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수 김명자 환경부 장관(제7대 환경부장관)은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권)’에서 성공한 장관으로 손색이 없다. 4년이 넘는 임기동안 몇 번의 고비를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해결하며, 한국 여성의 넉넉한 미소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동강댐, 새만금호, 2002 한일월드컵, 오염총량제, 경유차 운영방안, 4대강 특별법 등 굵직굵직한 환경에 관한 사안들을 산고 끝에 해결하며, 여성장관을 넘어 전통적인 한국 어머니로서 집안 살림을 잡음없이 이끌어 냈다.
또한, 국민의 승리라고 말하는 ‘제16대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각 정부 기관의 장관으로 많은 여성들이 거론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 만큼 여성의 일 처리 능력면에서 남성과 비교되는 성 차별은 이제 더 이상, 이땅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다.
여성들의 역사적 투쟁(?)을 통한 입지 구축은 오늘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성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하는 잣대를 만들어 냈다.
20세기 여성운동은 먼저 참정권 확보 투쟁으로 나타났다. 산업혁명으로 여성의 경제력도 늘면서 1904년 이탈리아에서 ‘여성참정권 획득을 위한 국제연합’ 이 결성되는 등 각 국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미 뉴질랜드는 1893년, 호주는 1902년 여성에 참정권을 부여했으며 유럽대륙에서는 핀란드가 1906년 최초로 여성투표권을 인정했다. 그 결과로 1907년엔 핀란드 여성 19명이 세계 최초로 국회에 진출했다. 아울러, 여성의 경제력 향상과 함께 전기 세탁기 등 각종 생활용품 덕분에 가사노동의 짐을 덜게 된 것은 여성 사회진출의 발판이 됐다.
1, 2차 세계대전도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전쟁터로 나간 남성들을 대신해 각종 일터에 투입될 기회가 더 많아졌던 것. 여성들은 신체적 구속에도 저항하기 시작했다. 20년대의 ‘코르셋 벗어 던지기’ 운동은 68년엔 브래지어 화형식으로까지 번졌다. 70년대는 그동안 터부시됐던 낙태, 섹스, 강간문제가 여성 스스로의 입으로 제기되면서 미국 대학들에선 여성학강좌가 잇따라 개설되기 시작했다.
90년대의 여성운동은 성차별에 대한 비판을 더욱 강화,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거액보상 판례가 각 국에서 쏟아져 나왔다. 2001년 타임즈 커버스토리를 통해 이제는 여성운동이 남녀동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feminism)'에서 신체적 차이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역할을 요구하는 ’피메일리즘(femalism)'으로 바뀌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환경문제를 여성운동과 결합한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도 90년대 이후 각 국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 여성들의 치맛바람이 교육열 만큼, 환경 오염을 막아내는 행주치마로 거듭나 환경오염을 잠재울 날이 곧 도래할 것으로 믿어의심치 않는다. 우리 어머니를 믿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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