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어 닥친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연 10% 이상의 지속적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자원 외교 한계성을 타파하기 위해 건설, 의료, 농업, 금융, IT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외 투자 유치 등 교류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중아아시아에 대한 한국진출 현 단계를 짚어보고, 기업들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분석해 중장기 진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터키,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이 이미 중앙아시아 산업을 선점한 가운데 뒤늦게 출발한 우리 기업들이 진출확대 방안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아시아 기획취재 마지막 편으로, 중앙아시아에 진출한 세계 유수 기업과 국내 기업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분석해 봤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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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 바쿠시내 공원에서 그네를 타는 아이. 활짝 핀 아이의 웃음처럼 중앙亞 진출 국내기업

들의 성공을 예상해 본다. <사진=한종수 기자>


한국 진출 現 단계… 아직은 ‘초보 운전’

성공-실패 분석이 진출전략 큰 힘 될 것

 

실크로드의 중심지 중앙아시아. 좁은 의미로는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스탄’ 5개국을 지칭하지만 넓게는 카스피해 연안의 아제르바이잔·몽골·신장위구르(중국)·아프카니스탄까지 포함시킨다. 중앙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이 구소련의 지배를 받다가 1990년대 초에 독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대부분 투르크(돌궐)계로서 터키어를 사용하며 수니파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등 역사·문화적 공통점이 많다.

 

석유·천연가스 등 자원이 풍부한 중앙아시아는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자원량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외국인 투자유치와 개발 정책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품 수출시장과 자본 투자처로 떠오르며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와 광물자원을 필두로 건설·플랜트·금융·의료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지만 부족한 현지 정보와 전문가 부재로 많은 실패 사례가 속출하는 것도 사실이다. 공통점이 많다 해도 각 나라마다 차이가 있기에 현지 환경에 맞는 전략·전술이 필요해 보인다.

지도
중국·터키 등 주변국 벤치마킹 필요

 

중앙아시아를 두고 ‘지정학적 중요성’이 종종 거론된다. BRICs 가운데 러시아·중국·인도에 둘러싸여 있고 자원·상품의 수송 루트로서 유럽-아시아를 잇는 길목에 서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중앙아 지역에 대한 오랜 지배로 그들과는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고, 중국은 지리적 접근성을 무기로 다양한 산업분야로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터키는 투르크계 민족이라는 동질성으로 중앙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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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가득 실은 차가 아제르 바쿠의 재래시장 입구에 서

있다. <사진=한종수 기자>

우리나라와 일본 관계가 불편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렇듯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러시아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오랜 지배기간 러시아식 경제와 문화가 뿌리내렸고, 산업 전반에 러시아식이 아니고서는 기계를 돌릴 수 없을 정도다. 과거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중앙아시아 진출 루트로 러시아를 거쳐 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러시아가 주축이 된 ‘상하이협력기구(SCO)’ 설립도 눈여겨봐야 한다. 중국은 최근 지리적 접근성과 중국의 TCR(Trans China Railway:중국횡단열차)을 이용하는 등 중앙아시아 진출 범위는 더욱 확대해 나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 기업과 민간단체는 이 지역에 진출함에 있어 러시아적 요소와 더불어 중앙아 사회에 광범위하게 뿌리내린 터키적 코드를 이해하고 접근해야만 올바른 성공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근 불어오는 범투르크 민족주의 단합이 터키에서 비롯됐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경우, 아르메니아와의 영토 분쟁에서 터키의 도움을 받았고 자원 수송로가 터키를 경유해 가는 등 아주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게다가 언어적 동질성도 한몫을 하고 있다. 아제르순(AzerSun)이라는 터키계 회사가 아제르바이잔 국가 경제 1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아제르의 고위 정부관료에 따르면 터키의 제품·산업은 아제르의 경제에서 점유율을 점점 높여가고 있다.

