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은 조화롭게 지내야 할 관계지만, 개발과 보전은 어디까지 균형을 맞춰야 할지 늘 고민거리다. 식량 대부분과 신약의 46% 이상을 동식물에 의존하면서 생물다양성은 인류 생존의 문제이며 지속가능발전의 중요한 터전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는 1992년 생물다양성협약을 체결하고 2000년 유엔총회에서 생물다양성의 날을 지정해 가치 재인식에 노력하고 있다.

습지는 생물다양성의 보물창고다. 오염물질을 정화하고 홍수를 조절하며 기후변화 완화, 미적 경관적 기능 등 환경적으로나 사회·문화·경제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 한강하구습지 버드나무군락에서 연간 정화되는 질소의 양은 탄천하수종말처리장의 60배인 232톤에 달하며, 습지는 지상에 존재하는 탄소의 40%를 저장할 수 있는 창고 기능을 한다.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의 보전에 관한 국제협약, 즉 람사르협약에서는 대표적이고 희귀하거나 독특한 습지유형을 포함하는 지역 또는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람사르습지를 정한다. 현재 168개국 2,193곳이 등록됐고 국내에도 이번에 생물다양성과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제주도 ‘숨은물뱅듸’와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 습지’가 추가돼 21곳이 있다.

그런데 고속도로, 조력발전 등 각종 개발로 습지가 사라지고 있다. 보전계획과 개발계획이 따로 움직인 결과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서해 갯벌은 1만8300㎢에 달하며 생물다양성이 풍부하지만 자연해안선의 길이가 계속 줄고 있다. 지역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조력발전이 무산됐던 강화갯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온전하게 보전된 강하구 갯벌로 국제적으로도 보전가치가 높은 자연유산이며 과거 환경부가 람사르 습지 등록을 추진했던 곳이다.

그런데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온실가스 감축, 신재생에너지 활용에 무게를 두고 있어 영흥화력발전을 제외하는 대신 강화갯벌에 다시 조력발전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송도 갯벌 역시 갯벌을 관통하는 제2외곽순환도로 건설계획이 추진될 경우 파괴와 더불어 람사르 등록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

대구 달성습지도 위기다. 제4차 대구순환고속도로는 달성습지 제방 위로 지나도록 설계됐다. 제방 위로 1.2m를 성토한 뒤 높이 2m 방음벽을 설치하면 달성습지 경관은 훼손될 수밖에 없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과 불빛은 습지에 사는 야생동물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사라진 자연습지의 규모는 총 5,041만㎡로 여의도의 17배 면적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정부는 대체습지 조성에 5400억원을 쏟아 부었지만 물이 부족했고 인공적으로 식재한 식물들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죽었다. 한번 파괴된 습지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2008년 국내에서 람사르총회가 개최되면서 인식이 높아졌고 지난해 생물다양성총회까지 열리면서 생태계 보전의 중요성을 알렸지만, 국제 행사와는 별도로 여전히 국내 습지 파괴가 자행되고 있다. 습지가 지니는 생태적 가치뿐만 아니라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환산해 지금 당장 얻는 유익과 먼 장래를 보고 인내해야 할 일들을 지혜롭게 판단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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