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는 다양한 민족 집단으로 구성돼 있다. 고대 이래 수천 년에 걸친 다양한 유목 국가의 흥망과 정치적 격변 속에서 유목민과 정착민, 그리고 이주민과 토착민 사이의 상호 교류와 통합의 결과로 10-16세기에 지금의 중앙아시아 민족이 형성됐다. 현재 중앙아시아에는 약 200여 민족이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문화의 뿌리 위에서 살고 있다. 한-중앙아 간 협력이 강화되면서 상대에 대한 문화 이해와 존중이 요구되고 있다. 지리·역사·정치 등 전 분야에 걸쳐 다른 점이 많아 관련 전문가 양성에도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한국의 중앙아시아 진출 확대를 위한 가장 유용한 벤치마킹 대상국으로 판단되는 터키 및 중국, 러시아에 대한 이들의 관계와 문화 지식이 필요하다. [편집자주]

 

박물관.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 있는 아미르티무르 박물관에서 관람객이 전시품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

다. <사진=한종수 기자>


공존… 투르크인 삶 속 한국인의 삶

현지문화의 이해·존중이 교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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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 바쿠시 거리 모습. <사진=한종수 기자>
실크로드는 기원전 2~3세기경 중국의 시안(西安)과 이탈리아 로마를 잇는 교역길이다. 중국에서 유럽으로 가져가는 주요 교역품이 비단이었기에 실크로드라 부르고 있다. 8세기 초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의 혜초(704~787) 스님도 인도까지 가는 긴 여정 속에 이 길을 거쳐 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실크로드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 사람은 많을지라도 그 길을 둘러싼 역사와 문화를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과서를 비롯한 역사책에는 실크로드에 대해 간단한 서술만 있을 뿐이다. 동서 문화의 가교역할을 했다거나 중국만이 문화적 주체성을 지닌 존재로 기술돼 실크로드는 변방, 추상적 개념이 다소 강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실크로드는 조금 더 관심을 갖는다면 페르시아의 ‘천일야화’처럼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감추고 있어 신비롭다. 고비사막을 지나 죽음의 사막인 타클라마칸에 도달하면 쿤룬산맥, 톈산산맥이 사막을 남북으로 에워싸고, 사막이 끝날 즈음 파미르고원이 나타난다. 중국령 중앙아시아인 신장위구르, 그리고 파미르고원을 지나면 1991년 소련 해체와 동시에 독립한 5개 공화국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이 나온다. 1000년 전 실크로드를 지배해 온 투르크(돌궐) 민족의 터전이다. 비록 갈기갈기 찢어지고 일부는 강대국에 복속돼 있는 형편이지만 언제 어디서 이들 민족이 결합해 큰 반향을 일으킬지 모를 일이다.

 

동양 역사가 중국 중심으로 기술돼 있다면 서양 역사관 역시 실크로드를 동서 문명의 ‘루트’ 정도로 평가했다. 가교 역할의 중심 무대였던 이곳에는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수많은 비화가 담겨 있을 것이 분명하다. 모험가, 무역상인 등 수많은 역사 인물들이 이곳을 거쳐 갔으나 정작 실크로드 역사에서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는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후에도 제대로 아는 것 없이 실크로드 중심이었던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현대사회 들어와 러시아로부터 오랜 시간 지배를 받는다.

 

독립 후 천연자원의 보고로 알려지면서 주변 국가들로 하여금 발길을 향하게 하는데…. 우리나라 정부 및 기업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과연 그들의 역사와 문화, 현지인들의 생활, 의식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수 시장에 한계를 느끼고 해외진출을 모색하다가 이곳에 진출했다는 국내 기업인들, 한국에서 장사를 하다가 어려움을 느끼고 새로운 곳을 찾다가 들어왔다는 교민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한국’에서도 실패하는데 아는 것 별로 없는 중앙아사이에서 어떤 성공을 바라고 들어왔던 것일까.

 

실크로드 문화, 아는 것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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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알마티의 공원에서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가

