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소띠 해 특집> - 소와 함께 세상 이야기, 우행



▲ 사진=전국한우협회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신광섭)에서는 기축년(己丑年)을 맞이하여 2009년 3월 2일(월)까지 '소와 함께 세상이야기, 우행(牛行)'특별전을 갖는다. 2009년 소띠 해를 맞아 우리 생활문화 속에 나타나는 소의 친근한 이미지와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기능 및 역할을 소와 관련된 자료가 전시됐다. 또한 십이지 속 소[丑]에 담긴 옛 사람들의 시공간적 관념과 일상생활 속에 담긴 소의 특징을 상징적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소의 이미지가 단지 관념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한 일상생활 곳곳에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경직도 : 1년 주기의 농경생활 풍경을 그린 것임. 조선시대에는 국왕을 포함한 위정자들에게 농사짓는 농부의 어려움을 항상 잊지 않도록 경계하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소가 등장하는



소에게 배우는 '근면과 성실'
소는 우리 나라의 농경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단순한 가축의 의미를 뛰어넘어 마치 한 식구처럼 생각되어 왔다. 소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노동력일 뿐 아니라 운송의 역할도 담당하였고,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비상금고의 역할까지 하였다. 사람들은 사람 이외에는 소가 가장 친숙했던 동물이었다. 소는 우직하나 성실하고 온순하고 끈질기며 힘이 세나 사납지 않고 순종한다. 이러한 소의 속성이 한국인의 정서 속에 녹아들어 여러 가지 관념과 풍속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라고 했다.



▲ 누운 소의 모양을 한 지형도(산도, 명당도) : 풍수지리에서는 누운 소의 모양[臥牛]이나 소의 뱃속 모양[牛腹形]을 닮은 땅의 지형을 길지(吉地)나 명당(明堂)으로 여겼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민속에는 특히 소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 민속이 농경문화 중심으로 발달되었기 때문에 농사의 주역인 소가 여러 풍속과 깊은 관련을 맺어 온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앞서 우리는 소를 한가족처럼 여긴다고 했다. 그래서 소에 대한 배려도 각별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짚으로 짠 덕석을 입혀 주고, 봄이 오면 외양간을 먼저 깨끗이 치웠으며, 겨울이 올 때까지 보름마다 청소를 해 주었다. 이슬 묻은 풀은 먹이지 않고, 늘 솔로 빗겨 신진대사를 도왔으며, 먼길을 갈 때에는 짚으로 짠 소신을 신겨 발굽이 닳는 것을 방지하였다.
우직하고 순박하여 성급하지 않는 소의 천성은 은근과 끈기, 여유로움을 지닌 우리 민족의 기질과 잘 융화되어 선조들은 특히 소의 성품을 아끼고 사랑해 왔다. 이처럼 소는 우리 생활과 가까운 곳에서 가장 친근한 동물로 함께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민속학적인 모형이 만들어 졌다.



▲ 화각함 : 소뿔을 쪼개 얇게 켜서 네모나게 쪽을 내 붙이고 바탕에 그린 원색의 그림이 비쳐 보이도록 한 화각 공예품의 일종이다.



소띠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과연 소를 닮았을까? “천천히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속담처럼 끈기 있게 꾸준히 노력하여 결국 성공을 만드는 사람 중에 소띠 태생이 많다. 바로 소띠들의 공통점이 근면과 성실이다. 그러나 고집하나 대단해서 그야말로 황소고집이라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자기 페이스로 밀고 나가기 때문에 설득하기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서 ‘소귀에 경읽기’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 황해도 소놀이굿의 소탈 : 단순한 민속놀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 의례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교적인 것 같으면서도 고독한 것이 소띠들이고 일을 위해 태어나 일을 하다 죽는 것도 소띠다. 그러나 ‘겨울 소띠는 팔자가 편하다’, ‘그늘에 누운 여름 소 팔자다’라는 말처럼 시절만 잘 타고나면 일하지 않고 편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일복이 많은 소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이다. 또한 소는 둔한 것 같으면서도 신나는 일에는 ‘쇠뿔도 단김에 빼듯‘ 침식을 잊고 해내지 않으면 몸살을 앓는 것도 소띠들의 공통점이다. 한번 마음먹었다 하면 하늘이 두쪽이 나도 해내는 사람 역시 소띠이다. 그러나 한번 화가 났다 하면 자신의 감정을 조정하지 못하고 한바탕 떠들썩하는 약점도 가지고 있다. 강자에 강해 강자에게는 결코 무릎을 꿇지 않지만, 약자에게는 예상외로 인정과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에 투영된 십이지 속의 소
소는 십이지의 두 번째 자리에 해당된다. 소띠 해는 12년마다 축년(丑年)으로, 음력 12월은 축월(丑月)로, 일(日)은 축일(丑日)로, 시간은 오전 1시에서 3시까지인 축시(丑時)로 표기된다. 여기서 축년과 축일은 육십갑자 중 을축(乙丑), 정축(丁丑), 기축(己丑), 신축(辛丑), 계축(癸丑) 등의 순서로 표기된다. 한편 공간 즉 방위는 천문도나 해시계에서 볼 수 있듯이 북북동 방향[丑方]을 가리킨다.

