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 신준환 박사

자연체계가 만들어낸 전통 마을 숲의 의미
세계적으로도 독특하게 다양한 자연환경 속에 살면서도 백두대간과 산줄기가 막아주는 자연체계를 배우고 이용하는 가운데 우리 조상들은 토착신앙을 다듬었고 마을 숲을 조성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에는 거의 대부분의 마을에 마을 숲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청양, 괴산, 보은, 영동, 진안, 봉화, 산청, 거창, 합천 등과 같이 산을 많이 끼고 있는 곳, 양평, 여주, 공주, 남원, 전주, 완주, 정읍, 화순, 나주, 안동, 경주, 구례, 논산 등과 같이 산과 들, 그리고 큰 하천을 같이 끼고 있는 곳, 서천, 서산, 무안, 함평, 영광, 완도, 남해, 부산, 창원, 영일, 강릉, 양양, 장흥, 강진 등과 같이 해안을 끼고 있는 곳 등에 그 지형과 기후에 맞게 숲이 조성되어 있어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나 마을 숲을 쓰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자연체계에서 배운 힘이 컸다는 것은 자연에 알맞게 만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우선 산곡의 분지로 마을공동체적인 사회관계와 생활양식이 유지되는 백두대간 산록지방인 안동, 예천, 금릉, 거창, 합천, 산청, 함양, 하동 등지의 분지에 입지한 마을과 낙동정맥 주변의 청송, 영천, 달성, 경산, 밀양 일대에 많은 수 의 마을 조산이 분포하였다. 구릉성 소분지 지형에서 배산임수 혹은 낮은 구릉지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입지를 하고 있는 취락은 풍수적으로 주산과 좌청룡, 우백호, 조산의 지형적 조건을 갖추게 되나 주로 마을의 전면이자 계류가 빠져나가는 수구부는 트여 있어서 이 방향의 산곡을 따라 골바람이 불 수 있다.

이 경우 마을 입구이자 수구부에 숲 등으로 풍수상의 장풍국을 조성하는 비보 장치가 요청된다. 영남지방의 내륙 산곡의 구릉성 소분지에 입지한 취락에 수구비보가 많은 까닭은 이상과 같은 지형적 조건에 기인한다. 강변 입지의 취락의 경우, 비보상의 측면으로 볼 때, 자연제방 배후의 구릉지 입지상 취락지의 주산은 확보되나 옆과 앞이 개활되어 있으므로 공결한 각 방면으로 보허의 필요조건이 생기고 특히 하천 변에는 제방 및 조림 등의 수해방지 비보가 필요하다. 영남지방의 해안입지의 취락은 지형적 조건상 바다에 근접하여 입지하는 지리적 조건을 이루며 따라서 조수의 피해나 해풍에 노출되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입지적 조건은 취락지 앞의 해변 가에 비보숲을 조성하게 한 배경이 되었다.






내륙 산촌에 조산이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이유는 산촌의 문화생태적 특성상 산악신앙 혹은 조산신앙과 관련이 있을 것이며, 입지적 지형상으로는 수구부의 경사가 급하여 조림이 어렵고 숲의 조성을 통한 실제적 장풍 효과보다는 조산을 통한 상징 효과를 꾀한 것으로 해석된다.

범람원은 일반적으로 수면과의 차이가 10m내외에 불과해 홍수의 위험이 상존했고, 맑은 물이 나오는 샘을 구하기도 어려워 인간생활에 부적당할 뿐만 아니라 농업에 있어서도 구배가 극히 완만한 큰 강에서 관개용수를 취수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번갈아 입었으므로 촌락의 입지로는 부적당했다. 다만 자연제방과 충적층에 남아 있는 소규모의 구릉지에는 일찍부터 촌락이 들어섰다. 자연제방은 지면이 다소 높아 침수의 위험이 덜했고, 토양이 배수가 잘되고 보수력이 좋으며 아주 비옥하기 때문에 농사에도 유리했으며, 배후 습지 중간에 산재하는 구릉지도 수해가 적고 우물을 파면 지하수가 잘 나오기 때문에 식수를 얻기가 용이했다.

