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경일보】신영웅 기자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8월24일 충청남도기념물 제9호인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했다.

 

 충청수영성은 조선 초기에 설치돼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됐며, 그 규모는 ‘세종실록지리지’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과 그 산하에 배속된 군선과 병력이 군선(軍船) 142척에 수군 수(水軍數)가 총 84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충청수영성 서문 홍예.
▲충청수영성 서문 홍예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 위치해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했고,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선조 29년(1596), 충청수사 최호가 충청수영의 본영과 속진의 수군을 이끌고 남해 한산도에 머물며 수군통제사 원균의 지휘를 받다가 이듬해인 선조 30년(1597) 7월1일 일본군에 패해 통제사 원균과 함께 전사했다.

 

 또한 충청수영성은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수려해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지역으로 성내의 영보정이 유명했고, 서문 밖 갈마진두(渴馬津頭)는 충청수영의 군율 집행터로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천주교 신부 다섯 명이 순교한 곳이다.

 

 근대에 들어 도로개설이나 호안매립 등으로 인해 훼손된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충청수영성은 나머지 성지(城址)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지형이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목적에서 마련된 충청지역 수군 지휘부로써 충남의 수군편제와 조직, 예하 충청지역 해로(海路) 요해처(要害處)에 배치됐던 수군진과의 영속 관계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으로 역사적ㆍ학술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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