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채납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무상으로 사유재산을 받아들이는 행위다. 채납은 가려서 받는다는 의미인데 기부채납을 받는 경우 총괄청 및 관리청은 재산의 표시, 기부의 목적, 재산의 가격,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등 제반사항을 기재한 기부서를 받아야 한다.

1960년대 중반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난 산업단지 중심의 신도시는 정비기반시설이 취약했다. 아파트 주택재건축 정비사업 역시 기반시설이 부족해 시설 확충을 위한 기부채납은 당시엔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그러나 현재 시행되고 있는 기부채납제도는 법적인 근거가 모호한 가운데 지방자치단체의 방침 등에 따라 운영되면서 지자체의 해석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초법적인 제도가 됐다.

2010년 이후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국내 주택시장 및 주택경기는 상당히 어려운 국면에 처해있다. 더욱이 보금자리주택 지구지정 등 정부정책이 바뀌면서 분양시장 거래부진과 심각한 부동산 침체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기부채납은 주택재건축사업 추진 상 경제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조합원 개인에게도 부담이 과중해 원주민 재정착에도 지장을 주고 있다. 국토부가 나서 올해부터 상한선까지 정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

지자체는 기부채납을 받는 대신 용적률을 높여주는 등의 혜택을 주고 있지만 분양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다. 문제는 기부채납에 대한 조항이 모호하고 전적으로 지자체장의 재량에 맡긴다는 것이다. 개발사업의 인허가를 조건으로 과도한 기부채납을 요구하거나 사업간 형평성에 맞지 않는 기부채납을 요구할 수 있도록 방치된 것이다.

지자체가 직접 나서야 할 사업까지 재건축 사업자에게 떠넘기고 건설비가 늘어남에 따라 분양가 역시 덩달아 뛰는 역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승인권자에게 부여된 기부채납 요구행위에 대한 재량의 한계를 법령에 명확하게 규정하고 ‘공공성 평가제’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 기부채납 형식으로 지자체 소유가 된 재산이 제대로 관리되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 25개 구청의 최근 5년간 기부채납 현황을 보면 정비사업이나 재건축사업 등 사업별 담당자만 알고 있는 구조다. 언제, 어떻게 기부돼 어떤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는지 기록도 찾기 힘들며 체계적인 관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부채납을 받아놓고 쓸모가 없어 놀리는 곳도 적잖다. 그러다 보니 사업자들도 건축사업과 관련성이 적은 자투리땅이나 접근성 없는 공원·녹지 등을 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지역에서 시행하는 재개발·재건축 사업 관련 기부채납 형태를 보면 대부분이 도로나 공원이다.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하던 과거 60~70년대에 개발사업자에게 부담을 전가했던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사업의 성격이나 규모별 기부채납 형태를 명확히 정하고 반드시 필요한 용도로만 기부채납을 허용해 분양가 상승을 막고 사업자 부담을 줄여야 한다. 지자체에 의해 규제와 혜택을 동시에 부여하고 있는 기부채납제도는 법적 근거와 현 상황에 맞게 융통성 있고 투명하게 적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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