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유피스 그린피스코 도전기

환경봉사활동 나를 변화시킨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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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져 있는 조각들 속에서 전체를 볼 수는 없다. 흩어져 있는 조각 하나하나가 때로는 너무나 작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상을 이루는 그 순간, 우리들은 작은 기적을 느낄 수 있다. 12명의 대학생들이 ‘그린 피스코’라는 이름으로 유엔 유피스 사무실에 처음 모였을 때 그들이 느낀 것은 막연함 그 자체였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3주가 전부였다. 이전까지의 모호한 구상들을 현실화시키고 구체화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12명의 대학생들은 그때 자신들의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낼 기적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단지 막연한 기대감과 젊은 열정으로 그 무모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편집자 주>


유엔 유피스(평화대학: University for Peace) 영챌린저 2기 6명, 새롭게 선발된 3기 6명. 그렇게 12명의 대학생들이 모였다. 몽골에서 현지경험이 있는 유동주 매니저가 그들의 활동을 도왔다. 첫 모임 이후로 매일같이 기획회의가 열렸다. 행사기획팀, 언론홍보팀, 물품제작팀, 세미나팀 등 각 팀별 회의도 끊이질 않았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서서히 몽골에서의 구체적인 일정이 윤곽을 드러냈다. 몽골 현지와의 접촉도 예상보다 순조로웠다. 하지만 유난히 더디게 진행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린 피스코가 다른 사업과 차별성을 위해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 ‘환경 퍼포먼스’에서 였다.

그린 피스코는 대학생들이 주도가 되는 환경운동의 시발점이 되고자 했다. 이전까지 행해지는 시민단체나 기업의 봉사활동 또는 한순간 반짝하는 단기 봉사활동이 아닌 장기적이고 지속적이면서도 대학생의 순수성에 바탕에 둔 환경운동을 하고자 했다. 그런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서 구상한 것이 환경퍼포먼스였다.

환경퍼포먼스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몇 시간을 열띠게 논의하기도 했고, 때로는 아무런 말도 없이 시간이 흘러 가기도 했다. 몽골로 떠나야 하는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몇몇 언론사에서 그린 피스코의 활동을 취재해 가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퍼포먼스의 형태는 여전히 가닥을 잡지 못한 채 였다.

[#사진4]몽골로 떠나기 4일 전, 아이디어는 의외로 평범한 곳에서 우연히 튀어나왔다. 몽골의 사막에 나무를 심자는 것이었다. 거대한 몽골 지도에 모형 나무를 심어 푸른 몽골을 만들자는 아이디어였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의미를 더하자는 생각이 덧붙여졌다. 한동안 조용했던 유피스 사무실이 다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전 세계의 전통의상을 빌려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급했던 건 수천 개의 모형나무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날부터 유피스 사무실의 불은 꺼질 틈이 없었다.

몽골로 떠나는 날 아침이 밝았다. 그 전날도 밤늦게까지 모형나무를 만들던 이들이 머물렀던 사무실은 광풍이 휩쓸고 간 뒷자리처럼 혼란스런 모습이었다. 사무실에서 밤을 샌 이들은 피곤한 눈을 부비며 짐을 쌌다. 뒤이어 사람들이 도착했다. 그린 피스코 대원들이 모두 모였을 때, 그들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3주 동안 쌓여온 피로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설렘과 흥분이 그들의 얼굴에서 교차되고 있었다. 드디어 몽골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하라호럼

그림엽서에서나 볼법한 풍경들이 그린 피스코 일행이 타고 있는 동네 마을버스만한 승합차 창밖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땅과 맞닿을 것만 같은 넓고 푸른 하늘, 광활하지만 황량해보이기까지 하는 끝없이 이어지는 들판 그리고 그곳에서 마치 사진처럼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한 그들은 창문을 열고 카메라를 꺼내 몽골의 자연을 담았다.

하지만 몽골의 초원, 길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곳을 달리는 여정은 모두를 쉬이 지치게 했다. 대낮의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고온과 입술을 마르게 하는 건조함에 지쳐 창문을 열면 모래바람이 사정없이 불어 들어왔다. 입안에선 모래가 씹히고 흰 옷은 먼지로 누렇게 변해버렸다. 머리칼도 모래덕분에 빗자루가 돼 버렸다.

하라호럼으로 가는 길 위, 몽골의 하늘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고 눈이 부실 듯 푸르렀다. 하지만 반대로 몽골의 초원은 그 녹색의 아름다움을 잃고 있었다. 하라호럼으로 가는 길 도중에 듬성듬성 나타난 작은 사막의 흔적은 그린 피스코 일행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초원과 사막이 같은 공간에 공존하고 있었다. 사막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곳의 모래는 유난히 빛이 나고 입자가 고왔다. 입자가 작고 고운 것이 다른 사막의 모래와 다른 점이다. 이 작은 모래가 중국과 서해를 건너 한국까지 그리고 멀리는 미국까지 날아가는 것이다. 이런 사막화의 진행은 그 속도를 점점 더해가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몽골에서는 최근 식목지 조성사업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린 피스코가 향하는 하라호럼도 그런 식목 사업지중의 한 곳이었다.

