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에 한 금융회사가 마케팅조사기관과 공동으로 은퇴 롤 모델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때 1위를 차지한 사람이 이해욱 전 KT 대표다. 이 전 대표는 은퇴 후 특정한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와 의미를 찾는 생활을 꿈꿨는데 그 방법이 배우자와의 여행이었다. 자녀들에게 등 떠밀려 가는 효도관광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가 숨 쉬는 여행을 원했다. 은퇴 직후 부부가 두 달간 배낭여행을 떠났고 이후 아예 여행가로 직업을 바꾸게 된다.

 

2010년 10월에는 전 세계 독립 국가 192개국을 모두 여행한 최초의 한국인이 됐다. 고위직에 있던 터라 은퇴 후 다른 기회도 있었지만 직함에 연연하기보다는 자신이 꼭 하고 싶은 것을 좇아가는 삶을 누렸고, 젊은이들이 가장 닮고 싶은 은퇴 후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현직 시절에는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다. 재선에도 실패했다. 은퇴 후 사업도 실패해서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나이 든 이로서의 지혜가 사회에 미덕을 끼쳐야 한다’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퇴임 후 활발한 사회 활동을 했다. 국제 분쟁을 중재하면서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고 퇴임 후 가장 훌륭한 전직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다.


프랑스 언론인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은퇴 후에 잠시 방황했지만 이내 새로운 삶을 찾았다. 고독한 도보여행자로서 전 세계를 걸어 다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비행 청소년에게 재활의 기회를 주는 ‘문턱’ 협회를 탄생시키게 된다. 걷고, 움직이고, 생각하는 단순한 삶의 방식을 사회적 나눔의 행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가치를 좇고, 사회를 위해 실천하고, 나누고 섬기는 일에는 크고 작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 전체에 흐르는 ‘가치’가 든든한 바탕이 되면 충분할 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하고 그것을 일관되게 좇는다면 어떤 생활을 하든지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가치를 추구하는 은퇴설계를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가치를 분명히 확인하고 인생 후반기의 비전을 세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준비 없이 은퇴를 맞으며 좌절한 사람이라면 그 반성 속에서 더 분명한 비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활 속에서 실천으로 이어갈 활동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직업이든, 봉사활동이든, 종교활동이든, 정치활동이든 상관없다. 관심을 두고 찾아보면 마음을 끄는 일이 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적절한 역할을 찾아 충실히 수행하면 될 것이다.한국 은퇴자들이 가치 있게 나이 들어가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선도자가 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글 / 한국은퇴설계연구소 권도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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