동료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종수 기자>

“한국 방문 일주일 동안 Mr. K가 끼니때마다 빵을 챙겨줬어요. 그의 이러한 배려는 잊지 못 할 것입니다.” 아제르바이잔 환경자원부 피르돕시 차관의 말이다. 피르돕시 차관은 한-아제르바이잔 간 환경협력 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빵을 챙겨 준 것이 그토록 고마웠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제르인 대부분은 빵 없이는 식사를 못 한다.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가 밥 없이 반찬만 먹지 않듯이 그들에게 빵은 우리의 밥(쌀)과 같은 의미다. 기업인 K씨가 이런 센스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생활 문화를 바로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앙아시아 현지 방문 때의 일이다. 본지 취재진들은 아제르바이잔 바쿠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로 향하던 중이었다. 비행 중 기내식이 나왔고 ‘비교적 맛있네’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식사를 즐겼다. 그런데 옆에 앉아 가던 중앙아시아인들은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튜어디스한테 안 먹는다며 반납하는 것도 아니다. 이유는 라마단 금식 기간 때문이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식사를 할 수 없는 이슬람인들, 일정 시간이 지나고 해가 진 후에야 포장된 음식을 열고 먹기 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앙아시아 인들의 식습관, 종교를 비롯해 그들의 문화를 바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주는 대목이다.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는 그곳에 진출한 국내 기업인·관료들에게 필수요소다. 아니 이해 차원을 뛰어 넘어 중앙아시아에 대한 문화 지식은 전문가 수준이기를 요구받고 있다. 경제·무역과 문화는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라 인체의 팔꿈치와 손목처럼 상호유기적인 관계로 봐야한다. 팔꿈치가 잘못돼 있으면 아무리 멀쩡한 손목이라도 휘두를 수 없고, 손목이 잘못되면 팔꿈치를 휘둘러봐야 칼을 내리꽂을 수 없다. 이 불가분적 관계를 중시하고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란 말처럼 현지 사정을 제대로 알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단단히 무장을 하고 들어가도 단칼에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상대가 중앙아시아다.

 

중앙亞 이슬람 문화 바로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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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 과거 아픈 역사를 볼 수 있는 사진들. 구소련

시절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사진=한종수 기자>

이슬람 문화라 한다면 차도르·히잡을 쓰고 가는 여인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부르카·니캅이라는 것도 있지만 차도르·히잡을 구분하는 사람은 드물다. 라마단 금식을 왜 지키는지, 히잡은 왜 써야 하는지 등 이슬람 문화가 이들에게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0억이 넘는 인구, 60여 국가를 가진 이슬람 문화를 무시하며 지구촌 4분의 1을 버려두고 글로벌을 논하는 것은 모순이다. 21세기 전략을 짜고 글로벌 무한경쟁을 위한다면 이해(利害) 관계가 아닌 친근한 이웃으로 끌어안는 비즈니스 인식전환이 요구된다.

 

사실 9·11 테러, 김선일씨 납치, 탈레반 인질 사건 등이 터질 때마다 이슬람에 대한 반감은 더해졌던 게 사실이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슬람 전문가 부족을 한탄하기만 했을 뿐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접근 필요성을 부각시키지는 못 했다. 중앙아시아를 경제 파트너로서 자원외교, 친환경외교를 확대할 계획이라면 중앙아 문화 전문가 양성이 필수다. 한편 2007년도부터 사법연수원에서 ‘이슬람법과 문화’ 과목이 생겨 예비 법조인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아제르바이잔 유학생 에롤(Erol·26·남)씨는 “한국인들은 특히 이슬람 문화에 대한 반감이 크면서 일부 기독교인들의 개종 강요 등 선교에 대한 문제가 심한 것 같다”면서 “한국에 살면서 아랍 계열 중앙아시아·동남아·흑인 등에 대한 인종 차별이 심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생활에서 서로 다른 것이 많아서 문화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간 문화 차이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한국에 왔으면 응당 한국 문화에 적응해야 되지 않느냐는 충고를 할 수도 있는 법, 마찬가지로 우리가 중앙아시아에 진출했다면 이 역시 중앙아시아식 경제협력, 문화 이해가 뒤따라야 마땅하다는 지적이다.

 

이슬람이라는 종교문화 이해뿐만 아니라 그들의 역사·정치·교육·민족을 비롯한 다양한 측면에서의 이해와 존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각에서는 이슬람이라 하면 ‘한 손에 칼, 한 손엔 코란’을 떠올리고 ‘한국을 이슬람화’ 한다는 출처 불분명한 얘기도 나오지만 국가간의 경제 협력과 연계시키며 혐오한다는 것은 비약일 뿐이다. 국내의 이슬람문화에 정통한 교수 A씨는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해야 올바른 외교 관계도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며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다문화 사회로 성숙하기 위해선 다양성을 인정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중앙아 교류의 다리 역할, 고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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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티시 파란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고려인의 모습. <사진=한종수 기자>

