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언제까지 산 중에 갇힌 채 닫힌 종교로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산속에서 거리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나아가 대중과 함께 부대끼고 더불어 살면서 상생의 덕을 쌓아야지요.”

14살때 청담 스님을 은사로 도선사에서 출가, 청담 스님이 열반할 때까지 곁에서 시봉했던 혜자 스님은 ‘베풀며 수행하라’는 은사의 유시를 결코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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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를 출간하면서 미처 가보지 못했던 사찰이 많았던 사실을 알고는 일반 신도들과 산사 체험의 기회를 공유하자는 뜻에서 시작한 게 ‘108산사 순례’.
사찰을 다니면서 문득 청담 스님의 말씀이 떠올라 사찰 주변의 농민들이 가꾼 농산물을 신도들이 사게끔 직거래장터도 열게 했고 인근 군부대 장병들에게 간식거리도 제공하는 이례적인 신행 행사로 발전시켰다.

스님과 함께 순례에 동참하는 신도들은 법당에서 천수경을 독경하는 법회에 참석한 뒤 그 사찰 이름이 새겨진 염주알을 받는다. 108개의 산사를 모두 돌고 나면 108염주가 꿰어지게 되는 것이다.

모두 공양미 한 되씩을 가져가 사찰에 보시하는데 3000여 명이 모은 공양미가 수십 가마니에 이른다. 살림이 어려운 사찰 입장에선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법회를 마치면 사찰 일주문 앞에서 열리는 직거래 장터에서 특산물들을 사고 인근 군부대 장병들에게 가져간 초코파이 한 상자씩을 제공한다.
회비 3만원 가운데 모은 108만원씩을 복지시설에 보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물론 사찰 순례가 가장 큰 목적이지만 성의껏 가진 것을 내놓는 보시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것 같다. 이젠 신도가 아닌 일반인과 타 종교 신자들도 적지 않다.

불교에서 보살이 수행하는 여섯 가지 바라밀법인 육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 보시를 으뜸으로 삼는다. 108염주를 꿰어가면서 108 번뇌를 소멸시키고 보시의 즐거움도 찾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매월 한 사찰씩 돌면 108산사를 모두 순례하는 데 9년이 걸린다. 여러 마음이 함께 기도하며 얻은 하나의 마음이 밝은 마음이요, 그것이 곧 불심 바로 ‘일심광명불(一心光明佛)’일 것이다.

<정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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