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환경일보】고현준 기자 = 개발이냐 보전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남원읍 태흥2리 벌포리 해안은 올레4코스에 포함돼 있는 태흥2리에 있다.

 

태1.
▲벌포리 해안

옛날에는 갯벌이 있어 염전으로 이용되던 지역이지만 지금은 일주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염전의 허리가 잘렸고 남원하수종말처리장이 들어서면서 두동강이 나버린 갯벌이 3개로 나뉘어져 소재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드물게 만나는 갯벌에는 불로초라 불리우는 함초가 다소곳이 자라고 있다. 이제 이곳으로 해안도로가 연결될 차비를 하고 있다.

 

 

태4.
▲해안가

오문식 태흥2리장은 “행정에서 마을살리기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땅이 있어야 지원이 된다고 해 두동강 난 갯벌을 메워 새로운 땅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환경보호도 좋지만 마을도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행정에서도 해안마을의 경우 마을 주민들이 관련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땅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공유수면 매립을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땅을 만들 수 있느냐며 행정의 무관심”을 지적하기도 했다.

 

 

 앞으로 태흥2리 벌포리해안은 소중한 제주도의 천연자원인 갯벌을 메꾸고 새로운 땅을 만드는 대역사(?)가 추진될 가능성이 많아지고 있다. 올레꾼들이 지나다 잠시 쉬어가도 좋을 곳이다. 바닷가에 앉으면 저 멀리 서귀포 앞바다 섭섬과 문섬이 보여서 더욱 친근해 지는 곳이다.

 

태7.
▲갯벌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나그네에게는 평안을 주는 쉼터임에 틀립없다. 벌포리해안에는 특별히 용천수가 바닷속에 숨어 있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식수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썰물이 되면 바닷속으로 솟아나는 용천수가 흘러나오는 곳이 있어 동네 사람들의 여름철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고 한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 태흥2리는 맛좋기로 유명한 감귤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감귤 값이 좋아져 부자동네로 변한 이곳은 제주도 특산물인 옥돔의 주산지이기도 하다. 이곳 옥돔은 타 지역에 비해 가장 높은 가격을 받는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질이 좋기 때문이다.

 

오 이장은 “여러가지 마을을 위한 계획은 많지만 마을을 널리 알리고 주민 소득을 올리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옥돔 축제’도 기획중”이라고 소개했다.

 

태10.
▲벌포리 해안

태흥2리 벌포리해안은 앙증맞은 예쁜 자태를 자랑한다. 부담없이 보면서 즐기면 되는 곳이다. 올레 3코스와 5코스가 유명한 해안과 절경이 있고 볼 게 많은 코스로 유명하지만 이곳 4코스를 지나는 벌포리해안은 있는 듯 없는 듯 우리에게 평화로움을 선사한다.

 

완만한 용암들과 곳곳에서 피어난 작은 꽃들과 작은 열매들이 있다. 제주 해안의 여러 가지 다양한 아름다움을 편안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갯벌이 파괴되지 않고도, 해안경관이 무너지지 않아도 지켜지면 우리에게 편안한 휴식을 줄 수 있는 숨어있는 해안이다. 유명하지는 않아도 거대한 볼거리는 아니라 하더라도 벌포리해안은 아름답게 존재한다.

 

태9.
▲해안가
소품이 주는 아름다움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제주도가 지켜야 할 제주환경 100선’에서 5번째로 뽑은 아름다운 해안이다.

 

태흥2리 마을 홈페이지에 소개된 마을 유래는 다음과 같다. 마을약사에 따르면 태흥마을은 지형이 비교적 광활하고 기온이 온화하며 해안지대를 넓게 끼고있어서 옛부터 ‘폴개’라 불렀다. ‘묵은 가름’이란 곳에 인가가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고 보면 이곳 태흥리에는 고려말경에서부터 부락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해안변에서 멀리 떨어진 ‘묵은 가름’보다 해안을 가까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포구가 많고 소금밭이 가까우며 해산물이 풍부한 해안변으로 이주하여 소섯개, 봉안이개, 산 것개,앞빌레 해안을 중심으로 자연부락이 생겨났으며 펄이 있는 포구 주변에 산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폴개’라 칭했다.

 

1414년 조선 태종 2년 탐라가 제주로 불리워지고 정의군 서중면이라 하여 면소재지를 의귀리에 두고 본리를 벌포리(伐浦里)라고 했고 그후 보한리로도 개칭했다. 1902년 임인년에는 이기원,김계형이 태흥리로 개명하였고 1925년 태흥 1,2,3구로 분리시켰다가 1952년 태흥리로 합리(合里)시켜 생활하였으나 마을이 커지고 생활권이 달라짐에 따라 행정구역도 1955년 태흥 1,2,3리로 분리되었으나 1960년 8월 1일 또다시 태흥 1,2,3리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3.
▲벌포리

태흥2리는 1987년 이전에는 벌포리(伐浦里)로,1897년 경에는 보한리로 불리다가 1902년부터 태흥리로 됐다. 폴개, 벌포리, 태흥리로 유래와 현황은 태흥 2리의 이름으로 이 마을은 고려말 경에 이미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 년 전부터 ‘폴개’또는 ‘벌포리’등으로 부르다가 한때는 ‘보한리(保閑里)’라고 한적도 있으며 약 150여년 전에 ‘동보리’와 ‘서보리’로 나눴다가 서기 1902년에 ‘태흥리’라고 마을이름을 완전히 바꾸고 일제 강점기 시절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태흥리’를 ‘태흥 1구, 2구, 3구’로 분리했다.

 

1952년에 다시 통합, 마을이 너무 확장되어 한 마을로서는 벅차니 1955년 행정리 ‘태흥 1리’와 ‘태흥 2리’ ‘태흥 3리’로 분리했다. 1960년에는 다시 합리(合里)했다가 6개월만에 분리하여 오늘에 이른다.

구전에 의하면 ‘폴개’는 포구가 있는 바닷가라고 해 ‘포개’의 의미와 함께 ‘소금밭’에 갯펄이 질퍽하니 깔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벌포리’는 ‘태우’, 즉 떼배가 많은 포구가 있는 마을이란 의미에서 연유한 이름이라 한다.

 

kohj007@hkbs.co.kr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