비보상의 측면으로 볼 때, 자연제방 배후의 구릉지 입지상 취락지의 주산은 확보되나 옆과 앞이 개활돼 있으므로 공결한 각 방면으로 보호의 필요조건이 생기고 특히 하천 변에는 제방 및 조림 등의 수해방지 비보가 필요하다. 산곡분지의 계거와 비교해 볼 때, 계거에는 대체로 국내의 명당수가 합수돼 유출되는 수구부의 한 면에 비보물이 집중돼 수구막이 역할을 하나, 강거에서는 계거에 비해 비보할 범위가 넓고 여러 개의 비보장치를 필요로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비보물에 신앙성도 부가된다.

해안지역의 입지형태는 영남지방의 경우 어촌 주변부가 암석해안으로 이루어진 곳에 발달해 있으며, 바다로 돌출해 있는 헤드랜드와 헤드랜드 사이의 만입부의 좁은 평지에 촌락이 발달해 있다. 대부분의 어촌들이 바다 쪽으로 열린 한 면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이 산지나 구릉지로 둘러싸인 ‘골형’입지를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산지가 해안까지 접근해 경지로 이용할 만한 평야가 적다. 때문에 취락이 바다에 근접해 입지하는 지리적 조건을 이루며 따라서 조수의 피해나 해풍에 노출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입지적 조건은 취락 앞의 해변에 비보숲을 조성하게 한 배경이 됐다.

경북 영일군 청하면 덕성리 봉송정에서는 “바다가 넓으니 물결소리 웅장하고, 들이 비었으니 회오리바람이 침노한다. 소나무는 보호하는 장벽이 되어 무성하게 수풀을 이루었으니, 천년을 두고 푸르름이 그늘진다.” 라고 해안의 마을 숲의 효능을 묘사하고 있다. 해안지방의 입지특성으로 볼 때 여러 비보 형태 중에서 숲이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이기도 하지만, 숲은 바람과 파도를 막는 물리적인 효과 외에도 바다의 노출로 인한 주거지 전방의 허결함을 막아줌으로써 주거 공간의 안정감을 주는 심리적 효능도 있다.

해안숲의 경우 거의 전국적으로 해안의 마을 앞에 분포하고 있다. 기능적으로 해안지방의 비보숲은 풍해 및 조해를 방비하기 위한 숲이고, 강변의 비보숲은 수해 방지 기능이 많으며, 산곡 분지의 비보숲은 대체로 수구막이 기능을 한다.
산곡에 조산이 우세하고 강변과 해안에 숲이 우세한 것은 주변경관과의 조화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자연과정의 특성과도 관계가 있어서, 경사가 심한 곳에는 높이 20-30m 정도의 숲으로는 방풍이나 경관 차폐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경관 조화를 통한 경관심리적 안정을 더 기대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은 백두대간이 갈라놓음으로서 자연조건도 다르다. 영남지방은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들이 많이 발달했다. 호남지방은 동쪽의 높은 산지와 서쪽의 넓은 평야로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 북서계절풍이 탁월해지면 서해안 지방에서는 바다에서 몰려온 습한 공기가 산맥에 부딪쳐서 상승되기 때문에 단열팽창을 하여 많은 눈이 내리게 되나 영남지방은 백두대간이 가로막고 있는 관계로 산을 넘어오는 공기는 푄현상을 일으켜 건조한 공기로 변한다.

특히 경상북도는 남한에서 강수량이 제일 적고 증발 잠재력은 왕성하며 상대습도가 낮아 남한에서 가장 건조한 기후를 형성한다. 이런 기후 때문에 마을 숲을 이루는 수종이 달라져 대체로 영남지방의 마을 숲에는 소나무가 많고, 호남지방에서는 느티나무, 팽나무, 개서어나무와 같은 활엽수가 많다. 또한 유교적 배경을 가진 숲은 소나무로 구성되고, 토착신앙을 배경으로 가진 숲은 느티나무 등 활엽수로 구성된다. 따라서 이런 신앙적 배경에 따라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의 수종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일률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자연이 교직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어떤 때에는 강하게 작용하지만, 어떤 때에는 그 조건에 맞게 변용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바람으로 인한 재해 중의 또 하나는 겨울철의 한건풍(차고 건조한 바람)으로 인한 화재이다. 따라서 화재막이 비보를 설치한 취락이 안동, 의성, 예천, 순흥, 영양, 합천, 밀양 등의 내륙분지에 집중돼 있다.

