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게 생각하고 좁게 살기

 

에코북

2007년과 2008년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를 잇달아 펴내며 도발적인 문제제기로 한국 지성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경제학자 우석훈이 이번에는 ‘생태경제학 시리즈’ 중 두 권을 먼저 가지고 돌아왔다.

이 시리즈의 1권 생태요괴전은 다양한 요괴와 귀신, 괴물의 입을 빌려 생태경제학적 시각에서 지구생태계의 핵심 문제들과 한국만의 특수한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본 책으로 십대들을 특별 손님으로 초대한다. 세계적으로도 아직 ‘어린 학문’인 생태경제학은 저자가 프랑스 유학 시절에 전공했던 분야이기도 한데 포괄적으로 정의하면 자연과 경제를 분리해서 보던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생태계라는 큰 범주 속에서 경제 문제를 보고자 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저자가 다양한 경험을 거치는 동안 더욱 농축된 연구 결과물이 이 시리즈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 시리즈는 ‘생태경제학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하는 개론서는 아니며, 생태경제학의 시각에서 현재 한국이 갖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과 고민, 제언이 담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돌아온 혼돈의 시대, 요괴들의 귀환

 

 생태요괴전에서 만날 요괴들은 크게 보아 두 종류, 즉 ‘세계의 메이저급 요괴들’과 ‘한국의 개발요괴’가 있다. 그리고 책 말미엔 그들을 퇴치할 방법을 모색하는 ‘퇴마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왜 요괴 혹은 귀신들을 불러들였을까? 

1930년대 이후 현대의 귀신으로 재탄생한 흡혈귀에게 피가 가진 상징은 비교적 명확하다. 그것은 전통적인 경제학 용어로 ‘이윤(profit)’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어찌 보면 너무도 명확한 상징인데 사람들은 노동을 해서 먹고살고, 사장들은 이 사람들을 고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피라고 이해했던 것 같다. 20세기 드라큘라 백작의 대중적 성공은, 바로 그가 인간들의 피를 빨아서 경제가 어려워졌고, 그 결과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어려워졌다고 생각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드라큘라 백작은 이제 한물간 귀신인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드라큘라 백작과 기업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흡혈귀가 왜 흡혈귀가 되었나?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다. 기업은 왜 이윤이 없으면 작동할 수 없는가? 역시 특별한 이유는 없다. 자본주의라는 사회 자체가 그렇게 구성된 것이다. 마치 흡혈귀가 끊임없이 피를 먹어야 사는 것처럼 기업 역시 끊임없이 이윤을 먹어야 살 수 있다.  자동차 좀 덜 만들고, 도로 좀 그만 만들고, 화석연료 좀 덜 쓰면 안 되나? 이게 영 쉽지가 않다. 드라큘라 백작에게 피 좀 그만 먹고, 공중도덕도 좀 지키고, 거짓말 좀 그만하라는 말과 본질적으로 그리 다르지 않다. 기업에게 생태 문제들을 생각하면서 이윤을 적당히 추구하라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가?

생태적 관점에서 본다면 ‘기업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질문은 ‘흡혈귀와 평화롭게 살아가기’라는 질문과 유사하다. 물론 이 특별한 흡혈귀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고, 그들의 노동력을 빨아먹으며, 동시에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재화, 즉 상품들을 만든다. 그렇다고 기업을 없앨 수 있을까? 십자가와 마늘로 통제할 수 있는 흡혈귀와는 달리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기업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렇다고 드라큘라 왕국에서 살면서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지구생태계와 지역생태계를 파괴해 결국 우리 모두가 멸망하게 되는 상황으로 조용히 가게 내버려둘 순 없지 않은가? 좋든 싫든, 우리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우리가 그동안 그저 끔찍한 존재로만 여겼던 드라큘라 백작을 이렇게 기업이라는 코드로 새로이 읽어낸다. 그리고 드라큘라에 이어 죽어서도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가련한 좀비 이야기를 통해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거대 소비자 집단이 가진 이중성을 읽어내며, 자신을 창조해준 인간을 죽이고 스스로 북극으로 사라져간 괴물 프랑켄슈타인 역시 첨단 과학기술이 빚어낼 끔찍한 사태의 은유로 본다. 또한 인간들이 그동안 흥청망청 사용하거나 망가뜨린 자연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생태요괴들이 되어 돌아오는지를 조목조목 살펴보고, 동방과 서방을 모두 제패하고자 한 비운의 영웅 ‘동방불패’를 통해 남북 및 북북 간의 무역 문제를 들여다본다.

 

요괴를 물리칠 힘은 ‘넓게 생각하고 좁게 살기’에 있다!

 

책 후반부에선 한국에만 있는 희한한 요괴인 ‘개발요괴’를 만나게 된다. 아파트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콘크리트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돈을 생각하면 황홀해지고, 경쟁이라는 단어에서 푸근함을 느끼는 ‘경제적 동물’이 바로 ‘개발요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지난 몇 년간 OECD 국가들에서 ‘다음 세대’들에게 생태교육을 더욱 강화하는 동안 한국에선 어린이들에게 ‘어린이 마시멜로’를 쥐어주고, 재경부와 전경련에서 ‘어린이 경제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중ㆍ고등학생이 되면 담임요괴가 ‘지면 죽는다’라고 끊임없이 설교를 하고, ‘엄마에’가 “엄마 말 잘 들어야 착한 사람이지?”라고 속삭이며 ‘정치적으로 무감각한 순둥이’를 길러내고 있다며 신랄한 비판을 쏟아낸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 전세계적으로 지속가능한 생태적 경제를 위해 분발해온 선진국들의 젊은이들과 ‘개발요괴’로 길러진 우리의 십대들이 경쟁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며, 십대들에게 용기 있고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요청한다. 요괴식 표현을 빌리면, 이런 선택이 바로 ‘퇴마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퇴마술의 요체는 한마디로 ‘넓게 생각하고 좁게 살기’다.

과시적 욕구로 가득 찬 본능, 혹은 마케팅에 의해 급조된 욕망의 지시에 따라 살아가는 삶은 ‘넓게 살기’다. 큰 아파트, 큰 건물, 대형 승용차 같은 것들이 이런 본능 혹은 욕망이 지시하는 방향이다. ‘좁게 살기’는 이와 반대되는 삶의 상징적 표현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좁게 살기 위해서는 아주 넓은 생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에게 “왜 너는 생태적으로 살지 않니?”라고 야멸치게 쏘아붙이며 잘난 척하라고 좁게 살기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높은 빌딩, 큰 차, 열관리 같은 것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해야 개발요괴의 전성기를 극복할 수 있고, 다가오는 ‘희소성의 시대’에도 한국 경제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독서와 문화, 경험이 ‘넓게 생각하기’의 도구들임을 더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저자소개

 

지은이: 우석훈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인생의 4분의 1을 독일ㆍ프랑스ㆍ영국ㆍ스위스 에서 지냈고,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정책분과 의장과 기술이전분과 이사를 마지막으로 국제협상과 공직에서 은퇴했다. 그 시절에 만들어낸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이한동 총리 때의 ‘기후변화협약 2차 종합대책’이다. 현재 성공회대와 연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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