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이정은 기자 = 부산 일원, 사무실에 출근이 비교적 여유로운 B간부는 숙소를 나와 사무실 근처 편의점에서 무엇인가를 구입하고 2500원을 업무추진비 카드로 결제한다.

이어서 오찬을 위해 택시를 타고 미포 인근에서 하차하며 택시요금 7000원을 결제하기 위해 업무추진비 카드를 제시한다. 이어진 오찬을 식당에서 마친 뒤, 식대 지불을 위해 내민 카드 또한 업무추진비 카드. 혹시 업무추진비 카드를 개인카드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이후 결제한 모든 내역도 마찬가지다.

 

오찬이 만족스러웠는지 여유 있게 해운대 앞바다를 바라보며 차를 마시기 위해 유명 커피숍으로 가서 2만800원을 결제, 이후 ▷택시요금 8200원 ▷편의점 2800원 ▷택시요금 3900원 ▷장어식당 12만6000원 ▷양식당에서 36만원 ▷귀가를 위한 택시요금 5520원 ▷다시 숙소 근처 편의점 2만2250원… 이렇게 B간부가 하루 동안 사용한 업무추진비는 모두 60만3970원이다. 

영화진흥기금으로 흥청망청

 

얼핏 보면 사기업에 근무하는 간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 주요 임원의 업무추진비 집행 상세 내역과 사용시간을 재구성한 것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전재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로부터 제출받은 ‘주요 임원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자료를 분석한 결과,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 ‘업무추진비 사용지침’에 따르면 유흥주점, 주류 판매점, 소주방, 호프집, 막걸리집 등에서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으며 업무추진비 집행시간은 근무일 오전 6시부터 밤 9시까지만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영화진흥위원회의 업무추진비 카드 집행 상세 내역을 분석한 결과, 주요 임원들의 집행내역이 기획재정부가 제한을 하고 있는 시간외 사용이 270여건 발견됐으며 자정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사용한 횟수도 100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사용내역을 살펴보면 자정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교통비 지급건수가 50건으로, 많게는 1건당 4만6000원까지 교통비로 지급됐으며 심지어 사용이 제한된 새벽시간대에 주점에서 36만원 까지 사용된 기록도 발견됐다.

 

통상 영진위와 같은 공공기관에서 용도외 사용을 제한한고 있는 업무추진비 집행내역과 비교할 때 매우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규정을 위반한 집행 내역이다.

전 의원은 “영화발전기금 고갈은 가속화 되고 있는데 주요 임원들이 무분별하게 집행하는 업무추진비의 내역은 분명 문제가 있다”며 “영화진흥위원회가 모럴헤저드위원회가 됐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무·용도 외 사용 월등히 많아

 

전재수 의원

전 의원의 분석에 따른 영진위의 주요 임원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의 특징은 ▷업무·용도 외 사용이 다른 기관에 비해 월등히 높고 ▷용도외 사용 중 기형적으로 교통비 지출이 많고 ▷시간외 사용과 더불어 주점에서 사용한 내역이 빈번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 중 기형적 업무추진비 집행액이 최다(1위 영진위 8700만원, 2위 아리랑TV 3236만원, 3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1672여만 원) 등 전체적으로 낭비성 과잉집행이 많았다. 

영진위의 핵심 임원별로 살펴본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은 김세훈 위원장의 경우 용도에 맞지 않는 택시비 사용과 시간외 주점 사용 등이 많았고 김종국 부위원장은 주로 심야시간 교통비 사용 수십 건과 개인서적을 대량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환문 사무국장의 경우 영진위 주요 간부 중 업무시간 외 주점 사용이 가장 빈번했다.

전체적인 통계를 보면 2015년을 기준으로 영진위 주요 임원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은 8400여건, 8700만원이며 사용된 금액은 모두 영화발전기금이다.

이번 업무추진비 사용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김세훈 영진위원장과 김종국 부위원장은 ‘문화미래포럼’ 출신이며 박환문 사무국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기구였던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특히 김세훈 위원장의 경우 총 근무일 수 440일 중 영화진흥위원회가 위치한 부산에 있었던 기간이 159일에 불과해 근무일 중 3분의 2 이상을 다른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을 제외한 전주국제영화제 등 타 도시 방문은 12일밖에 되지 않았고 해외 출장은 42일이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안민석(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김세훈 위원장은 지난해 1월 취임 뒤 지난 8월18일까지 1년 8개월 중 230일을 서울에서 보내 지적을 받았다.

영화발전기금의 고갈이 심화되고 영화계 인사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영진위의 도덕적 해이는 영화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전재수 의원은 “우리나라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영화업계에 종사하면서도 재정적 어려움 호소하고 있는데 소중히 모은 영화발전기금에 대해 관리하는 책임과 의무를 지닌 자들이 마치 사재처럼 남용해서는 안 될 일”이라며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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