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 위협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 당면한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기후변화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

최근 방한한 카리브국가연합 사무총장은 “기후변화로 우리는 하룻밤에 빈곤국가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는 더 이상 일부 개도국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하반기 기후변화에 따른 미국의 재난피해액은 약 3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 역시 지난 2013년도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피해액이 1720억원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피해규모의 증가가 전 세계적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100년까지 기후변화에 따른 한국의 예상피해액이 2800조원에 달한다. 식량과 산림생태계, 수자원의 피해 등을 합산한 예상피해액으로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국민보건에 치명적인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대책 마련에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기후변화 대책 마련에 있어서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태도에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본지는 5000호 발행을 맞이해 국제적 화두인 ‘기후변화’를 주제로 <환경일보 5000호 기획특집> ‘지구의 경고, 파멸을 막기 위한 선택'을 준비했다.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처하는 한국의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대책 및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계획도 결정 못 지어

파리협정의 발효로 인해 당사국들은 앞으로 온실가스감축 방안에 대한 점진적인 보완과 점검이 요구될 전망이다. 따라서 정부는 2030년까지 목표로 삼고 있는 BAU(배출전망치) 대비 37% 감축에 대한 이행 계획을 점검하고, 이후 5년마다 감축 목표를 상향 조정하기 위해 장기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영국, 미국, 유럽연합 등 해외 국가들이 2050년까지 장기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이행 계획을 수립해 나가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은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로드맵도 확정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무조정실 녹색성장지원단 임석규 부단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2030 온실가스 감축로드맵 점검 토론회’에서 “실적과 국내 여건 변화, 국제 동향 등을 반영해 2019년 2030 감축로드맵을 확정 짓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석탄사용을 줄이고 신재생·청정에너지 사용을 확대하는 등 로드맵의 내용을 전했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회 이상훈 위원장은“로드맵에 디테일이 전혀 없다”며 “2016년 8월까지 로드맵을 발표할 것이라고 약속해 오다가, 다시 수년의 보완 기간을 거쳐 2019년 확정하겠다는 것은 감축 정책의 불확실성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상훈 위원장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계획에 따라 에너지 계획을 세우는 국제사회와는 다르게 한국은 전력수급계획이나 에너지기본계획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수정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작년 12월 20개 정부 부처 합동으로 수립한 기후변화적응대책 모형도




저성장 앞세워 정부 뒤로 숨은 산업계

적극적인 감축 의지를 보여야 할 정부는 오히려 산업 부문 감축 목표를 국내 감축 목표 25.7% 중 12% 이내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KEITI 문승진 단장은 “온실가스 배출 기여도에서 산업계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12%가 아니라 18%정도로 측정하는 것이 맞다”며 “그런데 12% 제한을 둔다면 나머지 6%는 비산업 부문에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적극적으로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을 이끌어 내야 하는 정부가 오히려 감축 부담을 덜어주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저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산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석탄 사용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겠다는 온실가스 감축로드맵과 달리 석탄화력발전소는 꾸준히 증설되고 있는 실정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다소비 산업에 저렴한 값으로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온실가스 감축로드맵의 목표와 실제 이행되고 있는 정책과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2019년 확정하겠다고 밝힌 2030 감축로드맵이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편 지난 7일 열린 COP22(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해외 당사국들은 각국에 유리한 세부규칙이 정해질 수 있도록 열띤 논의를 이어 갈 전망이다. 2030 감축로드맵조차 확정되지 않은 한국은 구체적 논의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보여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의지 세우고
                                                 적극적으로 공론화 해야

                                            산업계 지자체 감축 유도 위한
                                                 장기적 계획 마련 필요"




현행 ‘녹색법’… 기후변화적응에 소홀

파리협정은 기후변화 완화와 동등한 수준으로 기후변화 적응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는 완화 정책과 달리 적응 정책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주목한다. 따라서 기후변화로 인한 농작물 작황의 변화에 대비해 적합한 농작물의 종자를 확보하거나,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 및 폭우에 대비해 기반 시설을 마련하는 등 분야별 적응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한국은 올해 여름 기록적인 폭염의 장기화로 기후변화의 영향이 가시화된 가운데, 적응 방안 마련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각 지자체의담당 공무원은 평균 1명이 채 되지 않는다.

지자체는 기후변화 적응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행정·재정적 이유로 적응 방안 마련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10년 제정된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이하 녹색법)’으로 지자체와 공공기관들을 관리 및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녹색법에서 기후변화 적응과 관련된 조항은 1개 항목에 불과하다. 결국 현행법으로는 기후변화 적응의 활성화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녹색법 제48조 및 시행령 38조에 따라 국가기후변화 적응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에 세부시행계획 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2011~2015년까지 적용된 1차 적응대책을 개선해 2016~2020년까지의 2차 적응대책을 세웠고, 여기에는 ▷한국형 기후변화 시나리오 개발 ▷지역단위 취약성 평가체계 고도화 및 적응시설 조성 지원 ▷산업계 적응대책 수립 지원 ▷지속가능한 자연자원 관리 등을 과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없어 적응 대책이 실제 이행되지 않는 문제를 겪고 있다. 영국의 경우 ‘기후변화법’에 따라 기후변화적응계획을 수립하고 공공기관 적응보고제도(ARP)를 시행해 이행률을 높이고 있다.

이에 환경부 최민지 기후변화협력과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기후변화 적응제도 강화방안’ 토론회에서 “해외 사례를 참고해 적응대책 수립과 이행에 대한 평가와 보고를 추가하는 등 법체계를 보완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자체 적응 보고 제도화해야

적응대책 수립을 의무화하고, 모니터링에 대한 체계적 제도를 마련하는 등 관련 법체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적응 대책 수립에 대한 평가가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연구원 조항문 연구위원은 “평가는 지자체가 목표를 낮춰 설정하는 등 정책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모니터링의 강화만으로 충분히 적응 대책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올해 말까지 기후변화 적응 법령 정비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문가 포럼을 운영하고 있다. 최민지 과장은 “관계부처 및 이해관계자 의견수렴을 통한 세부적 조항과 틀을 잡기 위해 계속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적응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 제도 강화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정치적·국민적 수용성과 완결성 있는 법체계의 보완 및 개선을 이루기 위해 이해관계자들과의 활발한 소통과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jhj@hkbs.co.kr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