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마음으로 도보순례를 준비하며
대한상공회의소 조사기획팀 장정윤 |
5월20일 첫째 날 아침 한강유역환경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간 곳은 중간 집결지 종합운동장이었다. 평일에는 남대문이 코앞인 직장에서, 주일엔 언제나 교회에서 예배하는 평범한 모습에 ‘북한강 도보순례’는 나에게 가슴 두근거리는 여행느낌으로 충분했다. 전날 밤 졸린 눈을 비비며 무언가 부족한 듯 큰 짐가방의 지퍼를 수차례 여닫았지만, 정작 출발하고 나서는 가장 중요한 지갑을 두고 집을 나섰음을 전철패스를 넣는 분주한 역에서 발견한 나.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엔 이미 늦어버린 시각이었다.
북한강 도보순례단의 도보 이동 모습 |
15분정도 갔을까? 이번행사의 주최인 한경유역환경청에 도착! 등록을 한 후 도보순례에 완전 무장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물품들을 건네받았다. 따가운 햇살 속에서 얼굴을 지켜줄 벙거지 모자와 어디서나 한눈에 들어 올 수 있도록 순례단 임을 증명해 줄 주황색 조끼, 빼곡한 일정을 소복하게 고스란히 담은 핸드북과 기념품인 수건을 받고 우리는 자기소개 및 도보순례에 대한 기대와 포부를 짧게 나누었다.
두타연에서 한기선 청장이 발대식을 알리고 있다. |
두 시간 반 남짓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린 후 첫 목적지인 우리나라 최대의 열목어 서식지 ‘두타연’에 다다랐다. 두타연은 늦어도 방문 이틀 전에 미리 출입신청을 하지 않으면 들어 갈수 없는 특별한 자연 그대로의 젠틀함을 자랑한다. 또한 숲속과 차도로 생태관찰을 할 수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송곳처럼 끝이 뾰족한 철조망과 역삼각형의 빨간 지뢰 표지판이 50년 동안이나 사람을 거부했던 고요한 두타연을 선명하게 장식했다.
자연과의 속삭임, 필요한 건 ‘소통’
앞에는 백석산이라는 장엄한 산이, 중앙에는 두 얼굴 마주 보며 사랑을 나누는 듯 한 사랑바위가 폭포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었다. 계곡의 모습이 한반도의 지도를 옮겨 놓은 듯해서 신기해하며 늘 마음만이지만 곧잘 잊어버리고 마는 통일에 대한 염원까지 다시금 품게 해줬다.
전창범 양구군수가 두타연을 설명해주고 있다. |
두타연에서 초소로 걷는 7km 트레킹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평안해 보이기만 했던 나무와 풀들까지 생존경쟁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단지 환경오염, 오존층 파괴만으로 생태계가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경쟁으로 살아남는 생태계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게 새삼 상큼한 레몬향 만큼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았다. 시끄럽게 으르렁대는 동물들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푸르기만 해서 아무하고도 다툴 것 같지 않은 초록빛을 띤 녀석들까지 대립각을 세운다는 것이 왜 그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강하고 센 것이 승리하는 당연한 자연의 법칙 앞에서 작고 연약한 것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며 존중받기를 희망해본다. 어렸을 때 그림책에서만 봤던 딱따구리 구멍도, 가지를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게 변한다는 물푸레나무도, 가시가 줄기까지 험상궂게 나있지만 속뿌리부터 약재로 쓰이며 오래된 병의 효자라는 엄나무도 걷는 길에 친구가 돼 주었다.
자연이 가르쳐준 ‘만남에서의 타이밍’
그렇게 첫날 오전, 걷는 코스를 마치고 오색 산채 비빔밥과 산에서 갓 캐 오셨다는 향긋한 더덕무침과 함께 시장기를 달래며 넉넉하고 푸근한 주인아주머니의 마음까지 서비스 받고 산양증식복원센터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센터 관계자의 얘기로는 산양들이 식사시간 이외엔 대부분 숲속에서 은둔하는 습성이 있어서 우리가 간 시간이 식사시간이 지난 후라 멀리서 밖에 볼 수 없었다. 사람의 만남도 그렇지만 동물과의 만남 역시 타이밍의 중요성에 대해 또 한 번 느낄 수 있는 아쉬움의 시간이었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그 시간에 나타주지 않으면 볼 수 없다. 아무리 소중하고 원해도 함께하지 못 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정확하고 절묘한 타이밍이 내 인생의 모든 중요한 순간에 어긋나지 않고 잘 맞춰지길 잠잠히 기도했다.
평화의 댐 모습 |
그 시간을 지나 북한강 협곡을 막아서 만든 인공호수 파로호 선착장에서 배에 탑승했다. 겁이 유난히도 많은 나로선 배에 타는 것이 무섭기만 했기에 출선한지 삼십분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버린 얼음처럼 배안 구석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찍고 싶은 강위의 아름다운 풍경이 많았지만 큰 엔진소리를 내며 물살을 가르는 배를 뒤로 한 채 그저 유리창을 반사경 삼아 보는 것이 전부였다.
