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사고를 계기로 화학물질 유출 사고에 대비한 표준매뉴얼이 만들어졌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에 노출되는 주민과 노동자는 배제됐으며 기업 대부분이 경영상의 기밀을 이유로 위험물질 정보 공개에 인색해 국민들이 여전히 사고 위험에 노출됐다는 지적이다.

구미 불산 사고가 터지면서 불거진 문제 가운데 하나가 위험물질 정보 공유다. 당시 지역주민들은 치명적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이 자신들이 사는 곳 근처에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 대피가 늦어졌다.

참고로 화학물질 유통량 조사에 참여한 기업 1만6547개 중 86%인 1만4225개 업체가 화학물질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고 이후 정부는 화학사고 대응 시스템에 반드시 주민·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포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아울러 정부가 만든 대응매뉴얼에는 토양 오염 확산 방지, 농작물과 주요 동식물의 오염 피해, 공단·개별공장 등 공간적 특성을 고려한 화학사고 대응 등의 내용도 포함되지 않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심상정 의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심상정 의원이 ‘유해화학물질 유출 사고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을 분석한 결과 사고대책 수립 과정에서 위험물질에 노출된 주민과 노동자의 참여를 배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작성된 화학사고 대응 매뉴얼은 정부 조직의 효율적 운영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화학물질 취급업체에 대한 관계부처 합동지도·점검으로 연간 2~4회에서 1회로 대폭 축소된 것 역시 안전보다는 기업 편의를 고려한 조치라는 평가다.

이에 대해 심 의원은 “정부와 기업의 편의를 위한 개편은 있어도 주민과 노동자의 안전과 위험의 자기결정권은 배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가산업단지의 화학물질 취급 관리를 담당하는 산업통산부의 ‘산업 단지 관리 기본계획’ 역시 재난안전사고에 관한 조항이 빠졌다. 구미 불산 사고 당시에도 지적 받은 문제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편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사고 이후 올해 10월까지 무려 76건의 화학사고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대응방법에 대한 전면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환경부 산하에 화학물질안전원이 만들어져 화학사고에 대응하고 있지만 이 또한 정부 중심의 화학사고 대책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지난 16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심 의원은 “화학사고 예방·대응·사후처리 모든 과정에서 주민·노동자·사업자·정부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OECD 화학사고 예방 지침서’를 참조할 것을 주문했다.

우리나라는 1996년 OECD 가입과 동시에 ‘OECD 화학사고 예방 지침서’에 따라 화학사고 대응관련 제도를 수립해야 했지만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OECD 화학사고 예방 지침서는 위험설비의 사업주, 모든 정부기관, 지역 공동체와 지역 주민의 공동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환경부 산하 화학물질안전원 김균 원장은 “안전원은 기술적인 문제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본부와 협의가 필요하다”라며 “앞으로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놨다. 

심 의원은  “구미 불산 사고의 교훈을 살리지 못하고 정부 주도의 화학사고 대응에 머물고 있다”라며 “화학물질 사고만을 다루는 별도의 법안이 필요하며 OECD 화학사고 예방 지침서에 준하는 ‘화학사고 예방·준비·대응·사후처리에 관한 법률’을 곧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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