다. 그에게 도전에 대한 소회를 묻자 극지 연구의 선구자답게 ‘얼음’으로 답을 했다.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결빙을 건너려면 얼음의 두께를 알아야 한다. 두께를 알기 위해서는 얼음을 깨고 측정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설령 얼음이 깨져 빠지더라도 그것은 값진 경험”이라는 것이다. 경험을 통해 다가올 일에 대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이러한 경험을 빨리하면 할수록 좋다고 그는 말했다.

기후변화 또한 마찬가지다. 북극 해빙 면적 감소의 나비효과는 일반적 예측의 범위를 뛰어넘고 있으며 그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다. 전 지구 생태계가 변화하고 북극해는 요동치고 있다. 우리의 대응은 더 빨라야 한다. 북극해의 얼음에 우리 지구의 미래 운명이 달려있고 더 심각한 비극을 막기 위한 실천의 시간은 얼마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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