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골마을의 캄캄한 밤을 환하게 배움의 등불로 밝혀주고 있는 이장이 있어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금구리(가화1리)에서 궂은일, 힘든 일을 도맡아 가며 낮에는 이장으로 밤에는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에 바쁜 정해영(52ㆍ남) 이장. 1970년대 초 탄탄했던 직장을 그만두고 흙을 사랑해 귀농한 후 3~4년 농사를 짓다가 1986년 홀연 서울로 떠나 중년기를 보내다 3년 전 다시 흙의 고향 옥천으로 돌아왔다.


동네 주민들의 한마음으로 2007년 7월 이장이 된 그는 동네 순찰중 어두컴컴한 곳에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는 일탈행동에 충격을 받아 아이들이 좀 더 건강하고 바른 생활을 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으로 여러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그 후 정 이장은 2007년 11월 33㎡ 남짓한 사무실로 홀대됐던 가화1리 마을회관 2층에 아이들이 방과 후 공부를 할 수 있는 아담한 ‘옥상 공부방’을 마을개발위원회의 동의로 마련해 중학생 7~8명으로 공부방을 시작했다.

선생님의 섭외가 쉽지 않아 아는 분들을 통해 일일이 찾아가 부탁했기 때문에 처음 수학과 영어로 시작된 수업이 지금의 6개 과목으로 된 것도 2개월이나 발품을 팔아서야 가능했다.

선생님들과의 인연은 정 이장이 마을회관 심야보일러 전기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 이의제기를 하러 한국전력충북지사 옥천지점에 갔다가 담당자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한상훈 고객지원팀장이 선뜻 지원을 해 주었고 옥천교육청에 선생님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있는지 문의하러 갔다가 전후사정을 알게 된 정대희 관리과장이 아이들의 수업을 맡게 됐다.

군서 부녀회장의 딸인 김세나 중국어 선생님, 마을 초등학교를 퇴직한 금달순 한문 선생님, 교육청 소개로 선뜻 영어를 맡아주시는 정서영 선생님, 마을 전입신고하러 왔다가 공부방의 일원이 된 이범주 과학 선생님 등 총 6명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고 있다.

아이들은 방과 후 하루 3~4시간씩 일주일에 5일, 6개 과목(중국어, 한문, 국어, 영어, 과학, 수학)을 17명의 중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정 이장의 공부방 학생들은 생활형편이 어려워 학원에 갈 수 없거나 공부를 하고 싶지만 마땅한 곳이 없는 중학생들로 이루어졌다. 이런 상황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그는 이장수당 24만원과 적은 생활비로 선생님들 식사와 간식 준비, 그리고 형편이 어려워 식사를 거르는 아이들에게 직접 밥까지 해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아이들을 아무 댓가 없이 언제나 기꺼이 책을 들고 있는 6명의 선생님들에게 더 많이 감사한다.

가화1리 노인회장 김옥영(74ㆍ남)씨는 “정 이장은 거동이 어려운 91세 노모와 지체장애 누이의 병수발까지 해가면서 마을 일도 열심히 하고 있어”라며 “거기다가 학생들까지 돌보니 혼자서 1인 4역을 거뜬히 하고 있지. 참 본받을 만한 사람이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옥상 공부방을 다니는 장예진(16ㆍ여) 학생은 “선생님들도 자상하게 잘 가르쳐 주시고 무엇보다도 이장님이 저희들을 정말 친구같이 대해 주세요”라며 “저도 이 다음에 커서 이장님같이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한 친구 같은 다정한 어른이 될래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힘들지만 마음이 따뜻한 곳에서 아이들은 점차 적응해 내성적이던 아이가 먼저 와서 인사를 하고 옥천군장학회에서 장학금을 탈 정도로 성적이 오른 아이가 있는 가 하면 불평만 많던 아이가 이젠 친구들을 위해 먼저 손을 내미는 등 반년이 지난 현재 ‘옥상 공부방’ 아이들은 정 이장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하고 있다.

정 이장은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밝고 순수하게 건강하게 자랐으면 한다”라며 “6월엔 한 생명 한 나무 가꾸기로 국화와 토끼를 분양해 생물의 성장과정 이해와 독립심을 길러줄 예정이다”라며 열심히 아이들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편, 농협중앙회 옥천군지부(지부장 남성현)는 2일 ‘옥천 아카데미 후원식’을 갖고 6월부터 10월까지 아이들의 간식비를 일부 지원해 주기로 해 정 이장은 한시름 놓았다고 한다.

<신동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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