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우리 노력·성과 알릴 기회

논리의 전환 필요…습지 속 인간 투영


▲ 박의준 교수
올해 2008년은 우리나라 환경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 해이다. 바로 세계 최대 환경축제의 장인 람사르협약(Ramsar Convention) 총회가 경상남도 창원을 중심으로 개최되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람사르협약은 습지보전을 골자로 한 환경협약이며, 이 환경협약의 구체적인 실천의제를 논의하고 도출하는 장이 바로 올해 개최되는 총회이다.

따라서 이번 총회의 성공적인 개최는 대한민국 정부의 습지보전에 대한 노력과 성과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어찌 보면 더 중요한 사항은, 본 총회의 개최를 통해 우리나라 습지보전정책(나아가 환경보전정책)의 철학적 전환의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는 사실이다.

람사르협약에서 표방하는 ‘습지(wetland)'는 삼림(forest)이나 하천(river), 해양(ocean) 등과 같이 과학적으로 경계가 명확한 독립된 생태계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닌 ‘물과 육지가 만나서 어우러지는 모든 지형을 포괄하는 용어’로써 관점에 따라서는 자연생태계 대부분을 포함한다. 결국 람사르협약은 수치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보전의 가치를 명확하게 설득하기가 힘들어 보이는 우리 주위에 너무도 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물과 관련된 모든 지형들을 ‘습지’라는 이름으로 환경의제의 전면에 내세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지극히 평범한 생태계를 화두로 세계 최대 환경협약이 이뤄진 이유는 무엇이며 그 이유가 람사르 총회를 개최하는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1990년대 이후 우리는 개발과 보전의 갈등 속에서 보전의 논리를 가시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과학적으로 검증됐다고 판단된 지역에 대해서는 각종 규제를 통해서 보전정책을 시행해 왔고 실제로 이러한 정책은 자연생태계 보전에 있어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줬다.

특히 습지보전의 경우 습지보호지역 및 람사르 습지의 지정과 관리방안 수립을 통해 구체화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대규모 개발사업 시행 과정에 있어서는 ‘사전환경성검토’ 및 ‘환경영향평가’ 등의 제도적인 여과절차에도 불구하고 개발지역 내 습지보전을 주장하는 논리와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안별 대안을 제시하는 사후관리방안에 많은 비용을 소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지속돼 왔고 (현 상태로 라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러한 갈등 사안별 대안제시와 같은 정책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필자는 이 해답의 작은 실마리를 앞에서 언급한 람사르협약의 근본취지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람사르협약은 습지를 전면에 내세워 ‘자연생태계는 그 자체로 존재가치를 가지는 하나의 생명체이며 따라서 보전의 중요성을 갖지 않는 생태계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매우 적극적인 철학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모든 자연생태계를 개발의 상위에 둬 절대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극단적 생태지향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는 자연환경 보전정책 수립에 있어서 자연생태계가 가지는 존재의 가치와 고유의 기능을 우선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정책수립에 있어서 중요한 고려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환경철학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이러한 람사르협약의 메시지를 우리나라 습지보전정책의 철학적 전환의 계기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제안한다.

첫째, 지금까지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습지에 한정해 제도적인 보전정책을 시행하던 인식의 눈을 우리 국토 곳곳에 각인돼 있는 모든 습지자원으로 확장하는 인식의 전환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둘째, 이러한 인식전환을 실행에 옮기는 방안으로 습지총량제와 같은 국가습지인벤토리의 구축에 있어서 객관적으로 보전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습지 이외에 현재의 토지이용에 관계없이 잠재적으로 습지의 기능을 수행했던 과거의 습지(예를 들면 농경지, 나지, 구릉지 등)도 그 대상에 포함시키는 총체적 접근방안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셋째, 이와 같이 총체적 방향에서 구축된 습지자원 인벤토리를 국가적 차원의 생태정책에 직접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의 대표적인 예로는 다양한 형태의 습지자원을 ‘특정 지역 내 훼손된 자연생태계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복원 대상지’ 또는 ‘생태도시 디자인 등에 있어서 생태적 연결통로 대상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습지은행(wetland bank) 제도의 도입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습지보전정책의 철학적 전환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철학적 전환이야말로 ‘국토 내부에서 습지자원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논리를 ‘습지 속에 인간을 어떻게 투영하느냐’라는 논리로 전환시킴으로써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개발’에 진정한 실천적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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