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선비들은 인생 5계에 대해 영향을 받아 이를 다른 맥락에서 더 발전시켰는데 그 중 다섯 번째 계획인 사계(死計)에 깊이파고들었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아름답게 정리할 수 있을까 하는 노후 철학을 세운 것이다. 조선 중후기 선비들의 철학적 담론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다. 영향을 받았다는 인생 5계와 비교해보면 더 독특하면서 심오한 교훈을 담고 있다.
‘오멸(五滅)’이 그것이다. 다섯 ‘오’ 자에 없앨 ‘멸’ 자다. 노년에는 삶의 다섯 가지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계획할 때는 무엇인가를 더 얻고 쌓고 만드는 쪽이다. 그런데 ‘오멸(五滅)’은 없애는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신선하고 심오하다. 이 오멸은 멸재(滅財), 멸원(滅怨), 멸채(滅債), 멸정(滅情), 멸망(滅亡)이다.

첫째는 ‘멸재(滅財)’다. 나이가 들면서 재물을 없애라는 뜻이다. 노후를 위한 돈을 모아야 한다는 현대의 개념과는 다르다. 돈에 대한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라는 의미도 있고,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보다는 의미 있는 일에 투자하라는 뜻도 담겨 있다. ‘멸재’의 철학을 바탕으로 이런 걱정과 욕심에서 벗어나 더 의미 있고 본질적인 삶의 영역에 들어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우리가 심오한 은퇴설계를 하는 데 지침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두 번째가 멸원이다. 없앨 멸 자에 원한 원 자 ‘멸원’이다. 노년에는 인생을 살면서 쌓아둔 크고 작은 원한을 다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원한을 푸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용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못하고 상처준 일이 가슴에 응어리져 있다면 이것을 다 용서해주고 기억에서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둘째는 사죄다. 남에게 잘못한 것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가 멸채. ‘채’자가 부채, 채무할 때 쓰는 그것이다. 빚을 다 갚으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꼭 물질적으로 진 빚만을 의미하지 않고 정신적인 부채도 포함하는 큰 개념으로 보인다.

넷째로 없앨 것은 멸정(滅情)이다. 정을 없앤다는 뜻이다. 정든 사람이나 정든 일, 정든 물건 등과 정을 떼고 이별하라는 뜻이다. 좀 야박하게 느껴 질수도 있지만 죽음을 고려하면서 지침을 삼는 노후 철학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마지막 다섯 번째가 멸망이다. 없앨 멸 자에 망할 망 자를 쓴다. ‘망하는 것’을 없앤다, 즉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우리가 은퇴설계를 할 때는 앞 세대로서 이루어낸 가치와 의미, 자산 등 소중한 것을 다음 세대로 전해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음 세대의 삶이 더 풍성해지고 사회와 역사가 발전하는 것이라고 본다.




<글 / 한국은퇴설계연구소 권도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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