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공격성은 제어할 수 없는 본능인가

공격성은 인간의 본능이며 전쟁은 그 본능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라는 통설은 전쟁을 운명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정말 그럴까? 동물학자 콘라드 로렌츠에 따르면 동물 세계에는 ‘같은 종끼리 서로 상처 입히고 죽이는 것을 막는 여러 행동생리학적 구조’가 있다. 동물들은 공격 본능과 함께 동족을 살상하지 않게 하는 장치를 가지는데 이러한 억제 장치는 자기와 같은 크기의 동물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종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큰까마귀나 늑대는 단번에 동족을 죽일 수 있는 반면 억제 장치 역시 가지고 있기에 멸종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토끼나 비둘기, 침팬지는 같은 크기의 동물을 죽이지 못하므로 억제 장치도 필요 없다.
본래 인간은 비둘기나 침팬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무기의 발명은 인간을 큰까마귀의 부리를 가진 비둘기, 손도끼를 든 침팬지로 만들어 버렸다. 이와 함께 살육과 억제의 균형도 깨졌다. 무기가 도달하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는 사람의 감정에 와 닿지 않는다. 선량하고 예의 바른 한 가족의 아버지가 폭탄 투하 장치의 버튼을 눌러 수백 수천 명의 아이들을 향해 융단폭격을 가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인류가 서로 절멸을 걸고 싸우는 것은 기능 오차라고 할 수 있다. 무기를 발명하고 서로 죽이는 것을 미덕으로까지 여기게 된 인류의 부자연스러운 사회적ㆍ문화적 상황인 것이다. ‘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는 바로 그러한 상황에 대한 탐구이며,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은 역사적이지도 불가피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수천 년에 걸쳐 이뤄낸 문명과 진보에 대한 믿음을 한순간에 송두리째 무력화시킬 만큼의 공포, 인간의 의식 수준을 단박에 석기 시대로 돌려버리고 마는 단순하고 강력한 힘, 그것이 전쟁이다.
이런 전쟁을 증오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로 기술할 만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의로운 전쟁’의 예를 들며 그 불가피함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깡패들의 폭력 행위와 달리 전쟁은 국가가 합법적으로 행하는 집단적 폭력이므로 정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의 가장 커다란 위험을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와카쿠와 미도리의 생각은 다르다.
저자인 그녀는 ‘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에서 전쟁은 역사적이지도 불가피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고 강조한다. 단지 그 같은 주장들은 철저히 ‘가부장제 남성 지배형 국가’의 산물이며, 그러한 체제에서 벗어나야만 항상적인 전쟁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그녀는 ‘젠더 이론’을 제안한다. “전쟁을 수행하는 남성들의 전쟁론은 전쟁을 긍정하고 유지해왔다. 그것은 당연하다. 남성이 쓴 전쟁 반대론도 무력했다.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전쟁을 수행한 적이 없는 젠더인 여성들이 전쟁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전쟁은 왜 그치지 않는가, 전쟁을 계속 유발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젠더 이론을 통해 규명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고등학생 시절 ‘아우슈비츠 이후 더 이상 낭만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는 정말 아우슈비츠 학살 이후 낭만시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고 그것이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의 몰락에 대한 인간의 참담한 고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의 일이었다고 한다.
아군과 적군으로밖에 구분되지 않는 전쟁, 그런 이유로 너무도 당연히 수많은 아우슈비츠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전쟁임을 생각한다면 그 근원을 ‘가부장제 남성 지배형 국가’로 바라보는 저자인 와카쿠와 미도리의 제안이 설혹 남성들을 불편하게 하는 이론이라 할지라도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말이다.


*저자소개

지은이: 와카쿠와 미도리

도쿄 예술대학 졸업하고 로마 대학에 유학한 후 도쿄 예술대학 교수와 치바 대학 교수를 거쳐 가와무라가쿠인 여자대학 인간문화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4명의 소년: 덴쇼 소년 사절과 세계 제국’, ‘공주와 젠더: 만화에서 배우는 남성과 여성의 젠더학 입문’, ‘장미의 이코놀로지’, ‘마니엘리즘 예술론’, ‘여성 화가 열전’, ‘감추어진 시선: 우키요에와 서양화 속 여성 나체상’, ‘전쟁이 만들어내는 여성상’, ‘회화를 읽다’, ‘상징으로서의 여성상: 젠더 역사로 본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 표상’, ‘황후의 초상: 쇼켄 황태후의 표상과 여성의 국민화’ 등이 있다.

옮긴이: 김원식

1923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고 국대안 반대 투쟁을 겪으며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중퇴했다. 한국 환경운동의 여명기에 공해추방운동연합에 참여했으며 지금은 반핵반전운동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어로 옮겨 소개한 책으로는 환경사상의 내용과 역사를 153항목의 키워드로 살펴본 ‘환경사상 키워드’를 비롯해 ‘환경학과 평화학’, ‘환경정의를 위하여’, ‘위험한 이야기’, ‘지구를 파괴하는 범죄자들’, ‘시민 과학자로 살다’,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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