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환경부에 대한 국정감사 마지막 날인 23일에는 2015년 시행 예정이던 저탄소차협력금제를 정부가 2021년 이후로 연기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의 일방적 연기 결정이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라는 점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질타가 쏟아졌다.

저탄소차협력금제는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경차와 소형차 등은 보조금을 주고 배출량이 많은 중대형차에는 부과금을 물려 교통 부문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당초 2013년 7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자동차업계의 요구에 따라 2015년으로 시행을 미루면서 대기환경보전법을 개정했다. 이미 유예기간을 거쳐 연기된 제도를 또 5년 이상 미루면서 사실상 저탄소차협력금제 시행이 어려워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재부 “시행령 합의 안 돼 연기”

제도를 연기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2011년 당시 환경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법안을 제출하면서 ‘환경부 단독이 아닌 부처 간 협의를 거쳤기 때문에 법만 통과시켜주면 된다’고 밝혀 일사천리로 본회의를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국회가 시행시기까지 법으로 못 박은 제도를 부처 이견을 이유로 연기한 것이다.

국회 환노위 우원식 의원은 “과거 관계부처 합동으로 저탄소차협력금제 제정을 발표했는데 그때는 기재부가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기재부가 그렇게 허술하게 법을 통과시키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에 윤성규 환경부장관은 “소위를 통과할 때 시행 시기가 결정됐고 정부 안에서도 이견이 없었다”라고 밝힌 반면 기획재정부 정은보 차관보는 “법을 만드는 과정에는 관여하지 않아 잘 모르겠다”라며 “법이 아니라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부처 간 이견으로 연기된 것”이라며 궁색한 변명을 내놨다.

그러자 환노위 심상정 의원은 “법을 무력화하는 시행령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라며 정 차관보를 질타했다. 아울러 심 의원은 “2021년 연기는 제도를 도입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라며 “이명박 정부가 환경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만든 제도다. 다른 부처에서 이리저리 비튼다고 주저앉으면 환경부장관 자격이 없다”라며 윤성규 환경부장관까지 추궁했다.

환경노동위원회는 “저탄소차협력금제에 환경부장관직을 걸어라”라며 강하게 압박했지만 정작

윤성규 장관의 태도는 시종일관 모호했다.



조세연구원, 엉터리 연구결과 내놔


정부가 제도 시행을 연기하면서 근거로 삼은 조세연구원의 연구결과도 객관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조세연구원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연평균 생산액이 1조3000억원 줄고 고용도 1만2000명 감소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그러나 조세연구원은 보조금이 부과되는 구간, 보조금이나 부과금이 부과되지 않는 중립구간, 부담금이 부과되는 구간 설정이 2020년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온실가스 감축효과를 전망했는데, 이는 당초 환경부가 제시한 법안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환경부가 제시한 안은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 2015년에는 완화된 형태로 출발하지만 연도별로 강화된 구간 설정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증가시켜 160만톤의 감축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한국보다 앞서 제도를 도입한 프랑스의 경우에도 기간별로 구간 설정을 달리해 저탄소차 판매가 증가했다.

이날 참고인으로 참석한 녹색교통 송상석 사무처장은 “2008년부터 시행한 프랑스의 경우 6개월, 1년 단위로 자동차 기술 발전에 맞춰 기준을 달리하면서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었다. 환경부 안이 바로 그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우원식 의원은 “정부가 근거를 바꾸고 수치를 조작해 효과가 없다며 연기했다”라며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는 국제사회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환경부장관으로서 자격이 없다. 이거 처리 못하면 옷 벗어야 한다”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환노위 국감 증인으로 참석한 기재부 정은보 차관보는 “(법 제정 때는 합의했지만) 시행령 제정에는

부처간 합의해 실패해 제도 시행이 연기됐다”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을 내놨다.



