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탐욕이 만든 전염병 ‘어플루엔자’

역사상 최대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시대, 우리 사회는 탐욕에 감염되고 있다. 인간은 더 많은, 더 좋은 그리고 특히 새로운 것들을 살 수 있는 가능성에 모든 넋을 빼앗겼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소비중독 바이러스 어플루엔자에 감염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인간마저 소비되고 있다. 어플루엔자는 최악의 전염병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미국사회를 상징하던 출세와 배금주의 그리고 무절제한 생활양식 대신에 새로운 반성윤리인 ‘본질로의 회귀(Back to Basics)’혹은 ‘단순한 삶(Simple Life)’이 크게 각광 받고 있다. 단순한 삶이라는 개념은 버블경제 이후의 미국인들의 의식변화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새로이 부각된 ‘단순한 삶’은 모든 물질문명을 거부하고 현실고립적이고 구세적인 생활철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문명이기를 수용하는 가운데 단지 생활의 지향만을 영혼, 자기성찰, 가족, 자연, 행복과 같은 가치들로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시적 경향이 아닌 강한 지속력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사회의 미래는 점점 더 암울해져 가고 있다. 대량소비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경제의 불안정성과 소득집중의 심화, 지구환경의 파괴 등으로 더 이상의 무절제한 소비행태가 가능하지 않다는 경고음을 내고 있다. 때문에 미래의 불확실성은 새로운 생활양식을 요구하고 있고 소비문화는 단지 개인적인 절제나 금욕생활로 해결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생활양식의 추구에서 비롯돼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소비지상주의 사회 미국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함께 새로운 생활양식과 인간상을 추구하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저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 소비문화의 병폐를 ‘어플루엔자’라는 사회병으로 인식하고, 질병의 진단과 처방 그리고 치료과정을 차용해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한 책이다.

대부분의 영상물이 책에서 출발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책은 영상물에서 출발했다. 1997년 미국 PBS TV에 방송돼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환경과학자 데이비드 왠, 경제학자 토마스 네일리가 참여해 3년간의 연구와 조사를 더해 출간한 책이다.

저자들은 고독감, 늘어나는 파산, 점점 더 높아지는 노동강도, 가족의 위기, 고삐 풀린 상업주의, 환경오염 같은 증상도 사실은 어플루엔자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소비지상주의 사회의 강박적 물질욕이 우리의 삶, 건강, 가족, 공동체, 환경에 입히는 피해라는 주제를 심도 있게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은 쇼핑중독, 과중한 스트레스, 가족의 동요, 사회적 상처, 자원 고갈 등 병의 제증상의 진단과 함께 그 증상들의 역사적, 문화적 기원을 제시한다. 그리고 어플루엔자의 원인을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검약생활, 자발적 단순성 운동 등의 치료법과 함께 가족과 공동체를 재건하고 지구를 되살리고 존중할 전략들을 제시하고 있다.

<한이삭 기자>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