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찾아들 무렵, 작은 불빛을 소중히 안은 무리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광주시내는 효순이와 미선이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촛불로 환히 밝혀졌다.
조그마한 손으로 촛불을 꼭 움켜쥔 어린 꼬마들로부터 "내 친구를 살려내라"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검은 교복의 여학생, 양복차림의 아저씨에 이르기까지 한마음으로 진실을 외쳤다.
미군 무죄선고와 부시의 '썩은 사과'로 반미 물결이 더욱 거세지는 가운데 서울과 부산, 목포 등 전국 43개 지역에서는 기만적인 재판으로 두 번 죽임을 당한 여중생들을 위해 촛불시위가 진행됐다. 이날 광주는 '함께 가자 우리, 미군 범죄없는 세상으로!"라는 기치로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광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주최로 성대한 추모의식을 벌였다.
12월14일 18시 광주우체국 앞은 촛불과 국화, 작은 영정사진을 든 시민들과,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로 각 상가 입구는 물론, 전화부스 위까지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줄을 서 충장로를 걸으며 촛불을 든 채 '아침이슬'과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를 불렀다. 잠시 후 추모묵념으로 본 행사가 시작 됐다.
자유발언대에 오른 정인회(하남중 3년)양은 "꿈 많은 우리 또래가 죽임을 당했는데도 미군은 처벌도 받지 않았어요. 정부가 우리들의 꿈을 지켜줘야 합니다"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중생들의 눈물어린 호소에 함께 참여한 시민들은 숙연한 분위기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송지은(송정중 2년)양은 '미선이와 효순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너희의 죽음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의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단다. 우리가 약속할게, 반드시 미군없는 세상을 만들어 주겠노라고." 이후 한반도 노래패의 'Fucking U.S.A'에 맞춰 시민들은 함성을 지르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가족과 함께 촛불시위에 참가한 박선화(39)씨는 "이 땅에 아들, 딸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반복되는 미군의 악질 범죄에 분노해 참석했다"며 "전국민이 외치는 이 목소리가 미국 땅에까지 알려져야 한다"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밤이 깊어지자 'SOFA를 개정하라, 부시는 사과하라' 를 외치며 선두의 흰 소복을 입은 여학생들을 따라 모든 시민들이 질서 정연하게 시내를 한바퀴 돌아 도청으로 향했다. 도청 앞 분수대에 모인 시민들은 원을 돌며 다시 한번 한 목소리로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와 '아침이슬'을 합창했다. 분수대 중앙에 설치된 초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의 수없이 많은 전구 불 빛 보다도 더 밝고 뜨거운 촛불시위에 참여한 개혁적 국민정당대표 유시민씨는 "국민들이 발전된 시민의식으로 사대주의적 정부에 대한 반발과 반미감정을 뿜어내고 있다"며' 정부는 민족적 자주를 요구하는 민중의 요구를 대미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 주위에서 지켜보던 시민들도 맞장구를 치며 "부시는 사죄하라, 여중생을 살려내라"를 거듭 외쳤다.
촛불로 광주 민주화의 성지인 도청주변을 행진한 시민들은 단 한가지의 순수한 열망만을 이야기했으며, 국민이 주인인 이 땅에서 더 이상 불청객에게 모욕당하지 않는 너무도 당연한 그런 열망을 가슴에 되새기며 촛불 행렬을 멈추지 않았다.

호남본부=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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