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관광지가 나오지 않는 이상한 여행 가이드북

 

에코북새로운 여행 가이드북이 나왔다. 그런데 책을 아무리 뒤적여도 유명 관광지, 맛있는 음식점, 기차 시간표가 하나도 안 보인다. 대신 쪽을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건 히말라야 포터 아저씨 이야기, 호텔에서 청소하는 아줌마 이야기, 티베트 난민촌 할머니 이야기, 필리핀 첩첩 산중의 작은 마을 이야기, 인도 불가촉천민들의 학교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히말라야 포터를 돕는 여행, 호텔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여행, 자유와 정의를 위한 여행, 숲을 지키는 여행, 동물을 돌보는 여행 같은 다양한 사례와 정보가 소개된다. 새로운 여행, 공정여행 안내서다.

 

새로운 여행, 공정여행Fair Travel이 온다

 

그동안 공정여행이 여러 매체에 소개되고, 공정여행 사회적 기업이 생겨나고, 대학생 여행 공모전에 공정여행 프로젝트가 쏟아지며 새로운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 책은 공정여행을 안내하는 첫 번째 책이다. 책에는 인권, 경제, 환경, 정치, 문화, 배움, 여섯 가지의 시선으로 여행을 바라보며, Fair Travel Story, 깊이보기, 공정여행 팁, 공정여행 루트, 새로운 여행, 새로운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새로운 여행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와 정보들로 가득하다. 한 해 1,300만 명이 해외여행을 하는 시대, 새로운 여행에 대한 상상이 시작되고 있다. 이제 여행에도 ‘페어플레이’가 필요하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해외여행 인구

 

지난 50년 동안 세계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는 사이 해외여행 인구는 무려 36배로 늘었다. 2007년 한 해 동안 9억 3백만 명이 해외로 여행을 했고, 관광산업은 세계 GDP의 10.3%를 차지하는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해외여행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한 우리나라 또한 세계 여행시장에서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2007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인구의 25%에 이르는 1,300만 명이 해외로 나갔고, 한국 관광객의 지출 규모는 세계 10위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면서 현지에 나쁜 영향은 끼치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의 편안하고 즐거운 휴식 뒤에 남겨지는 것은 무엇일까? 어마어마한 관광수입은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을까?

 

관광개발의 대가

 

한 사람이 여행할 때, 하루 평균 3.5kg의 쓰레기를 남기고 남부 아프리카인보다 30배 많은 전기를 쓰고, 인도 고아의 오성급 호텔 하나가 인근 다섯 마을이 쓸 물을 소비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호텔 뒤편 세탁실에는 점심시간 ‘10분’ 외에는 종일 서서 다림질을 하는 여성이 있었고, 해변에 리조트가 들어서면서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고기잡이를 할 수 없게 된 어부들이 있었고, 사파리 관광 리조트에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땅을 빼앗기고 강제이주 당한 소수부족들이 있었다. 우리가 쓰는 돈이 100만 원이라면, 그중 40만 원은 비행기에, 그 중 20만 원은 여행사에, 20만 원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쓸 물건을 수입해 오는 데 지불되고 현지에 남는 돈은 20만 원이다. 그 중에서 현지의 마을에 돌아가는 돈은 1~2만 원뿐이다. 관광개발은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숲은 파괴되었고, 바다와 땅을 잃은 이들은 호텔의 일용직 청소부, 짐꾼, 웨이터가 됐다.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희망을 여행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 관광의 그늘 속에서도 희망을 만드는 이들이 있었다. 성차별과 카스트를 뚫고 네팔 여성들을 히말라야 가이드로 훈련시키는 쓰리 시스터즈의 세 자매들, 여행자들과 함께 티베트 난민들의 자립을 돕는 무료탁아소와 여성 작업장을 꾸려가는 다람살라의 빼마와 잠양, 지역 농민들을 지원하며 유기농업 운동을 하는 호텔 투시타의 프롼잘, 팔레스타인 농민들과 올리브 나무를 지키고 있는 사디, 소수부족의 문화와 노래와 영혼을 지키고 있는 민다나오의 로잘리, 와와이, 쿠불라이가 그들이다. 그리고 티베트, 인도, 네팔, 필리핀, 태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쿠바, 런던, 덴마크 등 아시아와 유럽, 남미를 넘나들며 다친 코끼리를 돌보고, 여성들과 대안생리대를 만들고, 아시아의 예술과 영성을 만나고,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가리워진 진실을 만나고, 깊은 배움을 얻어온 여행자들이다. 여행은 ‘떠남’이 아니라 ‘만남’이며, ‘소비’가 아니라 ‘관계’이며, ‘어디로’가 아니라 ‘어떻게’라고 이들은 믿고 있다. 우리 삶뿐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여행을 꿈꾸고 있다.

