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책, 실제적인 구체성 제시해야

관련 연구 기회 꾸준히 제공하자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인공지구를 건설해보는 실험이 수행된 바 있다. 유리덮개로 외부와 단절시킨 축구장 2개 반 정도의 구조물 내에 사막에서부터 바다, 열대우림, 사바나 등까지 지구환경을 조성하고 8명의 입주자가 완전 고립돼 자급자족하며 2년간 생활하고자 했다.

‘Biosphere 2’로 명명된 2억 달러짜리 대규모 프로젝트는 18개월 만에 실패로 막을 내렸다. 1993년의 일이다. 이 거대한 사업은 대기 중 산소와 이산화탄소 구성비의 균형이 깨지면 인간조차 적응할 대책이 없는 생태계 절멸의 상황까지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준 값비싼 교훈을 줬다. 이러한 극한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지금 진행중인 기후변화에 대해 그 적응 대책은 이제 단순히 변화를 극복하는 차원이 아니라 국가안보, 더 나아가 인류의 안위를 위한 관점에서 실제적인 구체성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와 몇몇 선진국들은 대책 마련에 대해 매우 현실적인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대체로 4가지 전략으로 구분된다.

첫째, 가능한 한 계획을 빨리 세워야 한다. 기후학자들의 일관된 경고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탄성이 강한 쇠붙이라도 주어지는 힘에 따라 휘어지고 원래모양으로 되돌아옴을 반복하다가도 임계점에 이르러서는 부러지는 것처럼 기후변화에서도 급격함이 있으며 이에 대처할 임계시간이 근접해있기 때문이다.

둘째, 체계적이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독자적인 적응 계획 마련은 성공확률이 낮고 기존의 국가적 방재 관리 내용을 수정 보강하는 연장선상에서 접근하는 것이 효율적임을 권고하는 사항이다.

셋째, 최고 품질의 정보를 이용해야 한다. 정확한 진단과 더불어 가장 최선의 국가 기후변화 표준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50년 후 서해안 해수면이 10cm 상승한다는 예측과 20cm 상승한다는 예측이 있다면 이에 근거한 적응 대책에 투입하는 비용에서 천문학적 숫자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경제비용 차이를 감안하면 기후변화 기초연구의 투자대비 이익과 파급효과가 탄소저감기술 개발과 같은 기후변화 완화부분에 투입해 기대되는 것을 상회한다는 의미이다.

넷째, 적응 정책에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유연성이 필요함은 정책 결정에 사용된 최상의 정보가 불확실하다는데 있다. 이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은 예측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예측 결과의 신뢰도를 향상시키는 일은 전적으로 연구자들의 몫이긴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하는 바탕을 마련해주는 것은 그 공공성에 비춰 정부의 몫이다.

기후학자들이 예언가는 아니다. 그들은 가능한 모든 과학적 수단을 동원해 향후 전개될 기후변화의 크기와 영향을 예측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연구의 기회는 지속적으로 제공돼야 한다. 물론 이들의 업무는 연구에만 그쳐서도 아니 된다. 지난 연말 지구과학 연구자들의 가장 큰 전문가 집단인 미국지구물리연합회에서는 유엔 IPCC의 기후변화 보고서 내용을 지지하면서 관련 연구자들이 해야 될 일들을 제시한 바 있다.

즉 기후변화의 진단, 원인과 과정의 이해 및 향후 예측을 하는 연구 업무, 일반 대중에 대해 기후변화의 원인과 위험성에 대한 교육 그리고 미래 기후에 대해 정책결정자들과 꾸준한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연구자들의 입장에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업무가 어렵지 않은 사항이며, 정작 본업인 첫 번째 사항은 쉬울 것 같지 않다.

기후변화에 대해 언론매체와 정부 당국자의 관심이 높아진 반면 기후변화 관련 기초분야 연구의 투자는 아직도 미진하며 개선될 가능성이 이제야 조금씩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후변화 적응에 대한 우리의 준비가 철저하지 못함을 나타낸 것이다. 기후변화 적응대책 수립에 빠져서는 안 될 순서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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