영남지방은 농작물 성장기에 강수변동폭이 커 한발과 홍수 피해가 다른 지역보다 심한 편이다. 이러한 자연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영남지방 주민들은 일찍이 소규모의 보나 천방을 만들어 관개했는데, 정조대에는 경상도의 제언수가 무려 1765개나 돼 전국 2위인 전라도에 비해 약 2.4배에 달했다.

한편으로 영남지방에 있어 강수의 하계 집중은 호우를 동반하여 수해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이에 그 방지책으로 수해비보가 발달했다. 남해안 지역은 지리적인 위치로 말미암아 태풍의 통과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따라서 해안에 입지한 고을과 마을들은 조해와 풍해를 막는 비보로서 해변과 마을 사이에 숲을 조성했다.

영남지방의 비보는 전체적으로 조산이 고르게 분포하고 있어 조산문화권으로 지칭할 수 있는데, 호남지방에 비해 숲비보가 두드러지며, 기능상으로는 수구비보가 탁월하다. 한편 영남지방의 비보는 호남지방과 달리 장승류 비보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점도 비교된다. 특히 호남의 진안도 산간지방이나 조산이 많지 않은 것은 우선 문화의 차이로 볼 수 있겠지만, 문화전파의 속도차이로 볼 수 있는 점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자연과 거시적인 조화를 이룬 전통 마을 숲
우리나라에 특히 마을 숲이 왕성하게 조성됐고, 오랫동안 그 기능을 유지하면서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땅의 자연이 거시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이 미시적으로 조금만 보완하면 마을에서부터 전 나라가 체계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의 터를 일궈낼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이런 자연체계는 다시 이런 자연을 닮은 토착신앙을 낳았고, 이에 더해 불교, 유교 등 고등종교의 이론화와 국가체계의 발전과 더불어 그 시대의 선도자들이 마을 숲을 조성하도록 이끌고 국가가 조장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마을 숲의 효용이 다양하여 도꾸미쯔 노부유끼가 '조선의 임수'(김남기 등 2006 834쪽)에서 설정한 “'종교(신지, 능묘, 지리풍수, 토착신앙), 교육(기념, 모범, 보물사적명승, 천연기념물), 풍치(단사묘, 불우, 습사장, 명소구적, 도읍향소), 위생(취락가옥, 공중위생, 공원, 울타리), 교통(가로수, 원우정), 보안(수해방비, 풍해방비, 조해방비, 비사방비, 토사방지), 농리(제언, 보언, 논밭두둑), 엽목(수렵, 목장), 군사(성곽, 관방, 해방), 공용(선박재, 관곽재, 관용재, 관전, 과수원, 특용)' 외에도 홍수가 날 때 피난처 역할까지 담당한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전통 마을 숲은 자연체계를 바탕으로 문화가 교직된 결과물이면서, 좁은 땅에 사람은 많으나 자연환경은 매우 복잡한 조건에 슬기롭게 적응하는 방편이 된 것이다. 마을 숲은 마을공동체의 필요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조성되거나 보호된 숲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전통 마을 숲은 3대 이상 보전·관리되어온 마을 숲으로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런 전통 마을 숲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을 숲을 조성한 목적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거기에 맞춰서 숲의 규모와 모양, 수종, 수령 등을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마을공동체의 필요에 의해서 마을 숲의 기능이 원래 목적과 달라질 수 있는데 이는 마을 공동체가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전통 마을 숲의 복원에는 마을공동체의 복원이 선결과제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마을 주민과의 부단한 대화가 필요하다. 다만 학술 목적으로 전통 마을 숲을 복원할 때에 원형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나무줄기나 가지가 부후하는 경우 이것을 외과수술이란 명목으로 각종 충진제를 넣고 밀봉할 것이 아니라 후계목을 심는 지혜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목재 부후는 곰팡이와 목질부 사이에 일어나는 생물과정으로 생태계 내적 과정이고, 이 과정은 다시 곤충의 먹이와 집, 그리고 새의 먹이와 집으로 더 큰 생태계 과정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다만 생태계 보전과 관련된 인간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만 외과수술로 형상을 보전해 공동체 기억의 바탕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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