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환경관리제도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신속하고 엄격하게 발전해왔다. 묻고 태우던 방식에서 벗어나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고 자원이 순환되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일명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는 제품의 생산자들로 하여금 제품의 설계, 제조, 유통 및 소비, 폐기 전과정에 걸쳐 환경친화적 경제활동을 유도해 폐기물의 감량과 재이용, 재활용을 촉진한다.

2003년 제도 도입 이후 대상품목은 타이어, 윤활유, 전지, 형광등, 전자제품, 합성수지포장재 등에 이르기까지 확대되고 있다. 재활용의무생산자들은 환경부로부터 부여받은 재활용의무를 직접 재활용, 의무생산자별로 재활용사업자들에게 위탁, 혹은 재활용사업공제조합을 설립해 공제조합에 분담금을 납부하는 방법으로 의무를 이행하게 되는데 현재 품목별로 11개 재활용사업공제조합이 결성돼 환경부 인가를 받았다. 따라서 조합들은 규정과 약속대로 자기 역할을 잘 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얼마 전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한국조명재활용협회 책임자들이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 수사 결과 밝혀진 폐형광등 재활용 실태는 기가 막힌 수준이었다. 협회장과 명목상 회사 대표인 그의 처 등 가족들이 협회와 회사를 장악하고 재활용에 쓸 돈을 빼돌려 유용했다. 협회장은 경기도 3곳에 공장을 둔 처 명의의 폐형광등 재활용 처리업체 직원들의 월급을 부풀려 지급한 뒤 개인통장으로 돌려받거나, 허위 거래전표를 작성해 자신이 운영하는 업체에 자금을 융통하는 등의 수법으로 회사 돈 96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타사가 만든 폐형광등 수거 박스를 동생 명의 폐비닐업체가 비싸게 구입하고, 그 박스를 협회가 더 비싸게 구입하는 등 모두 8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고 있다. 횡령한 돈은 부동산 매입, 대출이자 상환에 쓰였다. 설상가상 협회가 독점해온 조명재활용 시장을 지키려고 경쟁업체를 비방하는 허위 사실을 공문으로 발송해 지자체 조사를 촉구하거나 언론과 환경단체에 자료를 배포해 큰 타격을 입혔다.

이처럼 조명 재활용 시장이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되면서 환경부는 협회장에 대해 해임을 요구했지만, 환경부가 재활용 의무실적을 무리하게 설정했기 때문이라며 물타기에 나섰고 가벼운 처벌로 마무리해 다시 협회를 장악할 조짐이다. 환경부는 시정명령 불이행을 토대로 조명재활용협회 인가를 취소하고 새로운 재활용 공제조합 결성을 유도할 계획이지만, 재활용업계에서는 투명하고 공정한 재활용 구조 마련을 위해 처음부터 판을 다시 짜야 한다고 지적한다.

환경부의 역할이 막중하다. 시장이 만들어지도록 합리적인 법과 규제를 내놓되 시장이 건전하게 돌아가는 지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평가, 개선 시스템을 투명하게 유지해야 한다. 또한, 정부가 정한 규정과 지침을 위반할 경우 엄정한 처벌을 통해 다시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기술력을 갖춘 건전한 경쟁이 음모와 편법을 이길 수 있도록 시장을 잘 지키는 것도 환경부의 역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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