수출 대부분은 경·소형차

이날 국감에서는 증인으로 참석한 산업통상자원부 문승옥 시스템정책관의 위증 논란까지 불거졌다. 문승옥 정책관은 “국내보다 해외 수출이2배 이상 많기 때문에 제도를 시행하면 중대형차 시장을 잃을 위험이 있다”라며 “프랑스 역시 2008년 제도 시행 이후 5년간 수출이 45% 감소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참고인으로 참석한 녹색교통 송상석 사무처장은 “현대나 GM코리아의 주력 수출품목은 대형차가 아니라 소형차와 저탄소차”라며 “글로벌 자동차 시장도 저탄소차 위주로 바뀌고 있는데 우리만 큰 차를 팔아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우 의원은 “도저히 맞지 않는 이상한 요인을 끌어다 정책을 결정했다. 뻔히 알면서 일부러 왜곡한 것”이라며 “산업부 문승옥 정책관의 위증이라고 본다. 사실을 밝혀서 거짓이 드러나면 위증으로 고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문 정책관이 언급한 프랑스 사례 역시 저탄소차협력금제 탓이 아닌 유럽 재정위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송상석 사무처장은 “프랑스가 자동차를 주로 수출하는 지역이 그리스, 터키 등 재정위기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자동차업계 농간에 정책 변경”

국회 환노위 심상정 의원

저탄소차협력금제 시행 연기가 환경은 물론 경제적 측면에서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심상정 의원은 “저탄소차협력금제가 자동차업계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를 확인하려면 시장 반응을 확인하면 된다”라며 “제도 시행 연기가 결정되자 증권사 펀드매니저들은 우리나라 자동차업계의 중장기적 경쟁력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고 결국 자동차 관련 주식이 하락했다”라고 밝혔다.

이인영 의원 역시 “앞으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미래는 연비 경쟁과 이산화탄소 저감이다”라며 “자동차업계만 봐주면 배출권거래제에 참여하는 대기업들이 자기들도 봐달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여당 역시 비판에 동참했다. 저탄소차협력금제도 시행을 골자로 하는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새누리당 최봉홍 의원은 “지난번에 국회의원 206명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고 대통령이 공포까지 한 법안을 몇 개 소수 자동차업자들의 농간에 의해 정책을 바꾼 현실이 안타깝다”라고 질타했다.

저탄소차협력금제 연기는 다른 상임위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정무위 박대동 의원은 “제도 시행 반년을 앞두고 3개 정책연기기관들이 상반된 연구결과를 내놓아 관련 업계를 혼란에 빠뜨렸다”라며 “자동차 연비검증과 관련해서도 산업부와 국토부가 부처 이기주의 탓에 엇박자를 냈다.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할 국무조정실이 제 역할을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위 오영식 의원 역시 “제도의 잘잘못을 떠나 법치국가에서 법적인 절차를 거쳐 국회와 대통령의 인가를 거친 합법적인 제도를 계속 미룬다면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도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2009년부터 2013년 법안개정까지 4년의 논의를 거쳐 입안한 정책을 시행 3개월을 앞두고 업계의 로비와 선동적인 왜곡으로 제도를 사장시켜버린다면 아무도 정부의 정책을 신뢰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환경부장관 의지 부족’ 질타

정부의 일방적인 연기 결정에 입법부가 거센 질타를 가했지만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우선 국회가 법까지 만들어 시행시기를 명시한 제도를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못하겠다며 연기하면서 입법부작위(법에 정해두고 행위를 하지 않는 것) 발생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회 환노위 우원식 의원

이와 관련 최봉홍 의원은 “헌정 사상 초유의 입법부작위에 해당하는 사태다. 정부가 법을 안 지키고 있으니 국민이 법을 안 지킨다면 뭐라고 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정은보 차관보는 “정부에서 (제도 시행 연기) 개정안을 새로 마련해 국회 제출했으며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지만 환경노동위원회 김영주 위원장은 “경제도 중요하지만 국민 건강권도 중요하다”라며 “개정안이 통과될 거라 자신하는 것은 국회 입법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우원식 의원 역시 “배출권거래제 후퇴, 저탄소차협력금제 유예 등은 결국 차기 정부에 온실가스 감축 압박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정책”이라며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가 유럽 등의 환경무역규제에 대비한 저탄소산업구조로의 전환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국정감사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환경노동위원회가 환경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노력한 반면 정작 당사자인 윤성규 환경부장관은 “저탄소차협력금제는 소비자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작동하는 불안정한 제도”라며 평가절하하거나 “조세연구원과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결과가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라는 등의 답변을 내놔 제도 시행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새누리당 최봉홍 의원은 “6~7년 동안 자동차 회사가 준비 안 하고 끝까지 버티니까 연기만 계속해주고 있다”라며 “환경부장관 있으나 마나 아닌가? 차라리 (장관이) 총대를 메고 나가야한다”라고 호되게 나무랐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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