 

경험과 배움과 나눔의 여행을 위한 길잡이

 

이제 우리 사회에서 여행은 새로운 코드로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여유 있는 사람들의 휴식과 오락의 방법이 아니라, 언론과 미디어를 통한 간접 경험을 넘어 개인이 세계를 만나는 직접적 경험으로, 젊은이들이 세상을 배우는 교육의 장으로, 봉사하고 실천하는 나눔의 장으로 여행의 의미는 확장되고 있다. 이런 새로운 여행자들이 늘어나며 그에 따른 정보를 찾고 있지만 기존 가이드북에는 소비적인 정보들 일색이었다. 깊은 경험의 여행, 배움의 여행, 나눔의 여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공정여행 가이드북은 보다 깊은 정보에 대한 목마름을 달래는 작은 샘물이 될 것이다.

 

공정한 여행에서 공정한 일상으로

 

사람들이 여행을 사랑하는 중요한 이유는 여행으로 자신의 존재를 다시 발견하고 삶의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이 우리는 이끄는 것은 결국 새로운 삶에 대한 동경 때문이 아닐까. ‘공정여행 가이드북’은 공정무역 제품 선택하기, 자신의 여행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내 주변을 재발견하는 동네 공정여행, 여행에서 만난 이들을 돕는 이들, 여행자들이 경험과 꿈을 나누는 공정여행축제 등을 소개하며 공정한 여행에서 돌아와 공정한 일상을 디자인해보자고 제안한다. 여행자들이 여행에서 느낀대로 삶을 바꾸어 나가고, 여행지를,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나눈 경험을 스스로 블로그에, 카페에 기록하고, 여행자들의 네트워크가 살아날 때, 새로운 여행은 상상할 수 없는 힘으로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에 중요한 힘이 될 수 있다. 이 책에는 또한 특별한 선물이 들어있다. 흥미진진한 여행의 역사와 대안적 여행의 역사, 여행에서 돌아온 이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삶의 이야기, 희망의 지도를 만드는 첫 번째 여행자의 공정여행 세계일주 프로젝트 소개, 세계 대안여행 운동가들의 특별 인터뷰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책은 ‘공정여행자가 되는 10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 소개

 

임영신 : 2003년, 전쟁 직전의 이라크로 떠난 여행을 시작으로 여행을 일상으로 삼게 됐다. 티베트, 아체, 팔레스타인, 민다나오 등으로 이어진 평화의 여행들, 아시아 곳곳의 공정무역 현장들, 피스보트, 세계사회포럼 등을 경험하며 경계를 넘는 여행자들이 ‘공정한 세계’를 열어갈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그 마음으로 2006년부터 10여 차례의 공정여행, 제천간디학교와 함께한 3년간의 아시아평화교육 프로젝트, 두 번의 공정여행 축제를 기획ㆍ진행해 왔다. 성공회대 대학원에서 NGO학을 전공했고, 쓴 책으로 평화는 나의 여행(소나무), 함께 쓴 책으로 이라크에서 온 편지(박종철출판사)가 있다.

이혜영 : 삶에서 도망치듯 떠난 티베트 여행에서 시각장애인학교 아이들과 지내며 여행과 만남이 지닌 치유의 힘을 배웠다. 그 아이들을 기억하며 분쟁지역 아이들을 위한 평화도서관을 만드는 일에 마음을 내기 시작했고, 그 마음은 티베트를 지나 네팔로, 인도 다람살라로 더 먼 여행의 길을 걸어가게 했다. 6년 동안 녹색연합의 생태주의 잡지 ‘작은것이 아름답다’를 만들었고 지금은 소나무출판사에서 생명과 세상을 일구는 책을 만들고 있다. 이 책을 쓰고 편집했다. 쓴 책으로 갯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사계절), 함께 쓴 책으로 산골마을 작은학교(소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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