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가을은 유난히 '삼국지' 열기가 뜨겁다. 소설, 만화, 게임은 물론이고 전 장르를
통해 삼국지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고 있다.

국립극장 산하 국립창극단(단장 정회천)은 오는 9월 29일(월)부터 10월 5일(일)까지 일
주일 동안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창극 <삼국지 적벽가>를 올린다.

이번 공연은 국립창극단 제108회 정기공연이자 국립극장 남산 이전 3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
기도 해 제작 단계에서부터 국악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 특히 '적벽가'가 창극으로 만들어지
는 일은 이번이 거의 처음 있는 일이라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적벽가'는 중국의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를 원전으로 적벽강에서의 싸움과 그 앞뒤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으로,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가장 호방하고 힘찬 남성적 소리로
알려져 있어 소리꾼들이 제일 소화하기 어려워하는 소리이다. 때문에 그 동안 춘향가나 심청가,
수궁가나 흥보가가 수십 차례 창극으로 올려진 것에 비해 적벽가는 '창극'으로 만들어진 경우
가 거의 없다. 1985년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분창(分唱) 형식으로 올려졌고, 지난해 창극
100주년 기념으로 올린 <전통 창극 다섯 바탕뎐>(정갑균 연출·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30분짜리 도막 창극으로 오
른 것이 전부이다.

'적벽가'가 창극으로 오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보다 기교보다는 힘, 무게, 깊이를 한꺼번에 요
구하는 '서슬이 있는' 소리를 잘 소화해 내는 소리꾼들이 많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남성 소리
꾼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남성이 주를 이루는 적벽가를 무대에 올리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기
때문. 또한 극의 대부분이 전쟁 장면과 같은 장대한 스케일을 요구하므로 이를 무대화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국립창극단은 편극위원회(장회천, 조영규, 박성환)를 결성, 창극 대본 작업에 착수하는 등 본
격적인 창극화 작업을 준비하게 되어 그 동안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이 작품을 2003년
가을, 마침내 연출가 김홍승과 손을 잡고 제대로 된 '창극 적벽가'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올리게 된 것이다.

한국 창극사에 새로운 기념비를 세우게 될 창극 <삼국지 적벽가>. 단순히 '대형 창극'이라는 외형뿐 아니라
판소리 '적벽가'로서의 소리와 음악에도 충실을 기할 이 작품은 무대예술로서 여느 장르와 비교
되지 않는 독특한 경쟁력을 지닌 한국 창극 작업의 현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뜻깊은 작품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