 

아제르 뿐만 아니라 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에 진출한 터키계 회사의 선전은 예상을 뛰어 넘는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전체 건설 사업의 20% 이상을 외국업체가 시공 중인데 특히 터키 회사들이 활발하다. 폐쇄적인 국가 정책으로 진출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우도 민족 동질성과 지리적 이점을 내세운 터키 기업 활동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앙아시아에 진출한 기업인 A씨는 “터키를 경유한 중앙아시아 사업 진출도 고려해 볼만하다”면서 “터키 기업과의 컨소시엄 구성, 터키 현지법인을 이용한 우회 진출이 직접 진출보다 효과적일 것이다”고 말했다.

 

카자흐

 

실패사례… 쓴맛 보고 물러난 기업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기업들이 많지만 실패를 맛보고 돌아선 기업들도 있다. AGIP KCO(이탈리아 ENI사 중심 국제 석유메이저 컨소시엄)는 지난 1993년 카자흐스탄에 진출해 카스피해 에너지자원 개발에 뛰어들었다. 카자흐 정부는 카샤간(Kashagan) 광구 탐사계약과 관련해 AGIP KCO 측이 환경 관련법령(카스피해 오염)을 지키지 않아 탐사작업을 3개월 간 중지시키는 등 계약 해지로 철수한 사건이 있었다. 카샤간 유전은 전체 부존매장량 380억 배럴, 가채매장량 90억 배럴의 초대형 유전으로서 본격 생산이 개시되면 1일 생산량이 약 150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추정돼 2015년까지 1일 생산량을 300만 배럴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카자흐스탄의 핵심 유전이다. 위 사례는 환경보호문제를 외국투자기업의 자원개발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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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 바쿠시내 거리판매점의 모습. <사진=한종수 기자>
특히 카자흐스탄 정부가 2007년 하반기 들어 외국기업의 프로젝트 계획과 추진과정에서 환경보호라는 이름으로 인허가 승인여부 또는 허가승인 이후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중단조치 등을 취하고 있다.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외교단 모임에서 “정부는 자원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훼손 사례를 엄단할 것이며, 앞으로 환경세를 추가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정부가 환경문제에 대해 특별하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카자흐스탄 정부는 서방의 주요 석유메이저인 Tengiz-Chevron에 대해 환경오염을 이유로 3700만 달러의 벌과금을 부과한 바 있다.

 

이렇듯 중앙아시아 각 정부의 환경보호 강화조치는 외국 투자기업에 대해 영향력, 프로젝트의 경제적 중요성, 자원민족주의에 대한 외교적 시각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하면서 차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따라서 각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산업다변화 정책에 자원개발 분야 외국투자기업들이 얼마나 기여하는지에 따라 환경보호조항도 차별적으로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KOTRA 알마티 KBC 김병권 센터장은 “우리나라 투자기업들도 중앙아 정부의 관심사를 신중하게 고려해 향후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모 건설기업은 한국형 신도시 건설을 위해 아제르바이잔에 진출했다. 진출 당시 안정적인 사업 구상과 토목·건축·플랜트·환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개발자로서의 능력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하며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인적 네트워크 부족, 정보 미비, 당사국의 비협조로 힘든 시기를 보냈으며 결국, 투자 대비 이익 보장이 어렵다는 전망을 핑계로 철수했던 경우다. 기업인 B씨는 “계획은 좋았으나 아제르 정부의 큰 의지가 없는 사업이었고 모든 투자금을 한국 기업이 부담해야 했던 사례다”면서 “해당 정부의 의지가 강한 중점사업과 연계해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 “기술, 마케팅의 우수함만을 앞세워 공략했다간 실패 가능성만 높아질 뿐이다”면서 “당사국 정부 관계자와 신뢰를 쌓고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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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亞 향한 기업 ‘성공전략 세워야’

 

