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 없는 노동 소모적이고 가치없는 일로 치부
우리 농촌과 똑같은 미국의 모습 통해 문명 성찰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는 영문학자이자 시인인 저자가 고향 켄터키로 내려가 전통적 방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농부로서 그가 인간과 문명에 대해 생각하는 성찰의 글 모음이다.

컴퓨터는 웬델 베리에게 대형 전력 산업과 기술 산업에 의존하게 하고 기존의 유익한 것들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며, 사회적 관점에서는 현대 문명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웬델 베리의 주제는 우리 시대 공동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미국인이지만 그의 자연관과 세계관은 전혀 보편적인 미국인답지 않다.
그가 농촌에서 겪은 일들은 한국의 농촌에서도 똑같이 벌어지는 일들이다. 학생들은 시골을 떠나 도시의 대학으로 가고 시골은 노인들만 남아 있는 쓸모없는 곳이 됐다.
농촌은 도시에 사는 일부 사람들의 소득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농지의 대부분도 도시 사람들이 소유하게 됐다. 도시는 도시대로 날로 심각해지는 공해와 실업 문제, 빈부의 차, 전쟁과 기아, 예상할 수 없는 각종 사고에 노출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회는 점점 기계화, 대형화, 도시화되고 경쟁을 부추기는 경제 체제는 인간의 가치마저 저울질하게 했다. 현대인은 중앙 집중적 구조와 획일적인 교육,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수동적이고 의존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산업화라는 명목 아래 가정은 직장과 학교로, 농촌은 도시로 그 역할을 넘겨줬고 유무형의 혜택은 도시의 일부 사람들에게 집중됐다. 가정에서나 지역공동체에서 물질적 대가 없는 노동은 소모적이고 가치없는 일로 치부된다. 그러나 거대한 자본과 경쟁 위주의 산업사회에서 이러한 희생과 파괴는 정의나 평화, 이로움의 명분으로 정당화되기 일쑤다. 이처럼 그는 책에서 산업화의 폐해를 일관되게 지적한다.

<정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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