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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슬로 라이프’를 최초로 제창한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쓰지 신이치가 말하는 ‘행복한 경제학’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GNP(국민총생산) 수치가 올라가면 행복도도 커질 거라는 믿음, 즉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 더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경제성장’을 외치며 열심히 달려왔다. 하지만 오히려 빈부 격차는 극대화되고 환경오염과 교육문제를 비롯해 온갖 사회문제들이 일어났다. 이 책은 경쟁을 하듯 하루하루를 급박하게 살기보다는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땅과의 조화를 되찾고, 주변 사람들과 유대를 쌓고, 느린 시간을 살 때 비로소 행복도를 높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 경제와 ‘행복의 경제학’

 

“경제라고 하는 것 때문에 인간이 불행해지고 있다. 오늘날의 경제는 이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풍요한 사회’가 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회 구성원이 행복해지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게다가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 큰 힘으로 사람들에게서 행복을 빼앗거나 서로 행복을 빼앗도록 유도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부유한 사람들도 이제는 경제라고 하는 시스템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이미 어려워진 상태이다.”

‘행복의 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쓰지 신이치는 이제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현 경제를 벗어나 인간이 보다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갖춘 새로운 경제, 즉 ‘행복의 경제(학)’를 만들어갈 때라고 이 책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행복이란 뭘까?-‘슬로 라이프’의 경제학

 

미하엘 엔데의 ‘엔데의 메모장’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유적을 발굴하러 가는 탐험대가 정글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일행에는 짐을 운반하는 인디오 원주민이 몇 명 고용되어 있었다. 처음 나흘간은 일정표대로 무난하게 나아갔다. 그런데 5일째 되는 날, 인디오들이 돌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나섰다. 탐험가들은 당황하여 급료를 높여주겠다며 어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총으로 협박까지 해보았다. 그러나 인디오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 후, 인디오들은 다시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탐험가가 물어보니, 한 인디오가 이렇게 대답했다.

“너무 빨리 걸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 책의 저자 쓰지 신이치는 말한다. ‘행복이란 뭘까?’라는 질문에 해답을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그러나 그는 앞의 이야기를 전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행복은 ‘영혼이 있고 없음’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이다. ‘우리’라고 하는 존재는 사물과, 사람과,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 연결에는 영혼이 깃든 연결과 영혼이 깃들지 않은 연결이 있으며, 그중 영혼이 깃든 연결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고, 여기서 ‘영혼’을 ‘행복’이라는 말로 바꿔 조금 전의 탐험대 이야기를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돌리면 이렇게 된다.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풍요’라는 보물을 찾아 너무나도 서둘러 왔기 때문에 ‘행복’이 우리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져버렸다.”

우리는 나날이 심각해지는 빈부 격차, 환경 파괴, 실업이나 자살을 비롯해 온갖 사회문제를 겪으며 물질적 풍요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고 있다. 그래서일까,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스티글리츠는 국민총생산(GNP)이 아닌 국민총행복(GNH)을 강조하였다. 또한 오늘날 경제학은 ‘경제’ 그 자체를 발전시키기 위한 학문이 아닌,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이 책 ‘행복의 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흐름 가운데 하나인 슬로 라이프(천천히 사는 삶, 지구와 주변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갖는 삶)를 통해 행복을 되찾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제에 관한 책이다.

 

‘풍요의 경제학’에서 ‘행복의 경제학’으로

 

오늘날 경제는 도달점이 있는 목표 대신에 ‘경제(는) 성장(한다)’고 하는 진행형 자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쓰지 신이치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 사회는 성장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덧셈의 경제’ 사회이다. 사람들은 오로지 덧셈만 하고 있어서 뺄셈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모두들 ‘덧셈교(敎)’의 신자가 되어버린 듯 학교에서는 ‘더 빨리 더 많이’ 문제를 풀고,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보다 많이 보다 빨리’ 상품을 만들어 팔자고 외쳐댄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 에콰도르에서는 ‘뺄셈의 경제’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오랫동안 경제 위기로 허덕여왔던 에콰도르에서는 2000년에 정부 주도로 이제까지의 통화인 ‘수크레’를 폐지하고 미국의 달러를 법정 통화로 만들었다. 그러나 에콰도르의 경제 상황은 여전히 좋아지지 않았고, 서민들 사이에서 통화 시스템으로 활용됐던 신트랄이 곤궁해져만 가는 서민 생활의 자체 방어 수단으로서 널리 퍼져나갔다. 신트랄을 사용하는 한 시민은 이렇게도 말했다. “이전엔 생활하는 데 매주 30달러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10달러로도 생활이 충분히 가능해졌어요.”

이제까지 우리들은 주 10달러의 생활이 주 30달러의 생활로 바뀌는 것을 성장 또는 발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것을 생활수준이 향상된 결과라며 ‘개발’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이 빈곤층 이하인 남미의 작은 나라 에콰도르에서는 오히려 30달러가 10달러로 줄어드는 것을 ‘진보’라 여겼다.

우리는 GNP(국민총생산) 수치가 올라가면 GNH(국민총행복)도 커질 거라는 믿음, 즉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 더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열심히 달려왔다. 하지만 풍요는 행복은커녕 경쟁 사회를 구축하며 점점 더 바빠지고 우울해지는 인간을 낳았다.

부시 정권 때 미국이 ‘대(對) 테러 전쟁’에 돌입하여 전 세계가 흐리고 어두웠을 때,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반체제 사상가 촘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테러를 막을 수 있냐고? 간단한 일이지. 모두가 전쟁에 참가하는 것을 그만두면 돼.”

행복으로 가는 길? 간단하다. 오늘의 우리들도 ‘경제성장’이니 ‘풍요’이라고 하는 신앙에 참가하는 것을 그만두면 된다.

 

*저자 소개

 

-지은이: 쓰지 신이치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며 한국계 일본인으로 한국 이름은 이규(李珪)이다.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는 메이지학원대학 국제학부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00만인의 캔들 나이트’ 홍보대사로, ‘슬로 라이프’를 최초로 제창했다. 슬로 라이프를 되찾기 위한 활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나무늘보 클럽(The Sloth Club)’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슬로 이즈 뷰티풀’, ‘슬로 라이프’, ‘벌새의 물 한 방울’ 등이 있다.

 

-옮긴이: 장석진

 

도쿄대학교 기반정보학 석사를 수료, 졸업했다. 현재 후지 제록스(Fuji Xerox) 일본 본사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2005년 한국 환경재단과 일본 피스보트가 공동으로 기획한 ‘Peace & Green Boat 2005’에서 강연자와 통역자로서 쓰지 신이치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나무늘보 클럽(The Sloth Club)’ 회원으로서 한국과 관련된 부분에서 환경과 평화, 슬로 라이프 운동에 관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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