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이산화탄소 배출 세계7위,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 16위, 1인당 배출량 OECD 6위다. 온실가스 감축에 누구 못지않게 국제적 책임을 가진 나라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확정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BAU(851백만톤) 대비 37%다. 당초 내놓았던 4가지 대안 중 제3안(25.7%)를 채택하고 나머지(11.3%)는 국제시장을 통해 감축한다는 방침이다.

제조업 위주의 성장경제구조로 온실가스 대폭 감축이 어렵고, 부담이 크다는 산업계 주장 보다 한국의 국제적 책임을 우선했다는 설명이다.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 등 그동안 쌓아온 기후변화 대응 리더쉽 등을 고려하고, 에너지 신산업 및 제조업 혁신의 기회로 삼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산업계를 달래고 있다.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다.

지난 6월11일 발표한 대안들은 발표 후 각계가 어떻게 반응할 지 예상하고 만든 공들인 각본이었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는데도 산업계는 경제 죽는다며 더 낮추라고 목소리 높였다. 시민사회단체들과 전문가들이 서둘러 토론회를 열고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적당히 하는 척만 하고는 원래 계획대로 됐다.

정부가 확정한 ‘POST-2020 온실가스 감축안(INDC)’은 사실상 꼼수다. 시나리오 3안에 더해 국제시장을 통해 11.3%를 감축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다. 앞서 국제사회에 공언했던 2020년 BAU 대비 30% 감축목표 역시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북한 산림녹화라든가 철도 현대화, 전력화 사업 등이 감축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막연한 낙관론으로 어떻게 국제사회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

국제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한국이 발표한 INDC 시나리오를 지극히 부적절하다고 평가했고, 온실가스 감축계획 근거로 제시한 BAU 산정(2030년 8억5060만톤) 방식 역시 신뢰성이 떨어진다. 최근 몇 년 새 국가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는 점차 둔화 추세였고 지난해에는 오히려 줄었다는 연구도 있다.

INDC를 5년마다 리뷰하고 재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전망한 BAU의 허구성이 드러날 것이고, 녹색성장 주창국가가 국제사회 압력에 떠밀려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수치스러운 모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 EU를 중심으로 온실가스 다량배출 국가에서 수입하는 제품에 대한 제재방안이 논의되고 있어 머지않아 국가 경제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국내적으로도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한 산업구조 개편이 필요한 시점에 기회를 버렸다. 적당히 양보해 모든 부처가 다 만족스러워 할 만한 새 대안을 내놓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중앙정부가 강력한 의지와 재원확보, 실천을 보이지 않는다면 지자체와 기업들이 따라올 리 없다.

한반도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을 넘었고, 빠르고 눈에 띄게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그런데도 경제타령만 한다. 실제적인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포기하고, 적응역시 준비 없이 눈치만 보고 있다. 진정성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진짜 어려움이 시작될 것이다. 근시안적 사고로 중심 없이 합의한 관계자들 모두 통탄할 날이 곧 온다. 어떻게 책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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