한국에 대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호감은 한류열풍에 따른 드라마·영화 수출, 한국 가전제품 등의 영향이 크지만 현지에 거주하는 고려인의 역할도 컸다. 구소련 스탈린 시대, 사할린에서 강제이주 당한 한민족들이 현지에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근면성과 순수성은 현지인들과의 자연스런 융합을 이끌었다. 이후 고려인들은 사회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중앙아시아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고려인,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나라에 대한 애국심보다는 오로지 ‘까레이스키(고려사람)’라는 생각이 강하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스탈린 정권에 의해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한국인들은 실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고려인은 한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으며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신 블라디미르 고려인문화협회 회장의 말이다. 70년 전 한인들이 겪었던 이같은 집단 유랑의 아픔은 무능했던 조국이 그들에게 진 역사의 빚으로 남아 있다. 중앙아시아 인들에게 있어 까레이스키라고 한다면 고려인·한국인·조선족 할 것 없이 똑같이 한민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한 핏줄로서 우리 정부의 고려인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활동하는 기업인 J(53·남)씨는 “중앙아시아 전문가 양성, 문화 교류 강화도 좋지만 이보다 고려인에 대한 정부의 포용 정책과 지원으로 100% 아군으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한민족이라는 인식이 강한 그들에게 있어 이것이 바로 손쉬운 전문가 양성이며 더욱 강력한 협력 체제를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최근 러시아어를 공용하던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러시아어를 지양하고 자국의 언어만을 사용하도록 정책을 바꾸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어만을 구사할 줄 아는 고려인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추세다.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구소련 국적을 보유하던 그들이 러시아 국적으로 갱신하지 못해 무국적자로 지내는 고려인이 많다고 한다. 이에 대해 러시아·구소련 정부 모두 고려인을 방치하고 있고 한국 정부 또한 남의 일로 여기고 있다. 무국적 멍에를 뒤집어 쓴 강제이주 까레이스키 2~3세들, 우리 정부는 가만히 이를 지켜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고려인에 대한 뚜렷한 대책과 지원 방안 마련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한-중앙아 서로의 문화를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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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켄트시 거리 주차장에서 만난 꼬마 아이. <사진=한종수

기자>

대구의 모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카자흐스탄 유학생 슐판(Sholpan·27·여)씨는 “영어, 중국어, 독일어 등을 배우는 카자흐 학생들이 많은 게 현실이지만 요즘 한류 열풍과 한국 경제의 중요성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면서 “한국과 카자흐스탄,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분야 확대로 잠재적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우즈베키스탄 대학과 우리나라 대학 간 자매결연이 증가하는 등 양국 교육분야 협력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양국간 공동 문화페스티벌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 10월에는 한-중앙아시아 문화자원 협력회의가 개최되고 서울국립박물관에서 우즈벡 고문화 전시회도 개최될 예정이다. 또 12월에는 서울에서 한-중앙아 포럼이 개최되기도 하는 등 경제·외교 교류를 뛰어 넘어 수많은 문화 교류가 더욱 더 확대 될 추세다.

 

같은 알타이어족, 돌궐(투르크)족의 후예, 여전히 불고 있는 한류(韓流)열풍, 수십만의 고려인. 김로만 고려인협회장은 “카자흐스탄은 고향이지만 내 피는 한인”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중앙아시아와 한국 간 문화의 폭을 좁힐 수 있는 방안으로 고려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비교적 수월한 언어적 접근 방식도 있으며 역사에서의 유대감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화적 접근은 이점이 많고 이를 바탕으로 자원·친환경기술·건설 등 교류의 폭을 넓혀 나가는 방법도 좋다는 시각이다. 우리나라 전체 수입액 가운데 원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60%. 원자재 값이 치솟으면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경제 전체가 홍역을 앓게 되는 구조다. 안정적인 자원 확보도 중요하지만 친환경기술에 대한 투자와 협력을 강화시켜 고갈되는 화석연료에 발 빠른 대체에너지 개발이 중요하다. 비약적이라 들릴지 모르겠지만 문화교류의 시작이 이 모든 것들을 연결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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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의 한 유명 식당 정경. <사진=한종수 기자>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소규모 사업을 하는 D씨는 “해가 지날수록 교민 수가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른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발생한다”면서 “이 모든 일들이 상대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 없이 이뤄지고 있는 일이라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한국인들에게 충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편한 사업 바라거든 그냥 한국에 있을 것이지, 문화 차이와 언어 소통의 어려움이 있는데 왜 여기와서 돌파구를 찾으려는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여기서의 사업도 연애와 마찬가지로 성실함과 끈기,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간 협력 방안 논의, 기업들의 미팅 시 통역이 따라 붙는다. 하지만 통역 요원의 전문성 부족도 원활한 교류에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업인들의 현지 출장 시, 까다로운 입국 심사나 비자 발급 또한 해결돼야 할 문제들이다. 유목, 이슬람, 구소련 사회주의 문화적 요소가 융합된 중앙아시아는 다층적 문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렇듯 우리의 문화와는 다른 점이 많지만 비슷한 면도 내재돼 있다. 이들은 그 어떤 민족보다도 한국 사람들의 정서와 마음을 소유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언어적으로도 유사한 점이 많고, 가족관계, 전통이나 관습, 생활풍습의 측면에서 한국 사람들이 접근하기에 전혀 낯설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접근 방식과 생각에 따라 결과는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중앙아시아=특별취재팀 김익수 팀장, 한종수 기자

조은아·정종현·김경태 기자

 

도움주신 기관... 한국언론재단, 외교통상부 에너지기후변화과, 환경부, 환경산업기술원,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한국환경자원공사, KOTRA, KOICA, 알마티·우즈베키스탄·아제르바이잔 주재 한국대사관, (사)부국환경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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