지금껏 지나쳐온 초원과는 달리 하라호럼에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새로운 풍경이었다. 식목 사업지의 풍경도 이채로웠다. 10시간동안의 이동시간에도 그린 피스코의 대원들은 쉽게 지치지 않았다. 하라호럼은 몽골 사막화의 경계선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이뤄지는 식목사업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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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사업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었다.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작업, 그 자체다. 하지만 몽골의 자연환경이 이 작업을 힘들게 만든다. 하라호럼의 식목지 관리자인 나란게렐씨는 “너무나 적은 강수량에 심은 나무가 죽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무 주위에 듬성듬성 자라나는 잡초가 다른 지역보다 더 큰 해로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적은 수분을 잡초에 뺏기지 않고 나무에 공급해주기 위해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은 매일같이 이뤄진다”라고 말했다.

그날 밤 하라호럼의 게르(몽골의 전통가옥)에서 밤하늘을 바라봤다. 밤하늘을 빼곡하게 수놓은 별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은하수가 보였다. 이따금 떨어지는 별똥별의 흔적을 바라보는 대원들의 눈에 빛이 맺혔다. 그 순간 몽골의 아름다운 자연 안에서 우리들이 숨 쉬고 있었다. 이 찬란한 밤하늘과, 하라호럼으로 오는 길 위에서 만났던 푸른 초원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었다.


환경 퍼포먼스

다음 날 아침 그린 피스코 일행은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날 울란바토르 시내의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그린 피스코의 활동 중 가장 중요한 환경퍼포먼스가 있을 예정이었다. 한국에서 그들이 가장 많이 신경쓰고 준비했던 활동인 까닭에 버스 안에는 긴장감도 흘렀다.

하라호럼으로 오는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분 탓인지 길은 어제보다 더 험했고 모래 바람도 유난히 심했다. 창문을 열 수 없어 그날의 버스안은 찜통처럼 더워지고 있었다. 모두들의 표정에 피곤함이 역력했다. 환경퍼포먼스를 무사히 준비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수흐바타르 광장에 도착했을 때 그린 피스코의 대원들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피곤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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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의상을 입은 그린 피스코 대원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주위의 시선들이 일제히 쏠렸다. 팀을 나눠 한 쪽에선 사진전을 준비하고 다른 한쪽은 환경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퍼즐처럼 조각나 있던 몽골 지도의 부분들을 바닥에 펼쳐 하나로 모았다. 며칠 밤을 새가며 만들었던 모형 나무를 넣은 박스도 펼쳤다. 두 명의 남자대원들은 3m 크기의 지구본에 바람을 채우느라 애를 썼다. 정신없고 분주하게 그리고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사분란하게 12명의 세계인들이 움직였다.

그날의 퍼포먼스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로 ‘감동’이다. 그 행사를 보러 왔던 KOICA 몽골지부의 봉사단원 구시현씨는 “몽골에서 이렇게 성공적인 퍼포먼스가 열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12명의 대원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었다. 수흐바타르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황량한 몽골의 지도에 자신의 이름을 적은 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작은 행동이었다. 작은 의미였다. 하지만 그 의미에 몽골의 사람들과 그 광장에 있던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행동해줬다. 그린 피스코 스스로도 성공을 낙관치 못했던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그들의 외침에 수흐바타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답해줬다.

퍼포먼스가 막을 내리고 수흐바타르 광장에는 푸른 나무들로 가득한 몽골의 지도와 벅찬 감동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12명의 대학생들이 남겨졌다. 행사에 함께 한 몽골의 대학생들도 그 퍼포먼스의 성공을 축하했다. 몽골 국립대학 울지(18)씨는 “나를 비롯해 친구들 중 어느 누구도 평소에 나무를 심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모형으로나마 한국 친구들과 나무를 심으니 감동이 몰려온다. 앞으로 세계인이 함께 하는 우정의 숲을 가꾸기 위해 우리 집 앞에서부터 나무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날 한국의 대학생들과 몽골의 대학생들은 서로의 희망을 그리고 몽골의 희망을 봤다. 그들은 푸르른 몽골을 꿈꾸며 그 광장을 떠났다.


몽골, 그후

테를지 국립공원 쓰레기 수거작업, 돈보스코 청소년센터에서 열린 환경그림그리기 대회 그리고 뜻이 맞는 몽골대학생들과 만든 향후 사업계획에 이르기까지 짧은 8일간의 일정동안 그린 피스코의 대원들은 많은 일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일까? 몽골로 떠나기 전 그들 안에서도 몇 가지 의구심이 있었다. 8일간의 환경봉사활동이 무엇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사진5]

그렇다. 아마도 하라호럼의 식목지에는 다시 잡초가 무성해질 것이다. 울란바토르의 수흐바타르 광장은 며칠 전의 환경 퍼포먼스는 잊은 채 어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낼 것이다. 테를지 국립공원에는 다시 쓰레기가 곳곳에 버려질 것이다. 그린 피스코가 했던 8일간의 봉사는 어쩌면 단 하루 만에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린 피스코의 안성호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이 8일 동안의 봉사활동으로 몽골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변화를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8일간의 시간이 우리들을 변화시켰다는 겁니다. 우리들은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환경이라는 것에 특별한 관심이 없던 그린 피스코의 대원들도 많았죠. 하지만 그들이 이제 스스로 파괴되고 있는 환경에 눈을 돌리고 있어요. 그것이 변화입니다. 그것이 가능성입니다. 우리 그린 피스코는 이런 작은 가능성과 변화를 위해 몽골을 다녀온 겁니다.”

<‘그린 피스코’ 차경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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