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서울 지하철 역사와 터널, 배수펌프장의 라돈 농도가 최대 20배나 초과할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하철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폐암에 걸려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으며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건강 역시 위협받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이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하철 1∼8호선 역사, 터널, 배수펌프장의 라돈 농도가 기준치의 최대 20배를 초과할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철은 지하 수십 미터 아래 건설된 구조물이고 지하수 및 암반을 통해 라돈가스가 방출되기 때문에 환기가 부족한 열차 운행구간, 특히 터널과 승강장, 배수펌프장은 라돈이 고농도로 발생할 수 있다.

 

서울메트로(2013년)와 서울도시철도공사(2014년)가 역사, 터널, 배수펌프장 라돈 농도를 측정한 결과, 1~4호선 144개역 가운데 21.5%인 31개 역이 기준치를 초과했으며 특히 길음역 배수펌프장은 기준치를 20배나 초과한 3029Bq/㎥이 검출됐다.

 

5~8호선 역시 154개역 가운데 16.8%인 26개 역이 기준치를 초과했고 군자역 배수펌프장은 기준치를 8배 초과한 1223Bq/㎥이나 나왔다.

서울 지하철 터널, 배수펌프장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이 라돈으로 인해 폐암에 걸려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라돈, 흡연에 이은 폐암발병 원인 2위

 

라돈은 1급 발암물질로서 세계보건기구(WHO)는 라돈을 흡연에 이은 폐암 발병 주요 원인물질로 규정할 정도로 위해성이 높은 물질이기 때문에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현행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에 라돈의 기준치는 148Bq/㎥로 규정하고 있지만 유지기준이 아닌 권고기준에 불과해 어겨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의미다.

아울러 산업안전보건법상 라돈과 같은 자연방사능물질에 대한 보건조치의무가 명시돼 있지만 고용노동부가 이에 관한 세부지침을 마련하지 않아 제도적 공백이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터널이나 배수펌프장은 지하철 역사와 연결된 공간이기 때문에 지하철 차량의 공기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근무자뿐만 아니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도 라돈 위협에 노출된 것이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터널과 배수펌프장은 고용노동부 소관이라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역시 실내공기질 관리는 환경부 몫이라며 책임을 서로 미루는 상태다.

 

장하나 의원

지난 10일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열린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장하나 의원이 윤성규 환경부장관에게 지하철 내 라돈으로 인한 폐암에 대해 묻자 윤 장관은 “일부 보도를 본 적은 있지만 국정감사 과정에서 들어서 알았다”라고 답변했다.

이렇게 관계부처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서울지하철 근무자들은 노동자들은 폐암에 걸려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돈 든다’ 환기 제대로 안 해

 

지난 2008년 이후 라돈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인정된 사례는 모두 18건. 이 가운데 11명이 서울지하철에서 근무했고 라돈으로 인한 산재를 인정받았다. 이 11명 가운데 8명은 라돈 농도가 특히 높은 길음역과 군자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장하나 의원은 “지하철 배수펌프나 터널에서 근무하다 폐암으로 사망해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을 만큼 라돈 위험이 심각하다”며 “일반 시민들도 역사나 차량에서 서서히 흡입하기 때문에 위험하지만 질병에 걸려도 인정조차 받기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제출한 ‘업무상 질병 여부 심의결과 회신서’를 살펴보면 누적 노출량이 같은 조건에서 고농도로 단기간 노출되는 경우보다 낮은 농도로 장기간 노출될 경우 위험도가 더 크고 누적 노출량에 비례해 폐암 위험도가 높아진다. 지하철 근무자 뿐 아니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 역시 라돈 위험에 노출됐다는 의미다.

장하나 의원은 “고농도 라돈에 직접 노출되는 지하공간노동자 뿐만 아니라 지하철을 매일 이용하는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이 위험하다”면서 “환경부와 노동부는 지하철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공간에 대한 라돈 전수조사를 공동으로 실시해 통합관리체계를 추진하는 한편, 환경부는 라돈의 법적 관리기준을 유지기준으로 강화하고 노동부는 사업주의 보건조치의무에 대한 세부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윤성규 장관은 “지하철역 작업공간이 사각지대인 것 같다. 서울시, 노동부와 3자 협의를 통해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어렵다면 환경부 법 안에 포함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윤 장관은 권고기준을 유지기준으로 바꿔 강제성을 부여하는데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장 의원은 “환기만 잘 시켜줘도 라돈 농도를 떨어뜨릴 수 있지만 비용 때문에 환기시설 가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내부문건을 통해 밝혀졌다”며 “환기시설을 정상적으로 가동하도록 감독한다면 추가적인 시설 설치나 새로운 법률 없이도 라돈 농도를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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