김병권 센터장은 “무리하게 진출을 감행하지 말고 코스트 낮은 것을 택해 시작하라”고 말한다. 비용부담을 줄여야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고 가능성이 보이거든 점진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게 안정적이라는 뜻이다. 그는 또 “CIS(구소련독립국가연합) 시장 흐름을 파악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회기여도가 높은 사업을 시행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검증되지 않은 인맥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며 법무 및 세무 관련 조항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정부의 의지가 강한 사업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12년 전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새롭게 수도를 옮김으로서 국가적인 건설수요가 붐을 일으켰다. 카자흐 정부는 수도 이전 사업에 따라 막대한 오일머니를 쏟아 부었고 해외 자본가들에 대한 투자 유치가 활기를 띄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국내의 건설기업 ‘동일토건(동일하이빌)’이 성공을 확신하고 뛰어 들었다.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 끝에 결과는 대성공. 카자흐 정부의 한 관계자는 “아스타나 시내 곳곳에 3~4년생 작은 나무들만 무성한데 한국 기업이 만든 주택단지에는 1~20m가 넘는 나무들이 들어섰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동일토건 관계자는 “현지 상황을 정확히 분석해 카자흐 정부가 절실히 원하는 곳에서 사업을 개시한 것이 주요했다”면서 “정부관료들과의 꾸준한 미팅으로 그들의 숨은 Need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던 결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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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실패, 노력의 대가로 판가름

 

중앙아시아에서 성공과 실패의 갈림은 그닥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KOTRA 타쉬켄트 KBC 이명구 센터장은 “한국에 대한 호감이 비교적 뛰어난 곳인데 협력한다는 개념으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함께 이뤄나가면 문제없다”며 “스스로가 중앙아시아에 대한 애착을 가져야 할 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많은 기업인들이 좋은 얘기만을 듣고 싶어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얘기해서도 안 되고, 열악하고 두터운 시장 진입 장벽만을 얘기해서도 안 된다”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시하기 위한 적극성·기획력·리더십 등을 발휘해야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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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아제르바이잔 여성. 거리 곳곳

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사진=한종수 기자>

중앙아시아의 현재 분위기는 국제경기침체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시키기 위해 각 정부들은 고용기회 창출, 해외 자본 유치, 민간부문 활성화를 통해 내수 경기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산업 다각화, 금융시스템 개선 및 무역 자유화, 민간부문 성장환경 조성 등이 중앙아시아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바쿠 공항에 도착하는 날부터 일주일이건, 보름이건 머무르는 동안 점심·저녁 식사는 아제르 정부 관계자와의 식사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좀 쉬고 싶어도 그들이 가만 내버려두지 않아요. 저를 친구라 여기며 가족들 모임에도 초대하고, 친지 결혼식에도 초대받아 여러 번 갔습니다.” 아제르에 진출한 기업인 C씨의 말이다. C씨에 따르면 비즈니스의 시작은 상대와의 소통이고 신뢰로 가득한 릴레이션십 형성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오랜 기간 중앙아시아에 머물며 활동하는 기업인과 이들을 돕고 있는 대사관을 비롯한 KOTRA·KOICA 등 정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발 한 번 살짝 담궈 보고 안 될 것 같으면 뒤로 살살 물러나려는 마인드로 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중·장기적 시각과 빠른 선택, 가능성을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송금 및 투자금 회수 등 중앙아시아 금융 시스템의 복잡함이 있기에 치고 빠지는 전략은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또 “고(高)자세로 상대를 깔보는 마인드, 휙 불면 날아가 버릴 얕은 신뢰는 한국에 버리고 비행기에 올라타라”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내 기업들은 현지에서 불을 밝히며 동분서주 뛰고 있고 성공을 위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장밋빛 전망을 내 놓던, 암울한 전망을 내 놓던 그 어떤 사업도 노력과 끈기 없이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 진출해 지금은 안정적인 사업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K(56·남)사장은 “중앙아시아에서의 사업은 긴긴 사막을 지나며 더위와 목마름, 배고픔 등의 힘겨운 싸움과 같다”며 “반나절 걸으면 나올 수 있는 오아시스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 노력의 결과를 얻어라”고 충언했다.

 

※실명을 쓰지 않은 이유는 해당기업(인)의 요청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중앙아시아=특별취재팀 김익수 팀장, 한종수 기자

조은아·정종현·김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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