이러한 십이지 속의 소[丑]에 담긴 옛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념은 부적, 당사주책(唐四柱冊)이나 신장(神將), 호석(護石)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운수[日辰]나 벽사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동행(同行), 일상생활 속에 담긴 소의 다양한 기능과 역할
농경문화가 정착된 이후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 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소를 단순한 가축의 의미를 넘어 농사를 짓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소중히 여겼다. 소는 논이나 밭을 쟁기질하는 등 힘든 농사일을 하는데 필수적인 노동력이자 일상생활에서의 운송 수단이었고,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목돈을 장만할 비상 금고의 역할까지 했다. 농경의 중요성을 반영하고 있는 경직도에는 쟁기질하거나 짐을 나르는 소의 모습이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농경사회에서의 소의 중요성은 제의나 의례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고대사회에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소를 신성한 제물[犧牲]로 사용하였고, 현재 전승되고 있는 마을신앙에도 소가 제물로 쓰이는 예가 흔하다. 정월 대보름 즈음 마을에서는 그해 풍년을 기원하는 소놀음굿이 펼쳐지곤 했다.

이러한 기능 외에도 소의 부속물인 뿔, 가죽, 기름, 고기 등은 실생활의 주요 재료로 폭넓게 이용되었다. 소뿔을 쪼개 가공한 화각공예품, 쇠가죽으로 만든 북․장구․소고 등의 악기, 음식 관련 서적에 보이는 소고기 요리 등 다양한 쓰임은 ‘소는 하품 밖에 버릴게 없다’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다.






비유(比喩), 소의 생태적․사회문화적 특성의 상징화
소가 지닌 타고난 생태적 성질과 그로부터 유래한 사회문화적 특성은 종종 종교, 사상, 언어나 구체적인 사물 등에 상징요소가 되었다. 우직하지만 온순하고 성실하며, 끈질기고 힘이 세지만 사납지 않다고 하는 소의 기질이 일상생활 곳곳에서 상징화되어 자리하고 있다.

호랑이의 위협으로부터 주인을 구한 소의 이야기는 우직한 충성심을 유교적인 윤리인 충(忠)으로 상징화하고 있다. 소를 타고 가는 목동의 모습에서는 세상사를 초탈한 도교와 소가 곧 사람의 참된 본성이라는 불교가 동시에 떠오른다. 풍수지리에서는 소가 누운 모양[臥牛形]이나 뱃속 모양[牛腹形]과 같은 땅을 명당(明堂)이라 했다. 소를 주제로 한 속담들에서는 우직함과 충직함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으며, 일상생활자료들에서는 소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특징을 적극적으로 상징화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 1961년 소띠 해 달력 : 소가 쟁기질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활용하여 달력을 제작했다.



다시 소띠 해를 맞으며
소띠 해는 12년 마다 돌아온다. ‘십간십이지’의 조합인 육십갑자 중 을축(乙丑), 정축(丁丑), 기축(己丑), 신축(辛丑), 계축(癸丑) 등이 12년마다 번갈아가며 이어진다. 인류가 등장한 이래로 수많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러면 지나간 소띠 해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또 인류의 역사에서 소와 관련하여 무슨 일들이 벌어졌을까. 2009년 소띠 해에는 과연 어떤 소식들이 우리를 마주할까.



▲ 화조도 : 8폭 중 1폭으로 목동이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가는 모습이다. 유유자적하는 도교나 인간의 참된 본성을 소에 비유한 불교적인 분위기가 담겨 있다.



최고의 소를 찾아서
허영만 원작의 식객에 보면 "이 소가 그냥 소인 줄 알아? 꽃순이는 성찬이 동생이야. 동생처럼 키워온 소란 말이야!"라는 대목이 나온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의 반응에서도 잘 나타났듯이 소는 우리 민족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고향을 생각할 때 소를 가장 먼저 떠올리고, 소의 가치에 대해 '소 팔아서 학업 마치고 장가갔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소는 우리에게 일종의 자존심이었고, 자립 농이 되는 기초자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소에 대한 애착과 관심도 소 값 폭락이라는 현실 앞에 허물어졌다. 젖소 송아지 가격이 최근 3만 원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낙농육우 농민들의 농심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이전 50만 원대에 거래되던 것이 이후 폭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육우 600㎏의 생산비가 평균 380만 원인 반면 판매 수익은 280만 원까지 떨어져 육우를 키우면 키울수록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한우 역시 수입소에 맞서 경쟁력을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고급육 사육과 브랜드화를 통한 차별화가 그 방편이다. 그렇다면, 지난 한해 최고의 한우는 어디에서 길러졌을까. 농림수산식품부 주관 ‘2008 전국 한우 브랜드 평가’에서 전남 동부권 8개 지역이 참여한 한우 공동브랜드인 ‘순한한우’가 1위를 차지했다. 순한한우는 현재 560농가 2만 6000마리를 생산해 연간 260억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전남도는 명품한우 브랜드 육성의 비결을 송아지의 생산이나 이동에 따른 이력신고는 물론 같은 사료를 먹이고 거세와 우수한 송아지 생산을 위한 인공수정까지 브랜드 관리에 철저히 나선 결과라고 밝혔다.

유재형 기자 (자료=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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