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게릴라, 쿠바가 벌인 ‘인류 역사상 최대의 실험’

학교와 공장의 인접지, 회사와 병원 그리고 주택가 옥상과 발코니에 이르기까지, 시내 한복판일지라도 빈 땅이면 어디에서든 농산물이 생산된다. 풍차가 도는 유기농장을 소가 갈고, 차를 버린 사람이 자전거로 거리를 달린다. 생태주의자라면 머릿속으로 그려볼 법한 이상적인 미래상이 쿠바에서는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

1990년대에 쿠바는 상상을 초월하는 10년 동안의 경제붕괴에 직면했다. 소련의 붕괴와 1959년 혁명 이후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경제봉쇄라는 이중고 때문에 석유부터 일상용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자를 공급받지 못하는 비상사태에 직면했던 것이다. 농업국인 쿠바는 사탕과 커피라는 환금작물을 수출하고, 쌀과 밀을 수입하는 국제분업 체계에 편입돼 있었기 때문에 국내 식량 자급률은 40% 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한 발짝이라도 방향을 잘못 잡으면 많은 아사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아바나 시민이 선택한 비상수단은 도시를 ‘경작’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농약이나 화학비료조차 없이 말이다. 이렇게 맨손으로 시작한 도시농업은 10년을 지나자 인구 220만 명이 넘는 도시가 유기농업으로 채소를 완전히 자급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비슷한 시기에 북한에서는 200만 명의 인구가 기아로 쓰러지고 임산부 40만 명이 영양실조에 걸린 반면, 쿠바는 43%에 불과하던 식량자급률을 100% 가까이 끌어올렸다. 비슷한 처지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미국의 경제봉쇄와 구 소련 해체, 동구권 몰락이라는 경제적 어려움에 함께 봉착했지만 그 해법에서 쿠바는 달랐다. 핵심은 ‘유기농업ㆍ도시농업’이었다.

사적 경영을 허용한 가족농 중심의 적절한 토지개혁, 직거래 중심의 시장개혁, 지렁이 분변토, 토상농법 등 실용적인 흙 살리기 운동, 유축농법 등 현지 자원 재활용과 윤작, 간작, 휴경작 등 순환농업의 정착, 전통농업 기술 및 자재의 현대적 부활(생물학적 현대 과학기술과의 결합) 그리고 농민의 참여를 중시하는 현장 연구와 지역적응 시험의 중시 등 쿠바의 변화는 농업 분야에만 그치지 않았다. 한 사회를 떠받치는 거의 모든 부문 즉 에너지, 교통, 의료, 교육, 토지, 녹화, NPO 등의 분야에서 환경친화적인 정책을 견지함으로써 이제 쿠바는 탈석유문명을 꿈꾸는 생태주의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에 의한 국제 분업체제에 의해 농락당하고 있는 이 지구는 생태학적으로 보면 사실 ‘폐쇄계’나 다름없다. 석유와 같은 지하자원도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바나 시민이 경험한 위기는 석유문명을 기반으로 한 이 세계의 모든 도시가 머지 않아 직면하게 될 사태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쿠바는 특수한 정치상황 때문에 지구의 미래를 좀 더 일찍 경험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쿠바의 수도 아바나가 세계로부터 뜨거운 시선을 받는 이유가 있다. 이쯤 되면 우리 농업의 현실이 시야에 겹쳐진다. 붕괴 직전인 우리 농업의 탈출구 역시도 모두가 입을 모으고 있듯이 바로 ‘유기농업’에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바야흐로 화학적 자원낭비형 농업의 한계에 직면해 있다. 돈의 논리를 좇느라 벌어진 억압과 수탈 그리고 전쟁이 20세기의 주요 의제였다면 21세기에는 인권과 생명 그리고 평화를 찾아가야 한다. 경제위기를 넘어 ‘지속가능한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쿠바가 기울인 노력과 성과, 그리고 미처 알려지지 않은 쿠바 사회의 선진적 면모는 막다른 길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와 인류의 오랜 과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여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한이삭 기자>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