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시체에 불과한 이 시대의 지식인들에게 고함

 

에코북간디-비노바-사티쉬 쿠마르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로부터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을 쓴 장 지오노의 이 말은, 사티쉬 쿠마르가 ‘버리고, 행복하라’를 엮으면서 스승 비노바 바베에게서 연상했을 법한 말이다.

60년대 말, 버트란드 러셀이 반핵평화시위를 이끄는 사진을 보고 감동받아 평화를 위한 걷기 순례를 시작했다는 사티쉬 쿠마르, 가는 곳 어디서나 주민들은 이 평화의 순례자를 열렬히 환영하며 먹여주고 재워줬다고 한다. 현재 영국 남부의 세계적인 생태마을 하틀랜드를 이끌며, 산업문명의 절망을 넘어 새로운 인류문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과 위안과 상상력을 주는 그는, 아직도 자동차를 거부하며 걸어다닌다고 한다.

사티쉬 쿠마르가 그런 삶을 살아가도록 지대한 영향을 끼친 존재가 비노바 바베이다. 간디가 인도 독립의 날 인도 국기를 맨처음 게양할 사람이라고 말했으며, 간디 이후 그의 후계자로서 당연스레 받아들여졌던 인물이다. 사티쉬 쿠마르가 스승 비노바의 말과 글 중에서 발췌, 편집한 이 책 ‘버리고, 행복하라’는 진리와 비폭력과 지혜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과 대화하기를 원했던 비노바의 바베의 한평생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새로운 혁명의 제안, 그리고 비폭력

‘버리고, 행복하라’에서 비노바 바베는 우리가 지금까지 소중하다고 생각하던 가치들을 모두 버리라고 말한다. 학벌, 신분, 물질, 권력... 그런 것을 모두 버리고 진짜 소중한 것을 잡으라고 한다. 그리고 이 땅에 발을 굳게 디디고, 우리 삶과 사회를 한층 성숙한 것으로 가꾸어가라고 말한다. 비노바의 평생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는 대립이 아닌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데 삶을 바쳤다. 그 가장 값진 열매가 바로 부단 운동, 즉 토지헌납운동이다. 가난한 불가촉천민들이 살아갈 방법을 온 마을이 함께 고민하는 자리에서 한 지주가 자발적으로 자기 땅을 내놓겠다고 나선 것에서부터 시작된 부단 운동은 방방곡곡을 두 발로 걸어다닌 비노바의 노력과 헌신으로 인해 전 인도에 퍼져나갔다. 만약 당신이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면 자녀가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하고, 그 또 한 명의 자녀를 위해 가진 것의 6분의 1을 바쳐라. 그것은 부자와 빈자 모두에게 섬김과 헌신의 행위가 된다. 비노바의 생각은 우리의 경제와 사회 구조 전체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혁명이었다.

비노바는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두려움 없이 확고하게 진리를 붙들지 않고서는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말한다. 세계를 폭력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진리뿐이라고 말이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 다른 사람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며 이로써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고 위협하지 않는 용기, 곧 사티아그라하(비폭력 저항운동)의 힘이 길러진다. 자신의 입장을 이해시키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끈질기게 노력하는 가운데 생각의 힘이 길러진다. 적대감은 적대감으로는, 폭력은 폭력으로는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

비폭력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사회를 급박하게 동요시키지 않는 가운데 천천히 변화를 모색하는 것을 방침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노바가 생각하는 비폭력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비폭력이 천천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한다. 사회의 동요를 억누르려는 생각은 보수주의에 다름 아니며, 비폭력적인 평화와 정의 운동은 사람들의 정신과 사회에 혁명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방법이 되어야 한다. 비폭력은 폭력보다 강력하게 실천되어야 하며, 폭력보다 훨씬 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이 사회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비폭력 혁명을 일으키려는 사람은 양처럼 순해서는 안 된다. 사자처럼 용감해야 한다.

 

*저자 소개

 

지은이-비노바 바베 Vinoba Bhave

1895년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 가고데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브라만 가문의 아들이었던 그는 열 살 때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겠노라고 서원한다. 1916년 마하트마 간디를 만나면서 비노바 바베의 삶은 전환점을 맞는다. 아메다바드에 있는 간디의 아슈람에 들어가 간디가 주장하는 비폭력적 사회변혁의 원리를 열렬히 추종하게 된 것이다. 그 뒤 1951년부터 그가 벌인 부단 운동, 즉 토지헌납운동으로 인해, 이후 인도 전역을 걸어다니면서 부유한 지주들을 만나 가난한 자들에게 땅을 기부하도록 촉구했던 일로 비노바 바베라는 이름은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간디 이후 인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영적인 인물로 일컬어지던 비노바는 75세 때 침묵을 서원하고 만년을 기도와 명상 가운데서 지내다가 1982년 세상을 떠났다.

 

엮은이-사티쉬 쿠마르 Satish Kumar

인도 출신의 국제 평화운동가로 아홉 살 때부터 자이나교 승려로서 모든 친지들과의 접촉을 끊은 채 9년간 인도를 걸어서 횡단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상과의 단절이 영성을 깊게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질식시킨다는 것을 깨닫고, 비노바 바베와 만나 그의 가르침을 받는다. 그 후 바베의 토지헌납운동에 동참했으며, 인도에서 모스크바, 파리, 런던, 워싱턴까지 반핵과 평화를 위해 도보순례를 했다. 현재 영국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며, 국제적 생태 공동체인 ‘슈마허 학교(Schumacher College)’의 운영과 격월간 생태잡지 ‘리서전스( Resurgence)’의 발행에 관여하고 있다.

 

옮긴이-김문호

감리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사진가,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주로 인문학 분야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신의 전기’, ‘성숙에 이르는 명상’, ‘예수의 전기’, ‘바보들, 순교자들, 반역자들’, ‘설탕과 권력’, ‘평화의 미래’,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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