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보물창고, 논 여행을 떠나자

 

에코북이 책은 아이들에게 농업이나 농촌의 자연을 접할 수 있게 해주자는 움직임으로 만들어졌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풍부한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자연의 놀이터가 사라진 지금, 친구나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농촌에서도 농업의 기계화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거의 없어졌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풍부한 감성 또는 인간성이나 스스로 배우고 생각하는 ‘살아가는 힘’을 키워줄 ‘종합적인 학습시간’을 만들기 위해 이 책 ‘생명이 모이는 생명이 자라는 즐거운 논학교’가 태어나게 됐다. 지금은 농촌의 자연환경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 논, 수로, 저수지, 마을 산 등을 아이들의 놀이나 학습의 장으로 활용하면서 도시와 농촌의 상생, 인간과 자연의 공생으로 이어지게 하자는 환경교육이 활기를 띠게 됐다. 저자 우네 유타카는 이러한 지원활동의 일환으로 이 책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한다. 또한 농촌을 농산물을 생산하는 장소로만이 아니라 생태계 보전이나 어린이 교육, 문화까지 키워주는 장으로 볼 것을 강조한다. 지금까지의 농업서적과는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에 더해 풍부하게 제시된 그림과 사진이 지루함을 덜고 설명의 이해를 도와주며 흥미를 돋워준다.

 

‘학습의 장’, ‘놀이의 장’, ‘즐거움의 장’ ― 논

 

제1장에서는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실감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좀 더 깊게 들어가 알아본다. 농업이 근대화되면서 논에서 아이들이 도울 만한 일거리를 없애버린 탓에 언제부터인가 농촌 아이들이 논 주변을 돌아다니는 일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요즘의 농촌 아이들도 논 안이나 개천, 마을 산속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논을 단순한 생산의 장이 아닌 새로운 구조와 규칙을 만들어 가면서 ‘학습의 장’, ‘놀이의 장’, ‘즐거움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취지다. 농사일 속에 담겨져 있는 신비로움, 즐거움, 어려움, 고민을 함께 하고 아이들에게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그 어떤 곳보다 활발한 ‘공생’이 이루어지고 있는 논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연과 자연의 공생’, ‘인간과 자연의 공생’, ‘인간과 인간의 공생’ 등 ‘공생의 장’이 장관을 이루는 것을 목격하게 하고, 자연과 ‘마주보고’, ‘만나고’, ‘절충하고’, ‘양보하고’, ‘포기하고’, ‘안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생명체의 공생을 직접 눈으로 관찰하게 한다.

대표적으로 ‘학습의 장’을 살펴보면, 논의 모양이나 크기가 왜 다를까에서 출발한다. 논이 밭과는 다르게 평평해야 하는 이유, 기계농사가 아닌 손 농사일 때 넓은 논보다는 좁은 논이 편한 이유 등을 설명한다. “논 만드는 것보다 논둑을 만들어라”라는 옛말처럼 논둑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도 설명한다. 본격적인 모심기 전에 하는 써레질은 물이 흙과 흙 사이에 스며들 수 없도록 해 물을 고이기 쉽게 하는 것으로 이 작업을 왜 해야 하는지, 이 작업으로 물이 왜 따뜻해지며 여러 생물들이 왜 살기 좋아지는지도 설명한다. 모심기는 직접 볍씨를 뿌리면 새들이 먹어버리거나 비에 떠내려가기 때문에 혹은 비가 오지 않으면 볍씨 대신 풀이 많이 자라기 때문에 못자리를 만들어 모를 키운다. 본격적으로 모심기를 할 때의 설명은 자세하고 재밌다. 설명과 곁들여진 익살스러운 그림은, 흙의 느낌이 어떠니? 발의 감촉은 어때? 모를 심을 때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흙의 감촉은 어떠니? 딱딱하니? 부드럽니?라고 묻는다. 벼가 자랐을 때의 논 관찰과 벼 잎의 관찰 등을 통해 풀과 다른 점을 찾고, 벼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왜 눈에 잘 안 띄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모심기가 끝난 후 논과 논둑에 어떤 생물들이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해충과 익충, 그냥벌레 들에 대해 알려준다. 여기서 독자는 해충이라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며, 익충 또한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논의 구조와 역사, 논물의 수질과 습지로서의 논의 가치, 나아가 논생물 조사는 어떻게 하는지 등을 통해, 논이 생태학습의 장으로서 얼마나 큰 가치를 지녔는지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도록 배려했다.