평화의댐에서 출발한 배가 파로호선착장에서 내려섰다. |
첫날 만찬은 화천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 간장으로 찜을 한 돼지 잣찜과 숙소로 돌아와서는 화천 군수님께서 마련해 주신 외래어종 배스회와 산천어회, 화천에서 만든 어묵 등으로 풍성한 식탁을 받으며 첫날밤을 평안히 맞이했다.
내 마음 속에 삶의 느낌표를 찍다
둘째 날 아침 창문에 톡톡톡 떨어지는 맑은 빗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평상시 네 시 반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는 습관 탓에 여독의 피곤함도 잊은 채 일어나 거실 창문부터 활짝 열었는데…. 꼭 내가 숲속의 잠자는 공주님이 돼버린 것처럼 테라스에서 보이는 일곱 개의 집들에선 난쟁이들이 나올 것만 같은 동화 속 펜션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침의 풍경만으로도 감동 그 자체였다. 내리는 비를 워낙 좋아하는 나에게 단비로 시작하는 둘째 날은 내게 다가올 시간과 밟게 될 땅, 그리고 만나게 될 모든 것들에 대해 더욱 기대하고 더 기다리게 하는 설렘이 돼 주었다.
화천댐 모노레일형 어도를 한기선 청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탑승 체험을 했다. |
그 다음 코스 미륵바위에서 장거교까지 걷기가 시작되었다. 왼쪽으로는 잔잔히 흐르는 쪽빛 강과 안개가 걸쳐 있는 산마루, 오른쪽에는 하나같이 각기 다른 깔끔한 모습으로 반듯하게 서있는 연초록 은행나무들이 내 마음과 눈을 다 가져가 버렸다. 개구리와 두꺼비들도 마음껏 뛰어 나오는 시골길을 걸으며 그 길의 지나침이 아쉽고 아까울 정도로 행복했다. 삼일동안 걸었던 도보순례의 코스 중 내가 꼽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의 아름다움이었다.
도보 이동 중에 만난 무당개구리 |
그렇게 한 시간 반쯤 걸어 절경을 만끽한 후 먹는 점심 싱싱한 회와 매운탕으로 모두를 맛있는 오후로 만들어줬다. 그 후 우리가 도착한 곳은 강원대학교 내에 위치한 야생동물구조센터다. 이곳은 부상당한 야생동물을 구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 또한 할 수 있는 곳으로 춘천에 국내 제1호 입원실, 수술실이 있는 국내 최대 야생동물 병원이다.
가여운 야생동물들을 보고나서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재활중인 수리부엉이 |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재활중인 큰소쩍새 |
그래도 그 곰이 나중에 회복될 때는 사과 7박스를 다 먹고 자연에 방사했다는 이야기에 웃을 수 있었다. 모든 야생동물이 다시는 사람들로 인해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고 아파하지도 않으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건강하게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 다음 춘천시 하수처리장을 둘러 본 후 우리는 가평으로 이동해서 숯불 삼겹살로 든든하게 저녁을 한 후 마지막 밤을 아쉽게 맞이했다.
지친 일상을 떨쳐낸 자연과의 시간
셋째 날 아침, 전날의 단비로 하늘은 더 파랗고 구름은 더 하얗게 몽실해졌다. 깔끔한 황태해장국으로 정갈한 나물들과 간단히 조찬을 마치고 부지런히 중부 내수면 연구소를 견학했다. 우리나라 내수면 생태계 연구와 보존 교육 개발 등 우리나라 고유의 민물고기를 지켜내는, 없어서는 안 되는 연구기관이었다. 실내수족관 및 대형연못에서 아주 작은 물고기부터 대어까지 처음 접해 본 이름이며 낯선 모습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특히 영화 제목이던 쉬리가 인상에 남는다. 맑은 물속에서만 산다는 쉬리여서 귀엽고 조그마한 몸체로 은빛가루를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동한 곳은 청평댐. 시설들을 둘러 본 후 마지막으로 가장 긴 도보코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빨갛게 타오르는 햇살이 자연과 더 끈끈하게 하나 된 우리를 질투라도 하는 듯 뜨거워졌지만 비가 온 후 이슬 맺힌 들꽃들은 천연의 색으로 더 곱고 화사하게 갈아입었고 산새들의 지저귐은 더 맑고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두물머리에서의 해단식 모습 |
2박 3일 동안의 여정동안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온 시간이었다. 좋은 추억 하나 새롭게 태어나 늘 가슴 속에서 맴돌게 될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자리를 마련해주신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분들과 도보순례를 흔쾌히 허락해주신 한강수계위원 대한상공회의소 이현석 전무님께 큰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