 

또 하나의 습지, 논 ― 그곳에서 일어나는 환경기능

 

애석하게도 요즘 아이들은 논과 벼를 씨실과 날실로만 여기지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생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논과 논 주변에는 얼마나 다양한 생명체가 서식할까? 저자는 이 책에서 논과 그 주변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들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거미와 달팽이, 개구리, 송사리, 동남참게, 실지렁이, 깔따구, 소금쟁이, 우렁이, 잠자리, 메뚜기, 물방개, 거머리, 장구애비, 투구새우, 미꾸라지 등 작은 동물에서 이를 잡아먹는 오리, 왜가리, 백로와 같은 조류와 심지어 너구리, 고라니 등까지 실로 그 수가 엄청나다. 또한 물의 중요성과 바람의 중요성, 특히 바람을 이용한 거미들의 여행은 상상만 해도 장관을 이룬다. 저자는 논은 또 하나의 습지라고 강조한다. 논은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습지이지만 어느 자연습지 못지않게 다양하고 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공간이자, 환경정화, 공기정화, 물의 비축, 홍수예방, 습도조절, 정서함양 등의 많은 환경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기후변화와 관련된 논의 기능이 주목받고 있는데, 특히 식생이 발달한 습지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기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지표탄소의 40%를 저장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논을 훼손하면 저장된 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돼 기후변화가 가속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온실가스 저장고’이기도 한 논을 보호ㆍ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생태기능으로 따져도 논은 아주 중요하다. 야생동물과 식물의 터전이 되며, 무속 유기물질을 없애는 오염정화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곤충들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살아주는 것은 아니다. 현재와 과거의 논 환경을 비교해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요즘엔 그 흔했던 제비를 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소쩍새, 논종다리 등도 그 울음소리를 듣기가 어려워졌다. 뿐만 아니라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우리의 논과 농촌도 어느새 점령한 상태다. 이 책이 일본의 상황을 다룬 것이라고 가볍게 볼 수만은 없는 이유는 국경에 상관없이 논과 그 주변에 사는 물새, 철새의 존재와 개체 수 그리고 다양성이 바로 논과 그 주변 생태계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상위 먹이사슬인 물새들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 서식지 주변에 이미 많은 미생물과 동식물들이 사라졌고 곧 인간도 살 수 없게 됨을 뜻한다. 논의 위기가 바로 우리의 위기인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논의 가치는?

 

늘 물이 고여 있는 무논은 넓고 평탄한 저수지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논의 평균 둑 높이를 27센티미터로 볼 때 전국의 논에 동시에 가둘 수 있는 물의 양은 약 30억 톤에 이른다. 이는 춘천댐 저수량(약 1억 5천만 톤)의 20배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다. 논에서 천천히 땅속으로 스며든 물은 맑은 지하수로 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논 밑으로 스며드는 지하수의 양은 연간 약 160억 톤인데, 이는 우리 국민의 연간 수돗물 사용량의 2.7배에 달한다. 우리 국토의 약 10%를 차지하는 논에서 자라는 벼가 배출하는 산소량은 연간 1천6백만 톤이다. 이 정도면약 5천 8백만 명의 인구가 1년 동안 숨 쉴 수 있는 양으로, 즉 우리 인구 전체가 논에서 나오는 산소만으로도 1년간 실컷 호흡할 수 있는 셈이다. 물이 고인 논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올챙이가 꼬물꼬물 헤엄쳐 다니고 도롱뇽 알에 논고둥이 붙어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또 물꼬에는 미꾸라지와 붕어가 살고, 그것을 잡아먹기 위해 날아오는 백로나 왜가리 같은 철새도 있다. 논두렁에는 별꽃이나 배불알꽃 같은 식물이 서식하는 등 논에 기대어 살아가는 생물들도 아주 많다. 이 같은 논의 다양한 기능을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약 50조 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저자는 더 이상 논을 파괴하는 정책을 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전체 칼로리의 20%를 제공하는 논은, 축산, 육류 등에 비해 훨씬 효과적으로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작물인 쌀을 생산하는 습지이기에 단계적으로 보호수위를 높여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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